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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지는 마음

by 주부맥가이버

순이는 다 진다

다 지고야 만다

성이 나서는 괜히 허공에 대고 지껄인다

제비한테도 지고

고라니한테도 지고

풀한테도 다 져져져

어디 그뿐이랴

세숫물 떠받쳐 모셔온 라면 하나 못 끓이는

5대 독자 서방에게 지고

순이가 농사짓고 있는 가지처럼 휜 몸에서

뽑아낸 자식들에게 사시사철 지고

시골 인심은 개뿔 몰려다니며 지들 잇속만

챙기는 동네 연놈들에게도 다 진다

그래도 인간보다는

똥 찍찍 갈겨대는 제비가

가림막 넘어와 다 들쑤셔놓는 고라니가

순이처럼 밟혀도 잘라내도 다시 일어서는 풀이

더 낫다

그러니까 순이는 져주는 거다

팔순이 가까워오는 순이가

국민학교 밖에 안 나온 순이가

징글징글하게 다 져주고 깨우친

흙바닥의 가르침이다

풀처럼 가늘고 바람에 날리는 육신을

숭덩 몸뻬에 담는다

흥이 나서는 괜히 허공에 대고 지껄인다

니들이 숭헌 사람보다는 백 배 천 배 더 낫다

오늘도 순이는 다 진다

다 지고야 만다

일부러 져주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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