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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맥가이버 Oct 17. 2023

[시] 밀가루 벚꽃

뒤꼍에 네 마리의 길고양이 새끼가 바위틈에 배를 깔고 누웠다 아니, 왜 예 와서 새끼를 낳고 지랄이야 그러면서 냉장고를 뒤져 자꾸 무언가를 나른다 이른 무더위에 전기세 걱정하며 에어컨을 풀가동하는데 어머, 쟤들은 털옷 입고 얼마나 덥겠냐? 태초부터 입고 다닌 옷이 어미의 시름으로 훼절된다 


그러지 말걸 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애를 족쳤나 몰라 그 녀석 네 살 때 나는 식당 하면서 연신 짜장을 볶았지 뒤꼍에서 길고양이 마냥 밀가루를 하늘에 날리며 벚꽃놀이를 하는데 난 아까워 죽겠다며 애 등짝을 후려갈겼어 울며 타고 나간 세발자전거 바퀴가 허공에서 여적 도는데 트럭 밑에 아이 발가락이 허여멀건 해 울 애 발가락은 돼지 젖꼭지처럼 분홍빛이 돌았는데 어미의 포효는 고양이 털옷만큼이나 촘촘하고 두텁다


봄만 되면 미치게 흩날리는 벚꽃이 나는 너무 싫다 지금은 바닥에 패대기 칠만큼 넘쳐나는 밀가루라서 더 싫다 그런데 밀가루 음식은 가슴이 치게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이냐 내 자식 손에서 조몰락조몰락거리게 놔두기나 할 것을 왜 자꾸 내 입으로 처넣는 것이냐 이 말이야 왜 봄만 되면 자꾸 밀가루 벚꽃이 눈앞에서 수런거리냐 말이야 길고양이 털옷처럼 나를 실성한 년으로 만든단 말이야 밀가루 벚꽃 흐드러진 어느 날 난 그 녀석 만나러 갈 거야 그냥 콱 혀 깨물고 그러고 싶은 것이 어미의 심정, 길고양이 털옷 걱정하는 그 어미의 가슴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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