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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l 14. 2021

문우文友와 문운文運 사이

   문만 열면 무료 사우나장이다. 뜨거운 온도에 습한 기운. 어디였더라, 아, 타이베이의 여름이 이랬지. 경기도의 동남아 화인가. 얼마 전 브런치 작가님께서 보내 주신 커피 쿠폰도 있겠다, 카페의 에어컨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노트북과 혹시 읽을지도 모를?! 책을 들고 냉큼 나섰다.

20분 만에 도착한 천국


   월요일에 낙선을 확인했다. 당연히 안 될 당선이 당연히 안 된 걸 확인하는 건, 그래도 3초는 씁쓸하다. 하지만 딱 3초이다. 음흠.. 어디 보자... 이로서 3,041번째 낙선인가... '제목부터 문학의 향기가 ~' 하는 작품들이 당선작에 올라 있다. 시간이 흐르면 내 필타의 대상이 될 글들이다.

   작년엔 시로 도전했다가 역시나 낙선, 올해는 수필 낙선. 나에게 낙선 타이틀만 두 번을 안겨준 '호미대전'. 아, 혹시나 호미대전 관계자 분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다. 나에게 낙선 타이틀을 안겨준 공모전은 대략 247개쯤 되니까. 피식 웃으신 분이 2분 이상이면 성공이고, 실은 50개 이상이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에는 낙선 면역이 아주 잘 형성되어 있다. 3초의 씁쓸 이후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또 다른 공모전을 찾아 나서는 힘을 보태줄 뿐이다.  

   이번엔 더더욱 당선이 불가능한 응모였다. 7월 12일까지인 줄 알았던 마감일이 2일까지인 것을 확인한 것이 2일이었다. 옴마야, 그 자리에서 두 시간을 쓰고 두 번을 훑어보고 응모. 이런 글이 수상한다면 그건 심사위원들을 고소해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아무나 당선시키는 공모전. 다행히 호미대전은 규모도 크고 역사도 있고 인정받는 공모전이라 역시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격려 감사합니다.


   나의 응모 사실을 알고 계신 작가님께서 응원의 말씀을 보내 주셨다. 수상작들과 수상자들을 분석한 결과 전문가들이 상을 탄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나의 낙선이 당연한 것이라고 나 혼자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결과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혼자 토닥토닥 해오던 일을, 누군가 곁에서 그의 손으로 토닥토닥해주는 느낌. 오랜만에 느끼는 진짜 위로였다. 낙선에 아무렇지 않았던 건, 사실 아무렇지 않으려 애썼던 나 혼자만의 노력이었을지도 몰라.

 


   요즘 공모전을 도전하는 이유는, 그저 재미있어서이다. 전에는 물욕을 품고 도전했지만, 지금은 그저 즐겁다. 공모전을 도전하려면 일단 써야 한다. 그렇다. 쓰는 것, 그게 좋아서이다. 어차피 쓸 글, 썼는데 혹시라도 수상이 되면 기분도 좋다. 상금이나 상품 같은 것도 따라온다. 물론 안 될 확률이 99.6%이다. 나도 잘 알고 있어서, 괜한 기대 같은 걸 품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상처 같은 건 적거나 없으니까. 공모전 낙선 말고도 상처 받을 일은 도처에 있는데, 이런 거에도 상처 받으면 마음이 남아나질 않는다.  

   '안 될 거지만 써야지'라고 생각해서인가, 줄줄이 안 되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글들은 그대로 남아 내 재산처럼 쌓이고 있다. 처음에는 공모전 탈락의 상처가 꽤 크고 오래갔다. 낙선된 내 글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못났으니 선택받지 못하는 거지. 그러나 그 상처도 반복되니,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런 글들을 조금씩 손 봐 다른 공모전도 내보고 있고,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다.


https://brunch.co.kr/@1kmhkmh1/98

   위 글과 같은 일도 일어나기도 한다. 이 공모전에서 낙선한 작품이 저 공모전에서 떡하니 수상권 안에 이름을 올린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공모전의 성격과 심사위원에 따라 응모작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심사위원의 취향 문제인 것이군. 하다 못해 심사위원 개개인의 그날의 컨디션, 점심 메뉴, 기분에 따라서도 글을 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군.

   그때부터 나는 내 낙선작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손에서 태어난 내 자식.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그 누구도 좋게 봐주지 못해도 나는 아껴줄 수 있는 내 글. 못났든 잘 났든 예쁘게 봐주고 시간 날 때마다 고쳐 주고 다듬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 글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 바로 이곳 '브런치'이다.






   이곳에는 내 글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문우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매일 쓰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쓰기도 하고 가끔 쓰기도 한다. 어쨌든 쓰는 사람들이다. 읽고 쓰는 것에 진심이고, 그렇기에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니맘내맘'을 서로의 글로 확인하고 댓글로 공감하며 울고 웃기도 한다. 얼굴을 본 문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얼굴도 모른 채 이곳에서 그들의 일상과 마음을 나누고 읽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나누는 응원과 격려와 칭찬과 위로는 남다르다. 그저 문자뿐인데, 어째 그들의 손길과 마음과 목소리가 들리는 듯, 보이는 듯, 느껴지는 듯하다. 문자라서 가능한 일이다.

