사람들은 종종 청춘을 장밋빛 기억으로만 간직하곤 한다. 과거의 아픔과 실패는 망각의 강에 흘려보내고, 달콤한 기억들만 꺼내 보는 건 아마도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과거의 청춘을 추억한다고 해서, 그 시절이 온통 아름답기만 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청춘의 색깔은 장밋빛이 아닌 온통 검은색이었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낸 음울하고 어두운 집안 분위기와 이로 인해 자기방어로 내가 쓴 가면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문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고단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만의 환상여행',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5년의 '자기 억압',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타인을 위한 삶' 등이 하나로 모여서, 나는 '신경쇠약'이라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서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떨어져 공부에 몰입이 안 되자 불안감에 더욱 공부에 집착하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벽시계의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기 시작했고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심장이 요동을 치면서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 시작했다. 아버지께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 참고 참다 상태가 심각해지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신경정신과 병원을 방문했다. 신경쇠약성 노이로제 진단을 받았다. 나는 암흑 같았던 주변 환경에 함몰되어 나 스스로를 암흑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2년을 신경안정제의 몽롱함과 함께 날려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잿빛 청춘에 좌절했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뭐 하나 내 맘같이 되는 게 없는 일상이 이어지면서 '세상을 향해 한 번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날개가 꺾여 버렸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지며 소리없는 눈물이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잿빛 세상과 돌파구가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었다.
노이로제성 신경쇠약은 내 인생의 나침반을 빼앗아갔다. 집중력과 순발력 등 나의 강점이라 믿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나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평생 안간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순발력과 집중력을 잃은 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실함과 꾸준함뿐이었다. 이후로 40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신경쇠약을 겪으며 목표에 대한 속도 보다는 포기와 지칠 줄 모르는 근성 갖게 되었고 그것으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성실함의 대명사라 부르지만, 그 이면에는 날개가 꺾인 채 바닥을 기어야 했던 청춘의 고통이 있었다.
오르기도 전에 날개가 꺾여 계속 추락하던 좌절은 나의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시 예전처럼 집중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매일같이 맞서야 했지만, 그럴수록 지칠 줄 모르는 의지를 가슴속에 키워야 했다. 간혹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내가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선뜻 손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날개가 꺾여 있던 청춘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니 말이다.
요즘의 청춘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우리가 겪었던 시대보다도 훨씬 치열하고 냉혹하다. 젊음을 상징하는 열정과 자유로움을 누리기보다, 청춘들은 치열한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사회의 높은 벽은 그들의 꿈과 인간관계, 정서적 안정마저도 위협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청춘들에게 ‘모두 잘될 거다’라는 격려는 단지 공허한 위로로 들릴 수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의 곁에 서서 말없이 응원하고 싶다. 청춘의 고단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말로는 채울 수 없는 그들의 불안과 아픔을 묵묵히 지켜보고 싶다. 대신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는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진실이다. 어릴 적엔 나도 이런 고통을 나만의 것이라 여겼다. 이로 인해 깊은 고독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고독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법을 배웠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감추고 살아가기 마련이기에 겉으로는 행복해 보일지라도 내면의 고뇌를 짊어지고 있다.
이 고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공감할 때, 비로소 ‘나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각자의 고통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힘겨운 인생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청춘에게 기성세대와 경쟁하지 말라는 말해주고 싶다. 기성세대가 쌓아온 것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그들의 것이고, 지금의 청춘들은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기성세대는 이미 뒤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청춘들은 자기 세대의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며 미래의 주역이 될 때를 준비하면 된다.
청춘의 나침반을 삼아야 할 미덕 중의 하나가 ‘잡초 같은 강인함’이다. 나는 내 자식에게 주고 싶은 미덕이 있다면 주저 없이 끈질긴 야생성을 선택할 것이다. 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다.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마음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그 강인함은 현재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뛰어넘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사람은 거친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자란 잡초의 생명력을 이기지 못한다. 청춘이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며, 결국 승자는 모든 역경을 견뎌낸 사람들이다.
나는 청춘들에게 성과와 성공만을 바라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이란 실패와 실수를 통해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시행착오야말로 인생 나침반을 세우는 과정이며, 청춘의 고독과 좌절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성장한다. 지금 당장은 날아오르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날개를 펼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청춘이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기이다. 어떤 이에게는 꿈과 희망의 시간, 또 어떤 이에게는 고통과 방황의 시간일 수 있다. 나는 그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기를 바란다. 청춘의 고단함 속에서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이 청춘의 진정한 인생 나침반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