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는 다 진다
다 지고야 만다
성이 나서는 괜히 허공에 대고 지껄인다
제비한테도 지고
고라니한테도 지고
풀한테도 다 져져져
어디 그뿐이랴
세숫물 떠받쳐 모셔온 라면 하나 못 끓이는
5대 독자 서방에게 지고
순이가 농사짓고 있는 가지처럼 휜 몸에서
뽑아낸 자식들에게 사시사철 지고
시골 인심은 개뿔 몰려다니며 지들 잇속만
챙기는 동네 연놈들에게도 다 진다
그래도 인간보다는
똥 찍찍 갈겨대는 제비가
가림막 넘어와 다 들쑤셔놓는 고라니가
순이처럼 밟혀도 잘라내도 다시 일어서는 풀이
더 낫다
그러니까 순이는 져주는 거다
팔순이 가까워오는 순이가
국민학교 밖에 안 나온 순이가
징글징글하게 다 져주고 깨우친
흙바닥의 가르침이다
풀처럼 가늘고 바람에 날리는 육신을
숭덩 몸뻬에 담는다
흥이 나서는 괜히 허공에 대고 지껄인다
니들이 숭헌 사람보다는 백 배 천 배 더 낫다
오늘도 순이는 다 진다
다 지고야 만다
일부러 져주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