   문자와 글은 그 모든 온기를 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만나는 문우들이 특별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나만 이런 건 아닐 거라 믿는다.)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 생기면, 이곳에 알려 위로받고 축하받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나만 이런 건 진짜 아닐 거라 믿는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전국 팔도를 다니며 브런치 문우들을 만나 쓰는 삶, 읽는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들과 누가누가 흰머리 더 많나 내기하고 싶고(자신 있다), 그들 글에서 만난 지인들의 안부도 직접 묻고 싶다. 글이라는 매개 없이, 우리 사이에 놓이는 것이라면 커피 한 잔만 허락한 채, 눈을 보며 말하고 싶다.



   그들과 가장 많이 나눌 화제, 역시나 글일 것이다. 나는 문우들에게서 '문운(文運)'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의 글이 공개적으로 인정받는 것, 문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작년 연달아 세 번의 수상을 경험했다. 그리고 문득, 두려워졌다. 내 생의 문운을 올해 모두 다 써버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https://brunch.co.kr/@1kmhkmh1/49

https://brunch.co.kr/@1kmhkmh1/54

https://brunch.co.kr/@1kmhkmh1/72


   대부분의 수상의 기쁨은, 고작 하루 또는 며칠의 지속 후에 사그라들고 만다. 기뻐하고 있기에 일상은 너무나 바쁘고 나를 제외한 타인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지'라며 잊고 지냈다.


   나의 문운은 꼬리가 좀 긴 듯도 하다, 라는 생각이 든 건 지난달이다. 동서문학 수상 이후 동인지를 낼 때만 해도 '이건 문학회 활동 중 하나니까'라며 덤덤했다. 공식 문인지에 이름을 올린 건 많이 기쁜 일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역시나 별 일 아닌 일인 거다. 개인 단행본 내시는 분들이 브런치에 많고 많으신데, 나는 고작 두세 페이지 실린 동인지 한 권이다. 나대지 말자.  

   동인지가 발간되고 며칠 후 '예스 24'측에서 메일이 온 것이다. 매달 열리는 공모전 대상 수상자들에게 연재의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수락의 답신을 보낸 후 '메일이 발송되었습니다'라는 모니터를 한참 바라보았다. 동서 문학도, 예스24도 잊지 않고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려주려 애쓰는 것 같았다. '꾸준히 글을 쓰고 있음을 우주 어디선가 알아주고 있으니, 낙선이 이어져도 너무 속상해하지는 마'라는 따뜻함이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제야, 친근한 이름들이 다시 떠올랐다. 브런치에 접속했다. 그 이름들의 글 쓰는 곳을 하나하나 방문했다. 나의 글에 지치지 않고 응원해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준 이름들. 문우, 글벗 무엇이라 불려도 좋다. 이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이름들. 그들이 있어 내가 줄곧 지치지 않고 써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마워서 혼자 작업실 겸 식탁에 앉아 조금 훌쩍거렸다.



'문우'들과 나눌 '문운' 이야기. 그 사이에 놓일 감정은 무엇일까.


- 문욱....! 글 쓰다 욱하는 기분. 내 글은 왜 이모냥이지. 왜 글이 안 써지지. 왜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거지. 왜 남들처럼 쓸 수 없는 거지. 욱할 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 문울............ 글 쓰다 우울해지는 기분. 하아, 글이 발전이 없다. 글이고 뭐고 때려치우자. 뭣하자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거지. 도대체 글을... 왜 쓰려고 하는 거지.
- 문웃?! 글 쓰다 피식하는 기분. 아, 내 글 너무 웃겨. 나 왜 이렇게 웃기지. 나한테 왜 이렇게 웃긴 일들만 일어나는 거지. 이 개그 내가 생각해도 찐이다. 아, 이 포인트에서 웃어줘야 하는데, 통하겠지? 독자님들, 제발 웃어주소서.


   무엇이든 좋다. 문우들과 글 쓰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로 '행복'이다. 글 쓰는 이들에게 글 쓰는 마음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문우들을 떠올리면, 사실 더 이상의 문운은 없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글의 결실로서의 수상이나 입선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전문가들에게 내 글을 인정받는 것, 글 쓰는 이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문우들의 존재'이다. 함께 글을 나누고 서로의 일상을 살피고 곁에 있음을 느끼는 것, 요즘 내 일상의 행복의 출발점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에 솟아나는 감사를, 글로만 나눌 수 밖에 없어 아쉬운 마음에 끄적여 본다. 문우님들의 여름 가운데,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에 행복이 함께 하길, 더불어 제가 보내는 감사의 바람이 그 곁에 길 바라며!






   문우님들에게, 제 문운의 작은 부분을 나눕니다. 예스 24 '에세이스트의 하루'에 글을 보냈습니다. 여름의 뜨거움 속에, 글의 따스함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오늘도 먹여 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곱 살 첫째가 밤마다 잠들기 전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인사성 밝기로 소문난 딸은 늘 이런 식으로 마음을 전한다.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께는 ‘애쓰십니다’, 미화원께는 ‘수고 많으세요, 감사합니다’라며 매번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이제는 그들이 먼저 딸아이를 알아보고 사탕이나 음료를 건네주신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15년 전의 그분이 떠오르는 것이다.  

(전문은 아래에서)



http://ch.yes24.com/Article/View/4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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