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방을 지키는 보안관은 칸에게 말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고 내게 말하도록 해.』 칸은, 좁지도 넓지도 못한 어정쩡한 크기의 감옥을 빙글빙글 서성였다. 잿빛 감옥 벽 사이로 난 작은 쇠창살 창문 밖에는 새들이 하염없이 짹짹거렸다. 밤이 되면은 유난히 더 시끄럽게 굴었다. 칸은 화장실에 가도록 허락되는 시간을 이미 놓쳐버렸다. 밤은 깊었고, 자정즈음의 시간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물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칸은 초조해졌다. 그래서 계속해서 빙글빙글 걸었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방 안을. 방이 좁았다면 칸은 걷지 않고 앉거나 누워있었을 것이다, 꼼짝없이, 죽은 듯이, 정적으로, 고요하게. 반대로 방이 넓었다면 칸은 마구 달려나갔을 것이다. 시원함을 만끽하면서 부족한 것 따위 느끼지 못하는 기분으로. 하지만 칸의 긴긴 옥살이를 통틀어, 방은 단 한 번도 큰 적이 없었고, 좁은 적도 없었다. 너무 애매한 크기의 감옥이었다. 적당히 물이라도 마셨다면, 칸은 빙글빙글 초조하게 걷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목이 마를수록, 발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보안관은 문밖에서 칸을 물끄럼 바라보다가 또 말했다. 『목이 마르면 물을 줄게.』 칸은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물을 마시면 배가 불러올 것이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겠지. 하지만 화장실은 칸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화장실은 특정 시간이 되어야만 죄수 칸이 갈 수 있는 장소였다. 칸은 물로 가득 찬 자신의 신체가 내부적으로 몸부림치며 조바심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 마시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 결과 칸은 목이 말라서 더욱더 초조해질 뿐이었다. 수분이 과다해진 신체가 배배 꼬이는 긴장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편이 덜 고통스러울지, 또는 이렇게 목이 마른 채로 갈증에 쩔어, 절뚝절뚝 자꾸만 걷는 것이 더 나은지는 미지수였다. 칸은 그 저 걸었다. 보안관은 다소 안타까워했다. 칸을 보면서, 그는 슬그머니 위로를 건넸다. 『네가 화장실을 갈 시간에 잠들어 있었다니 유감이야. 물을 마시고 싶지만 참는 게지.』 칸은 조용히 그 말을 들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발걸음했다. 쇠창살 창밖의 새들은 계속 지저귀고 있었다. 어떤 언어를 만들어내는 음감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칸은 그 새들의 언어와 불화했다. 불화하는 언어를 마음 한 켠에 지고, 칸은 바싹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끼며, 저린 다리로 자꾸만 걸었다. 보안관은 생수병과 요강을 내보였다. 『자, 칸. 내가 요강을 가져왔어.』 칸은 물을 마셨 고, 잠시후 그것을 배출했다. 칸은 보안관에게 감사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비로소 자유로웠다. 목도 마르지 않았고, 가득찬 수분으로 인한 괴로움도 칸에게 없었다. 칸은 좁지도 넓지도 못한 방바닥에 털털하게 주저앉았다. 잿빛 벽에 기대어 앉아서, 칸은 화장실을 가지 못할 때의 두려움과 목이 마를 때의 두려움 따위를 잊어버렸다.
2020.05.09. 오전 1시9분
칸은 죄수다. 그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진 2020년의 한국에 살고 있다. 칸의 인생은 감옥에 비유된다. 그는 세상과 불화하는 기분을 느끼는데, 불화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과 실제 불화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불화하는 기분을 느끼는 동안, 칸은 마치 화장실이 급하지만 갈 수 없는 사람처럼 조바심이 나고 애가 탄다. 칸은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고 있으며, 저기 온라인에 보이는 너무나 많은 친구들과 친구는 아닌 사람들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칸이 아는 것을 모르고 있고, 칸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인식적 차이는 필연적이지만, 칸은 이러한 필연적 사실을 알면서도 위와 같은 괴리감으로 인한 갑갑함을 극복할 수가 없다. 갑갑함이 너무 비대하기 때문에.
사실에 관해 말하자면, 칸은 한평생 세상과 실제 불화했다. 그리고 칸의 기분은, 때로는 그것을 인지하며 매우 불편한 상태에 머물렀고, 반대로 때때로 그러한 복잡한 사유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마치 화장실에 가지 못한 칸처럼, 때로는 안달복달 못하는 초조한 모습이었고, 마치 갈증을 느끼는 칸처럼, 때로는 해답을 갈구하지만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물을 마시면, 모든 복잡다단한 사유는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그의 고통은 그의 신체에 체현되어 남아있지만서도 그 자신의 기억의 축에서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너무 자연스럽게 세상에 스며드는 기분으로.
이와 같은 칸의 갈증-수분섭취-배출불가-배출의 각 단계의 흐름은, 칸의 만성적 불화 상태에 대해 칸이 느끼는 초조함이 어떻게 해소되어 버리고, 칸은 어쩌는 수도 없이 어떻게 일상에 적응하여 고통을 잊어버리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은, 고통에 젖은 칸이, 곧 사라질 짧은 사유의 시간 속에서 끄적인 자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