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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by 인상파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2박 3일 간병에 들어갔다. 남편에게 폐렴과 패혈증이 찾아왔다. 이번 주 들어서는 열이 40도까지 오르내리고, 내려가더라도 정상 체온까지는 닿지 않는다. 사람은 지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삶을 마감한다고 하더니, 남편이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른 듯하다. 더는 버티기 어려운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기호 소장님에게서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1000부 인세가 입금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미 발표했거나 출간하려던 글들을 모아, 사전처럼 두꺼운 책 한 권으로 묶은 것이었다. 결국 남편의 대표작이 된 책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후배를 위해 마음을 써주신 소장님의 배려였다. 바빠서 병문안을 오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셨지만, 차라리 잘 된 일 같았다. 지금 남편의 쇠약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마철이라 목요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병실에 새 환자가 들어왔고, 함께 들어온 간병인 아줌마는 일흔 언저리쯤 되어 보였다. 첫인상부터 마주 앉아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화려한 장신구와 과장된 목소리로 병실 분위기를 장악하려 했지만, 정작 누구도 반응하지 않자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말수가 적고 얌전해 보이는 다른 간병인에게 다가가 마치 동료를 얻으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간의 허세와 고독이 한순간에 드러나는 듯해 낯이 뜨거워졌다.


점심 무렵, 그 간병인은 믹서기가 없어졌다며 소란을 피웠다. 잠시 병실 사람들을 도둑 취급하듯 몰아붙이더니, 결국 간이침대 밑에서 신문에 싸여 있던 믹서기를 찾아내어 다시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를 갈아댔다. 병실 가득 울려 퍼지는 기계음이 병든 사람들의 신음과 겹쳐,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었다.


짐도 유난히 많았다. 공용 세면대 위에는 개인 물건들이 빼곡히 놓여 있어 다른 사람들이 쓰기 불편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바깥 화장실로 나가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간병인들도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또 다른 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돌보면서도 그들 역시 고된 생계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병실 안에는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이 뒤섞여 저마다의 무거운 사정을 안고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당신이 떠나기 8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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