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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Oct 04. 2024

이태리 한 달 살기 1

준비 1- 사전 답사를 해보니 교통이

나는 마흔 무렵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를 읽으며 유럽살이를 꿈꿔왔다.


'내 나이 마흔 무렵 어디선가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처음에는 프로방스를 생각했지만 이탈리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줄곧 고민거리였다. 정작 갈 상황도 능력도 안 됐지만 꿈꾸는데 돈 드는 건 아니지 않은가.


두 차례의 세계 일주를 마치고 환갑도 훌쩍 넘어선 지금 더 늦기 전에 유럽에 살아봐야겠다. 일단 저질러 보는 거다.

그리하여 숙소부터 잡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2년 동안 세계 일주를 두 번이나 하고 그 사이에도 여행을 몇 차례 하다 보니 요즘 듣는 말이 '돈 많으신가 봐요.' 다.


그럴 리가!


다만 우선순위가 여행이라서 나머지 비용은 최소화할 뿐이다. 옷을 제대로 사본 기억도 까마득하다. 여행지에서도 교통비, 식비를 아끼기 위해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저녁은 간단하게 장을 봐서 숙소에서 먹는다. 저녁을 집에서 먹으니 과식도 안 하게 되고 몸도 덜 피곤하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신용카드를 다른 혜택 다 안 받고 수십 년간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적립했다. 그 덕에 두 차례의 세계 일주가 가능했다.  퇴직 전에는 휴가 기간이 성수기라 어차피 사용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가능한 날짜를 찾으면 되니 그동안 모아둔 것으로 아직도 몇 번의 마일리지 여행이 가능하다.


한 달 살기는 거주지만 옮기는 것, 주거비만 추가된다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비싸지 않은 곳으로 찾기로 했다. 그렇다고 동남아는 가고 싶지 않다. 나는 유럽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과 맛있는 파스타가 있는 곳,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곳 유럽이.


부킹닷컴에 목적지를 이탈리아로 하고 원하는 날짜를 넣는다. J가 선호하는, 정원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계절인 겨울로.


일정을 잡다 보니 한 달 살이가 40일로 늘어났다. 부킹닷컴이든 에어비앤비든 한 달이 넘으면 할인율이 꽤 올라간다.


최대 금액을 설정하고 필터에 조리 가능 등 필요한 기능을 체크한 후 지도로 나와있는 숙소를 하나하나 비교해 본다


한 달 넘게 살아야 하니 주변과 동떨어진 길, 도로변 외톨이 집은 패스, 대중교통으로 다녀야 하니 외진 곳 패스, 크지는 않아도 마을이 있고 걸어서 빵 사고 커피 마시러, 장 보러 다닐 수 있는 곳으로, 교통이 좋아 가끔 다른 지방 나들이도 가능한지 경로도 꼼꼼히  따져봤다.


그렇게 찾은 곳이 로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피우지 Fiuggi 마을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로마에서 대중교통도 가능하고 물이 좋은, 온천 마을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래 여기야!'하고 예약을 한 후 마일리지 항공권도 예매한 게 지난 3월, 한 달 살기 9개월 전이다.


때마침 친구 부부들과의 여행이 9월로 잡혔는데 하필이면 로마 왕복이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일부러 와볼 수는 없는 이 먼 곳에 미리 오게 된 것도 운명이다. 이참에 답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 집에 이틀만 묵어보고 생각과 다르면 취소하고 다른 데로 잡기로 했다. 그럴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지만.


멀어 보이던 시간이 훌쩍 흘러 친구들과의 여행이 끝나고 한 달 살기 답사 시작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친구들과의 정신없었던 여행 끝 무렵 피우지 숙소로 가는 교통편을 구글맵으로 검색하자니 당일 연결 편이 매우 복잡하다. 내가 처음에 찾아봤을 때 한 번에 피우지 터미널까지 가는 노선이 있었고, 숙소에 교통편을 물어봐도 떼르미니 역에서 한 번에 버스로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구글맵이 가끔씩 뒤통수를 때리면 얼얼하다 못해 정신이 없어진다.


우리가 떠나는 날이 토요일, 구글맵에 버스는 이틀 지나 월요일부터 운행한다고 나온다. 주말이라 운행을 안 하나? 다시 숙소에 메시지를 보내봤다.


주말에도 띄엄띄엄 다니는데 없으면 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하란다. 아니 이런 무책임한 말을 던지다니.

로마에서 피우지까지는 86km, 택시를 타다간 교통비만 몇 십만 원 들게 생겼다. 그럴 수는 없지.


이번엔 구글 검색으로 들어가 본다. 로마에서 피우지 가는 법은 버스와 기차, 택시가 있고 하루 6편의 버스가 있단다. 우리가 떼르미니 역에 도착한 후 연결할 수 있는 1시 출발 버스도 있다.


기차를 타려면 피우지 인근 아나니 역 Anagni까지 가서 다시 버스로 30분을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 시간표가 불안하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급하게 떼르미니 역에 도착한 게 12시 15분.

버스 정류장을 찾아보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

'피우지? 그게 어디죠?'


혹시 모르니 나는 아나니 역으로 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J는 버스 출발 장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구글과 구글맵을 뒤져 떼르미니 역 바깥의 공항버스가 줄지어 서있는 쪽에 버스정류장이 있다는 걸 확인한 건 12시 40분.


급하게 가방을 끌고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피우미치노행 공항버스만 줄지어 서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끝까지 가보니 코트랄 버스가 서있다! 미리 찾아봤던 피우지 행 버스회사 이름이다.


그 앞에 서있던 점잖은 노신사가 피우지 행이란 걸 다정한 말투로 확인해 준다.

버스표는 저쪽 담배 가게에서 사라는 안내를 덧붙이며.

그라찌에. 이태리 말이 절로 나온다.

버스 가격은 착하기도 하다. 단돈 5유로.


깔끔하고 쾌적한 2층 버스에 올라 역에서 급하게 산 샌드위치를 먹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로마에서 피우지까지 이렇게 직행버스가 하루에 대여섯 편 있으면 교통은 일단 합격이다.

버스 타고 옆 마을 놀러 가듯 로마도 가고 다른 곳도 갈 수 있지 않은가!


흐뭇한 마음으로 1시간 15분 걸리는 버스에선 차창 밖의 로마 교외 풍경을 즐겼지만 또 다른 난관이 피우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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