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제공하는 종이는 낭비일까 발견을 위한 발돋움일까
선생님 색종이 더 써도 돼요?
학기 초 유아들과 하루에 2장씩만 색종이를 사용하기로 약속한 규칙 때문에 딱지를 한 개 더 만들고 싶은 유아가 슬그머니 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교실에서 24명의 유아가 한 번에 색종이 2장씩만 쓴다고 해도 48장의 색종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나마 색종이를 접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흥미가 없는 유아들이 있기에 매일 엄청난 수의 종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유아가 하나의 완성물을 만들기에는 많은 실패작이 있기에 버려져가는 쓰레기를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유아의 그리고 싶다,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수긍하여 재료를 제공할 것인지, 지켜야 할 환경을 위해 재료 제공에 제한을 둘 것 인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렇게 환경지킴이와 환경 파괴자 사이에 갈등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나는 환경 파괴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엔 환경을 위해서 종이는 너무 제한 없이 줄 수는 없다로 결심했기에 "선생님 잘못 그렸어요 새 종이 써도 돼요?"라고 물어보는 유아에게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그려보라고 제한했지만 좀 지워보다 종이를 꾸겨 버리곤 자리를 떠나는 유아를 보고 나서부터는 '재료는 마음껏 제공해주겠다. 해봐라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서라면!'라고 합리화하면서 마음껏 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실패한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결국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유아들이 만든 작품에서는 미적인 요소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미술 작품이라고 하기에 그저 자르고 붙이면서 도저히 알 수 없는 자신만의 모양의 복잡한 혼합체이기 때문이다. 하원 하는 유아가 양손 가득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들었던 작품을 가지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님들은 적지 않게 당황해하신다. 아마 집에 가면 부모에게는 나중에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되었기에 유치원에서 만든 물건을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으면 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그러나 유아가 정성 들여 만드는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모양이 어떻든간 어떠한 평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을 표면적으로 들어낼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유의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비슷한 평면 그림을 수 없이 반복해서 그리던 유아가 어느 날부턴 입체로 열심히 자르고 붙이는 모습을 보게 되다면, 똑같은 공주 색칠하기라도 그저 평범했던 공주가 가면 갈수록 화려하게 치장된 공주를 보게 된다면, 돈 많은 예술가의 후원자가 별 볼 일 없었던 무명작가의 가능성을 믿고 끊임없이 지원하다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것을 깨달은 것 마냥 자랑스럽다.
그러면서 오늘도 한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 통을 보니, 예전 호텔 주방 아르바이트할 때 결혼식 하객들이 먹다 남긴 많은 음식물 쓰레기를 커다란 양동이에 부으면서 "내가 지옥 가서 먹을 음식물이다."라고 말하던 주방장님의 말씀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