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당신에게
여보 미안해. 당신이 끙끙 앓은 소리를 내며 아파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이제 당신 몸은 가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처절하게 앓다가 가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나고 가는 일에는 같은 크기의 고통과 시간이 소모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당신의 신음소리에 큰 아이를 낳을 때 겪었던 진통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산통과 사통은 같은 것일까. 이상하지. 하지만 나올 때는 모체와 함께 하지만 갈 때는 고독하게 혼자 가야하니 두려운 일이겠지. 머지않아 당신의 전철을 나도 밟겠지. 당신 몸이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자꾸 신호를 보내고 있어. 당신을 이렇게 보내야하는 걸까.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나고 있는 걸까.
사람마다 가는 이유가 다르겠지. 불의의 사고로 허망하게 가기도 하고, 가는 것도 모르면서 가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아파서 갈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정말 잔인한 시간의 셈을 따라야 하는가 봐. 삶이란 어차피 한 발 한 발 죽음의 문 앞으로 전진해가는 것이지만. 요즘 당신은 오로지 죽는 그 순간을 위해 체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 같아. 당신으로서는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다른 뭔가를 바랄 수도 없는 거겠지.
오늘 당신이 입원 후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 당신 맞은 편 할아버지는 수시로 눈물을 흘려. 떠나는 아쉬움, 소멸에 대한 공포,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왜 당신이라고 없겠어.
고마워요, 여보. 내게 눈물을 보이지 않아줘서. 당신이 눈물을 흘렸다면 당신의 눈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을 거야. 당신을 위해 울지 못하고 내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겠지. 의연하게 아이들 키우며 살아갈게요. 어렵고 힘들 때마다 당신이 내게 주고 간 사랑을 기억할게요.
어쩜 나는 당신을 내 곁에서 이미 떠나보냈는지도 모르겠어. 작년 가을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당신의 죽음과 장례식 그리고, 당신 없는 세상이 뇌리에서 파노라마처럼 훑고 지나갔어.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그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했어. 기억을 잃어가는 당신을 지켜봤어.
여보, 시간이 지나면 이 죽을 것 같은 감정도 옅어지겠지요. 당신을 잃은 슬픔과 아픔도 덜어지겠지요. 불에 담금질하듯 제 여린 감정을 단련시켜주기 위해 당신을 통과하는 시간을 견뎌줘서 고마워요.
대학 때 만난 이후 우리는 근 20년을 함께 했지요. 자유기고가라는 당신의 직업상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함께 하며 아이들을 키웠지요. 그런데 이제 당신은 나와 아이들을 두고 먼 길을 가려하는구려. 잘 가시길. 부디 그곳에서도 여기를 굳어 살피시기를. (2011년 6월 28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