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너머의 고백

by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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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머신의 증기 소리가 잦아든 뒤, 가게 안은 한순간 숨을 멈춘 듯 고요해졌다.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들어온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고, 손에는 편지 한 장이 구겨진 채 들려 있었다. 그는 카운터 바로 앞에 앉았다. 나는 늘 그렇듯 주문을 기다렸지만 그는 잔 대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혹시… 당신은, 고백을 해 본 적 있나요?” 질문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내 손이 멈춰 버렸다. 나는 커피콩을 분쇄하는 대신한동안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저는,”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어요. 편지를 썼지만, 부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이 편지가 제 손에 남았죠.” 그는 편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종이는 닳아 있었고, 잉크는 흐려져 있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면서 자꾸만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동안 나는 손님들의 사연만 기록했지, 내 마음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커피 향이 번지자 그는 편지를 내게 건넸다. “이 편지를, 대신 읽어주시겠어요?” 나는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문장은 짧고 서툴렀지만, 그 안에는 분명 진심이 있었다. “나는 네가 웃을 때마다 세상이 환해지는 걸 느꼈어. 그 말 한마디를 못 하고, 이제야 후회한다.” 나는 목이 메어 끝까지 읽지 못했다. 손님은 잔잔히 웃었다. “당신 목소리로 들으니, 마치 그녀가 옆에 있는 것 같네요.” 순간, 나는 충동을 느꼈다. 카운터 너머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나도 내 고백을 남기고 싶다는 충동. 하지만 나는 멈췄다. 이곳에서 나는 증인일 뿐, 이야기에 개입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잔을 다 비운 뒤 조용히 말했다. “이제, 고백할 수 있겠네요. 늦더라도.” 문턱 위 종이 울리고

그가 떠난 뒤에도 내 손에는 그의 편지가 남아 있었다. 나는 카운터 위에 펜을 올려두고, 노트 한 귀퉁이에 작은 문장을 적었다.


“언젠가, 나도 내 고백을 기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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