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사람
무정한 사람
남편에게 내일은 없다. 내게도 내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무엇을 계획하고 품고 기대할 수 있으랴.
병원 가는 버스. 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사랑과 이별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냥 듣고 있자니 눈물겹다. 슬프다. 나와 남편의 이별가로 들린다.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다.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 아침부터 주책이다. 그 절절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병원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눈물이 씻겨 내려가니 조금 낫다. 하지만 병실의 남편을 보니 다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안 우는 척 애써보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내가 울면 쩔쩔 맸던 남편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아내가 우는지 웃는지 전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다. 세상일은 그의 관심밖의 일이 되었다.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암흑 같은 세계를 떠도는 미아가 돼버렸는지 모른다. 자기 생에 놓인 풀릴 길 없는 수수께끼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3시 넘어 박병상 선생님이 문병을 오셨다. 병원이 집과 가까워 걸어서 오셨다고 한다. 남편은 잠이 들고 그분은 남편과 함께 했던 일들을 얘기하셨다. 이상하게 서럽고 슬픈 감정이 지속돼 그분의 얘기를 더 들을 수가 없어 화장실 가서 다시 얼굴을 씻고 와야 했다.
5시 넘어 남편이 눈을 떴다. 어떤 말이 필요치 않는 단계, 어떤 말도 오갈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남편은 내가 누구인지 알기나 할까. 무정한 존재가 되어간다. 침대에 걸쳐 앉아 남편 눈만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다리를 주물렀다. 회진을 돌던 의사가 눈만 마주치지 말고 대화를 하라고 한 마디 던지고 간다.(2011년 4월 22일 금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