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나락
어젯밤 9시가 넘어서면서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피곤이 몰려왔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차올라 식탁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쉬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걱정스러웠는지 아들 녀석이 옆에 와 앉아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받은 이야기, 친구들과 놀며 생긴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목소리에 힘을 잔뜩 주며 들려주었다. 나는 대답을 해주려 했지만, 어떤 말은 귀에 들어오고 어떤 말은 흘러가 버렸다. 꾸벅꾸벅 고개가 떨어지며 잠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누웠다. 잠결에 코가 막혀 뒤척이는 아이의 기침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감기약을 먹여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황급히 약을 꺼내 아이에게 먹였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새벽 한 시쯤, 세탁기를 돌려놓고는 그대로 소파에 누운 채 잠들어버렸던 기억이 났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젖은 빨래를 널었다. 이상하게도 다시 잠에서 깨어난 탓인지 머리는 둔탁하지 않았지만,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뭔가라도 끄적여보려 했으나 펜 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몸을 뉘었다.
아들 녀석이 기특했다. 누나와 놀러 나가고 싶으면서도 집에 혼자 있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신발을 꿰차며 현관문 앞에 서서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나를 살폈다. 누나를 따라 나서면서도 엄마가 외로울까봐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나에게 "심심하면 누나 핸드폰으로 꼭 전화하라"고 당부하며, 전화를 하면 소방차처럼 잽싸게 달려오겠다고도 했다. 어린 마음으로 건네는 그 다정한 약속에 가슴이 찡해왔다.
아이들이 집을 비우자 집안이 한순간에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적막이 깊게 스며든 공간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시계 초침 소리마저 크게 울려 퍼지고, 냉장고의 윙 소리가 쓸쓸한 울음처럼 들렸다. 도무지 앉아 있기 힘들어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걸었다. 대낮의 햇살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고, 아이들 놀이터는 시끌벅적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집 안보다 바깥의 공기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공허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맞닥뜨린 적막은 여전히 무겁게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당신이 떠나기 10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