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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맥가이버 Oct 17. 2023

[시] 百의 수행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지게 울던 우리 육 개월짜리 둘째를 싣고 큰 아들은 옆에 끼고 집에 또 오지게 안 들어오는 개똥이 남편, 그이를 위해 전복을 사러 근처 재래시장을 갔었지요.

애는 울고 전복은 웃고 나는 그 중간 어디쯤이었습니다. 유모차를 앞뒤로 흔들며 생선가게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었는데,

앗! 외마디 비명에 옆을 돌아보니 시장통을 거닐던 등 푸른 생선처럼 새파란 연인이 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았겠어요?

몸집이 큰 생선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무슨 일일까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아. 줌. 마! 정신이 번쩍 나게 빽 소리를 지르더니 젊은이는 턱 끝으로 말했습니다. 샌들을 신은 그의 소중한 공주님 발꿈치 뒤축 한번, 유모차 바퀴 한번, 마지막으로 내 눈 한번. 그가 턱을 부라리고 삐죽거리며 요리조리 호통을 치는 동안 나는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하아! 약에 쓰려고 해도 자꾸 없는 개똥이 남편아! 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최소한 그놈은 자기 입으로 말했을지도 몰라. 입은 먹는데만 쓰는 게 아니잖아? 턱으로 말을 하다니 집에 우환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어.

나는 집에 와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벙벙 뛰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석고대죄도 할 판이었는데 무슨 뒷북인지 어리둥절하였습니다.

화장실로 갔습니다. 

우리의 오물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받아주는 변기씨를 붙들었습니다. 변기커버 저고리를 벗기고 도자기 치마를 스르륵 내렸습니다. 그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1종 친환경 세제로 고이고이 닦아주었습니다. 나는 젊은이의 오물을 옴팡 뒤집어쓰고 이리 분통이 터지는데 당신은 어찌 세상의 오물을 다 받아주고도 이리 白의 순수인가요? 뽀드득 소리가 나게 목욕재계를 마친 변기씨에게서 후광이 비쳤습니다. 

늘 고추밭에 파묻혀 사는 당신. 반바지 입고 서서 소변보면 다리에 오줌이 다 튀는데, 개똥이 남편은 왜 계속 서서 오줌을 쌀까요? 당신에게 늘 노오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혀주니 미안합니다. 당신에게는 하이얀 원피스가 최고거든요. 

마음에 외마디 비명이 몸처럼 나부끼면 변기씨에게 찾아갑니다. 무릎을 꿇고 아주 정성스럽게 바닥으로부터 저어기 구름까지 닿을 만큼 당신을 닦아줄 겁니다. 젊은이의 턱주가리는 오줌으로 싸서 변기 물로 쏴아아 내려줍니다. 정화조로 보내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턱주가리에게 폭언을 퍼부은 나라고 왜 집에 우환이 없겠어요? 그럴 때면 우리 변기씨와 의기투합하여 나도 百의 원피스를 입어야지요. 내 것은 하이얀 색이 아니라 카멜레온처럼, 비둘기 목처럼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백가지 색의 원피스입니다. 열심히 역할에 따라 변變臉을 하며 우환을 달랠 뿐입니다. 이것이 미욱한 삶에 대한 예의이자 변기씨에 대한 존경의 마음입니다. 

닦으며 나아가겠습니다.




白의 순수, 치마변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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