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전쟁

살인의 정당성 논쟁

by 생각전사

살인(殺人).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는 최초의 인간 아담의 큰 아들 카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생 아벨를 시기심 때문에 살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상 인류 최초의 살인이다. 하지만 스페인 북부의 한 동굴에서 약 43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이 두개골을 둔기로 맞아 살해당한 흔적이 발견됐다. 스페인 카를로스 3세 보건연구소 연구진은 52개로 부서진 두개골 조각들을 합쳐 분석한 결과 왼쪽 눈 위로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이 구멍은 둔기로 최소 두 차례 타격을 받아 생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살인의 증거다. 살인은 성경기록보다 훨씬 오래전 선사시대부터 성행한 인간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성경에 기록된 카인.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장면(출처=네이버)

〈십계명>은 BC 13세기 고대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10개 조의 계율을 말한다. 그중 제6조가 "살인하지 못한다."이다. 즉, 당시 살인이 빈번히 벌어졌다는 반증이다. BC 175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에는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고조선 8 조금법에 "사람을 살해한 자는 죽음으로 갚는다."라는 조항이 있다. 살인을 구성원들에게 금하는 계율의 수준을 넘어 동일한 보복을 가하도록 했다. 즉, 동해보복(同害報復)이다. 살인자를 공동체가 보복살인을 행할 수 있는 강력한 특수한 권력의 탄생을 의미한다. 질서유지를 위해 권력은 사형제도를 만들어냈다.

신석기 시대 전투 그림(스페인 동굴 벽화). 사진=전쟁의 기원(도서출판 인간사랑, 1990)

살인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인류의 오래된 행위이다. 살인의 부당성은 오래전에 정립되었지만 살인은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떤 경우는 정당화되고 있다. 결투, 명예살인,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 초기 우크라이나의 인터넷망과 통신체계가 파괴됐다. 이때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상업용 위성통신시스템인 스타링크(Star Link)를 우크라이나에 전격 지원하였다. 이로써 젤렌스키 대통령은 SNS를 통해 러시아 침공의 부당성과 러시아 군대의 잔혹성을 간단없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그 후 3월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1대 1 결투를 신청한다는 글을 올리며 조롱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 페이스북(2024.1.4) 사진=페이스북 캡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로 유명한 러시아 시인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전직 해군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해 싸우다 숨졌다. 천하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수학자 갈루아, 영국 웰링턴 장군, 음악가 프리드리히 헨델, 독일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 미국 링컨 대통령,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쓴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결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투(Duel)는 일반적으로 '승패를 결정하기 위하여 벌이는 싸움'을 말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참가자 둘의 상호 동의하에 입회자(second)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이는 싸움이다. 1세기 경 게르만족이 분쟁을 해결하는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시대에는 중범죄를 판가름하는 정식재판의 하나가 되었으며 하나님이 정의로운 자의 편에 선다는 신념에 기초하였다. 결투의 승자는 무죄가 되고 패자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결투의 규정은 공정한 듯 보였지만 반칙을 일삼는 자가 승리하였다. 부정의가 정의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결국 15세기 결투는 금지되었다. 하지만 16세기를 넘어 20세기까지 사적인 결투는 계속되었다. 결투가 명예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살인을 전제로 한 행위라는 점에서 인간의 생명 경시와 잔혹성을 엿보게 한다.


인간살상의 야만적이고 잔혹한 전통은 '명예살인(Honor killings)'이라는 미명하에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2023년 2월 튀르크에 정착하여 유투버로 인기를 누리던 22살 티바가 자신의 출신지 이라크를 방문했다가 아버지에게 살해되었다. 그는 수치스러움을 씻어내기 위해 딸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시리아 북부에서 18살 소녀 에이다 알하부디 알사에도가 사촌과 결혼하라는 가족을 요구에 불응하고 다른 남자와 달아났다는 이유로 소녀의 사촌과 아버지, 오빠에 의해 총으로 사살되었다. 이 과정을 담은 영상을 가족이 SNS에 올리기까지 했다. 2005년 아프가니스탄의 음악프로 유명 여성 MC 샤이마 레자위가 튀르크, 이란 가수 등의 비교적 경쾌한 음악을 소개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슬람 율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해고되었고, 오빠가 쏜 총에 목숨을 잃었다. 이 역시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여동생을 살해한 오빠 자비드는 훗날 인터뷰에서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 집안 여자들을 미워한다며 집안을 살리기 위해 여동생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은 2016년 명예살인을 법으로 금지했지만 부족사회의 전통이 강해 부족단위 원로회의 지르가에서 명예살인을 지속 부추긴다고 한다. 2011년 파키스탄 북부 한 결혼식장에서 찍힌 동영상은 9명의 명예살인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인터넷에 유포된 이 영상에는 2명의 남성이 결혼식 축하 의미로 춤을 추고 있고, 5명의 여성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마을 원로회의 지르가는 5명의 여성을 명예살인하기로 결정한다. 이 사실을 2012년 코히스타니가 언론에 폭로하고 2013년 1월 코히스타니와 형제 3명이 살해된다. 영상 속 친인척 남성 6명이 살인범으로 지목되었다. 영상 하나로 9명이 소위 명예살인 당한 것이다. 야만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명예살인 반대 시위(파키스탄, 2014) 사진=YTN 캡쳐

