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수빛날희 Oct 23. 2021

환경 파괴자

끊임없이 제공하는 종이는 낭비일까 발견을 위한 발돋움일까

선생님 색종이 더 써도 돼요?
학기 초 유아들과 하루에 2장씩만 색종이를 사용하기로 약속한 규칙 때문에 딱지를 한 개 더 만들고 싶은 유아가 슬그머니 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교실에서 24명의 유아가  번에 색종이 2장씩만 쓴다고 해도 48장의 색종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나마 색종이를 접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흥미가 없는 유아들이 있기에 매일 엄청난 수의 종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유아가 하나의 완성물을 만들기에는 많은 실패작이 있기에 버려져가는 쓰레기를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유아의 그리고 싶다,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수긍하여 재료를 제공할 것인지, 지켜야  환경을 위해 재료 제공에 제한을   인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렇게 환경지킴이와 환경 파괴자 사이에 갈등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나는 환경 파괴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엔 환경을 위해서 종이는 너무 제한 없이  수는 없다로 결심했기에 "선생님 잘못 그렸어요  종이 써도 돼요?"라고 물어보는 유아에게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그려보라고 제한했지만  지워보다 종이를 꾸겨 버리곤 자리를 떠나는 유아를 보고 나서부터는 '재료는 마음껏 제공해주겠다. 해봐라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서라면!'라고 합리화하면서 마음껏 재료를 사용할  있도록 허용하였다. 실패한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결국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유아들이 만든 작품에서 미적인 요소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미술 작품이라고 하기에 그저 자르고 붙이면서 도저히   없는 자신만의 모양의 복잡한 혼합체이기 때문이다. 하원 하는 유아가 양손 가득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들었던 작품을 가지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님들은 적지 않게 당황해하신다. 아마 집에 가면 부모에게는 나중에 처리해야  쓰레기가 되었기에 유치원에서 만든 물건을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으면 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그러나 유아가 정성 들여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모양이 어떻든간 어떠한 평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을 표면적으로 들어낼  있는 자신만의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유의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비슷한 평면 그림을  없이 반복해서  유아가  어느 날부턴 입체로 열심히 자르고 붙이는 모습을 보게 되다면, 똑같은 공주 색칠하기라도 그저 평범했던 공주가 가면 갈수록 화려하게 치장된 공주를 보게 된다면,  많은 예술가의 후원자가    없었던 무명작가의 가능성을 믿고 끊임없이 지원하다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것을 깨달은  마냥 자랑스럽다.


그러면서 오늘도 한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 통을 보니, 예전 호텔 주방 아르바이트할 때 결혼식 하객들이 먹다 남긴 많은 음식물 쓰레기를 커다란 양동이에 부으면서 "내가 지옥 가서 먹을 음식물이다."라고 말하던 주방장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전 06화 밥이 코로 들어가든 말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