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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빛날희 Oct 22. 2021

밥이 코로 들어가든 말든

점심시간이 즐겁지 않은 이유

그만,  그만, 제발 조용히 기다려주세요. 점심 준비하는 동안에는 조용히 기다려주세요


3,4,5,6,7,8,9,10월 8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했던 잔소리이다.

친구들이  끼리끼리 모여 밥을 기다리며 이야기하는 것이 유아 입장에서는 문제 될 것은 없지만 교사의 입장에서는 정말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밥 달라고 지저귀는 새끼 새들 마냥 시끌벅적한 교실 속에서 유아들이 계속해서 재촉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급해진다. 24명의 유아들의 반찬 3개와 함께 밥과 국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식판을 잘 잡아주지 않는 유아, 숟가락 젓가락은 안 가지고 가는 유아, 반찬 가까이 식판을 대주지 않고 딴 친구랑 이야기하는 유아, 가져가다 뒤에 오는 친구와 부딪혀 밥을 엎는 유아, 밥을 먹는 행위는 이렇게 간단한데 가져가는 과정에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관심 없는 6세 유아들이 교사가 밥을 코로 먹는지 눈으로 먹는지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밥 한 숟가락 뜨려면 저 김치 더 주세요, 저 그만 먹고 싶어요, 저 응가 마려워요, 친구가 놀려요, 단순히 자신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면 밥을 편하게 먹는 것은 포기하게 된다. 

또 왜 그렇게 밥 혼자 먹기 힘들어하는지, 이렇게 맛있는 밥을 세상 먹기 싫은 표정으로 느그적 느그적 먹고 있으면 정해진 시간 내에 급식실에 식판을 가져다줘야 하는 나에게는 폭탄이 떨어진 것과 다름없다. 당연히 유아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먹을 수 있도록 여유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지만 공동체로 생활하는 기관이기에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을 도와주면서까지 먹여야 한다. 제발 먹어라 먹아라 하지만 굳게 닫힌 입을 보면 안 먹이고 싶어도 음식을 최대한 남기지 말라는 조리사님의 압박을 이길 자신도 없다. 많이 남으면 내가 꾸역꾸역 먹고 있다. 


밥을 처음에 받은 친구와 마지막에 뜬 교사의 먹는 속도 간격은 차이 나지 않다. "우와 선생님 입이 커서 많이 들어 가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유아들을 '너는 내 맘 모르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봐주며 밥을 쑤셔넣는다. 밥을 다 먹었다고 끝이 나는 것도 아니다. 미리 치약 칫솔을 준비해줘야 다른 친구의 칫솔, 치약을 헤집지 않을 수 있고 선생님 치약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마저도 밥 더 달라는 유아와 수없이 해봤으면서 또 정리 어디다 해요라고 물어보는 유아의 도움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양치를 시작한 유아들이 차례차례 기다려서 양치질하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나마 장난치지 않고 바르게 양치질해주는 몇몇의 유아들은 멀리 있는 화장실에서 양치질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그렇지 못한 유아들은 보이는 시야의 화장실에서 양치질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러고 계속해서 부지런히 양치질 하자, 장난은 그만하자, 차례차례 줄 서서 기다렸다가 양치질하자 하며 잔소리의 잔소리를 쏟아붓는다. 소화된다.


그렇게 나의 점심시간의 일을 마친다. 

우리 유치원의 점심은 자랑하고 싶을 만큼 맛있다. 2주에 한 번씩 나오는 가정통신문에서 급식을 먼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 이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는 일은 사치가 되어버렸지만, 입에 넣는 한 입의 순간 때문이라도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수육이 나온다. 함께 나오는 부추무침을 많이 먹으려면 내일은 더 솨사삭 세팅해놓고 먹여야겠다는 전략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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