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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맥가이버 Oct 06. 2023

[시] 창틀

너를 처음 만난 날

수줍게 20층 창문을 넘어 

우리 집으로 내려앉은 널 기억해

밧줄에 매달려 

고공을 행진하던 너는

세상의 온갖 먼지와 상처로부터

날 지켜주었지

나는 너를 매일 쓰다듬고

몇 시간이면 너를 점령해 버리는

인생의 자잘한 티끌로부터

벚꽃 같은 살결을 지켜주었지

너의 뽀얀 피부는 점점 지쳐가고

너를 더듬던 나의 손길도 무뎌졌어

신혼의 열정이 식고

중년의 정의 깊어가듯

너와 나는 이제 정으로 하루를 살아가

너는 여전히 눈과 비와 바람, 

이글거리는 태양과 외로운 달로부터

나를 지켜줘

남편이 출근하면

너는 나의 우렁이 남편이 되어

나를 감싸 안아줘

더 자주, 깊게 닦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의 육체가 닳아지듯

나의 손이 깎이고 있어

우리 서로 더 깊게 안아주자

세상의 더러움과 오물을 함께 

뒤집어쓰고

우리 그저 더 깊게 안아주자

더 깊게, 더 정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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