전쟁(War). 전쟁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간에 벌이는 무력충돌을 말한다. 전쟁은 대규모 살상을 동반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인간끼리 서로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 적을 살해하는 것은 국가의 명령에 따른 행위이다. 나와 내 가족,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라는 측면에서 적 살상은 정당화된다. 내가 적을 죽이지 않으면 적이 나를, 내 전우를, 내 가족을 죽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령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적 살인은 무죄일 뿐만 아니라 영웅적 행위로 칭송된다. 국가는 훈장을 주어 살인의 행위를 본보기로 삼는다.

우크라이나 전쟁(2023) 사진=네이버

우리나라는 사형제도를 폐지하지 않았지만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다. 우리 헌법 제1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2항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합의로 세워진 국가권력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는 사상이 가져온 결과다. 김일성이 세운 북한 정권이 3대째 통치체제를 유지하며 고사총을 쏴서 사람을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내 죽이는 살인행위는 인간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비판적 태도이다. 역행하는 자가 있을 때 순응하는 자가 제2의 눈을 뜨게 된다. 군대와 군인은 국가와 국민이 적으로부터 위험에 처하거나 처할 위기에 있을 때 적을 살상해도 되는 권한을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집단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권한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남용되지 않는지 누군가는 지켜보고 잘못이 있으면 고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대와 군인의 전쟁법과 교전규칙 준수, 이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내부시스템의 작동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눈과 감시도 극한의 전쟁 상황에서 자칫 훼손되기 쉬운 인간생명과 인권 침해를 막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 군대 미군도 월남전에서 미라이 학살을 했다. 1968년 3월 16일 월남 남부 미라이에서 발생한 미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대량학살이다. 347명에서 504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는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으며 상당수는 여성과 아동이었다. 학살당한 이중 17명이 임산부와 173명의 어린이 그리고 5개월 미만의 유아 56명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1년이 지난 1969년 11월 12일 언론인 시모어 허시에 의해 폭로되었다. 미국 정부는 미라이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에 나섰고, 이 학살에 가담했던 이들이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에서 총 26명의 군인이 이 학살에 관여한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법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캘리 중위뿐이었다. 상급 명령권자인 영관급 장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또한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캘리 중위도 두 차례의 감형을 받았으며, 3년 반 동안 가택연금 상태로 지낸 이후 사면됐다. 이와는 별개로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캘리 중위를 옹호했으며, 어떤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해 필요했던 그의 행동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전쟁은 대규모 살인행위를 전제로 한다. 정당성을 잃을 때 무고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무도한 행위가 발생될 수 있다. 1차 대전 당시 참호전을 통해 수많은 병사가 죽었다. 1차 대전에 참전했던 독일 태생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1898~1970)는 1929년 출간한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무모한 전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6.25 전쟁에서 국군과 북한군, 중공군은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에 수많은 군인들의 뼈와 살을 갈아넣어야 했다. 한 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하여, 애국심을 위하여, 전우의 복수를 위하여, 부대의 명예와 훈장을 위하여, 쌓이고 쌓인 적개심 때문에 군인들은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정치인과 민간인은 후방에서 그들의 일상을 영위하던 때에 벌어진 일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영화 포스터(2023)

전쟁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살인과 상해.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가? 전쟁을 지도하고 전쟁을 지휘해야 할 정치지도자와 군 지휘관의 중차대한 과업이면서 미디어가 추적해야 할 취재보도영역이 아닐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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