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6 일기 (캐나다 DAY+0)
드디어 떠난다!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고속도로 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저녁 비행기라 오후 늦게 출발했지만, 집을 떠나 공항으로 향하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부족한 것 없이 전부 들고 가자는 마음으로 가방을 쌌더니, 큰 이민 가방 두 개에 큰 캐리어 하나, 작은 캐리어 하나 이렇게 모두 4개의 바퀴 달린 짐들을 싣고 가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19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격리를 할 수도 있어서 챙긴 냄비, 캘거리의 추위가 두려워 굳이 새로 주문한 전기장판까지. 한국에서도 잘 안 읽는 책들도 싣고 하니 무게를 맞추기 위해 안 입는다 싶은 옷들을 빼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꾸역꾸역 최대 무게를 맞추어 놓은 가방들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서류들도 정말 많았다. 학기가 끝난 후 여행을 하다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비행기표를 편도로 예약했는데, 찾아보니 왕복 비행기표를 입국 심사 때 검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어 무려 120만 원을 내고 캘거리 발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부랴부랴 예약했다. 에어캐나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매를 하면 24시간 내에 무료 취소가 가능하기에, 입국을 하자마자 구매했던 비행기표를 취소할 심산이었다. 여권, 여권사본, 여권사진에서부터 반드시 필요한 영문 PCR 검사지, 보험 증명서, 백신 접종 증명서, eTA 서류, 캘거리 대학의 재학 증명서.... 수많은 서류에 라벨을 달고 파일에 넣어 매는 배낭 뒤쪽에 꼭꼭 숨겨 넣었다.
코시국 인천공항은
오미크론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라 공항은 정말 한산했다. 우리은행 지점에 가서 미리 환전 신청해 놓았던 돈을 인출하고 지하 식당에 가서 분식을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게이트 앞에 서자 여태 비자를 준비하랴, 학교와 컨택하랴, 친구들 얼굴을 보랴 부모님과의 시간을 많이 못 보냈던 것 같은데, 막상 헤어지려니 아쉽고 찡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났다. 두려운 마음도 컸다. 캘거리가 그렇게 춥다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내 몸무게의 2배만큼 나가는 짐들을 들고 기숙사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쩌지.... 뒤돌아 엄마를 보다가 조금 더 걸어서 또 뒤돌고 하면서 부모님과의 작별 인사를 했다.
제주도를 자주 다니느라 이제는 익숙해진 짐 검사를 마치고,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 탑승 게이트 앞에 앉으니 저녁 5시 30분, 노을이 막 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기분이 싱숭생숭한데 노을이 지는 하늘까지 겹쳐 생각이 많아졌다. 주저리주저리 적고 연락 온 친구들이랑 전화를 하니 벌써 탑승 시간이 되었다. 한창 바쁠 저녁 시간인데도 시간 내어서 전화해준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용기가 나기도 했다.
먹고 자고 설레기만 했던 밴쿠버행 비행시간
2년 만에 타는 외국행 비행기는 또 설렜다. 창가 자리에 앉아 멀어지는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긴 비행을 준비했다. 앞 좌석 등에 붙어 있는 모니터에는 주문할 수 있는 음료와 식사 메뉴가 나와 있었고, 에어캐나다니 한국과 다른 콘센트를 쓸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한국 돼지코를 바로 쓸 수 있는 충전소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옆자리를 공석으로 놓아서 편하기도 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2시간가량의 비행 이후 기본으로 주는 빵과 샐러드, 마켓오 브라우니와 소고기 식사가 나왔는데, 메인 메뉴 자체는 평범한 기내식이었지만 샐러드는 맛있었다. 10쯤 되어서 기내의 불이 꺼지고, 사람들은 잠에 들었다.
밤 비행기만큼 별 생각이 다 드는 공간이 있을까. 캐나다에서 사귄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파티에 가는 상상을 했다가도, 친구 없이 쓸쓸하게 잠에 드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간 캐나다 가이드북을 펼쳤다. 가고 싶은 곳들을 노트에 옮겨 적고 마땅한 시기를 생각하며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오로라 보러 가기, 로키 산맥 하이킹, 밴쿠버 아일랜드 투어, 퀘벡의 도깨비 동산! 캐나다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고,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친구 없으면 어때, 혼자 여행하다 오지 뭐!
밤 열한 시가 되어서는 간단한 샌드위치 간식이 나왔다. 안의 양상추는 아삭하니 싱싱했는데 빵이 너무 질겼다. 터키 샌드위치였는데 간이 되어 있지 않아서 안에 머스타드를 가득 뿌려 먹어야 퍽퍽한 맛이 중화되었다. 배가 불러 눈을 붙였더니 해가 뜨기 시작했고, 곧 아침이 나왔다. 화장실에 잠깐 들리는 시간 빼고는 계속 앉아 있었는데, 먹을 것들이 쉼 없이 나오니 사육당하는 기분이었다. 샌드위치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은 스킵하려고 했는데, 생각 외로 불고기 김치볶음밥이 정말 맛있어서 또 배부르게 먹었다.
밴쿠버 도착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해가 점점 뜨고 창 밖으로는 이불 같은 구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하늘을 보니 해와 구름이 비행기 날개에 비쳐 아름다웠다. 모니터에 나오는 지도가 신기해서 계속 돌려 보니 금세 도착이었다. 제일 와.. 싶었던 순간은, 구름을 뚫고 비행기가 하강하길래 동영상을 찍었는데 구름 사이로 밴쿠버 전경이 조금씩 보이고... 어느 순간 비행기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시야가 확! 넓어졌던 때다. 날개 때문에 가려졌던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벅찼다.
밴쿠버 도착, 그리고 고생 시작...
이렇게 도착한 밴쿠버는 정말 따뜻했다. 찾아보니까 영상 3도, 낮아도 영하 3도. 캘거리를 부랴부랴 검색해봤는데 현재 최저기온 -26도, 최고기온 -19도다. 겨울 밴쿠버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선택지에서 없앴는데 내가 경유한 이 때는 정말 따뜻할 정도로 맑았다. 10시간을 날아오는 큼직한 일정을 하나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니, 이제 캘거리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뒤의 나는 입국 심사에, 자가 환승, 비행기를 놓치고 연착되고 무제한으로 기다리는 수많은 고생길을 겪는다. 그 이야기는 다음 일기에!
오늘 깨달은 일상의 TIP
- 캐나다는 한국에 비해 물가가 매우 비싸므로 부족함 없이 챙겨 오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특히 매일 쓰는 기초 화장품, 한식 HMR 식품, 멀티탭, 가습기, 손톱깎이 등.
- 하지만 원래 사용하지 않던 제품을 굳이 들고 올 필요는 없다. 전기장판 등.
- 냄비, 프라이팬 등 조리기구는 월마트에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 챙겨 오지 말자.
- 에어 캐나다는 김치볶음밥이 맛있다.
- 창문의 밝기는 창문 아래 버튼으로 조절할 수 있다. 모르면 창 밖의 모든 풍경이 보라색으로 보임!
2022.01.06부터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게재해 온 캐나다 교환학생 일기를 하루에 하나씩 정리해서 올립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부터 교환학생 생활에 대한 유익한 정보까지, 솔직하고 꼼꼼하게 담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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