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들었던 내 집
이 뷰, 실화야?
한 학기 거주에 약 3500 캐나다 달러, 한국 돈으로는 345만원 가량 되는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의 기숙사. 처음 지원할 때는 너무 비싸다 싶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탁 트인 창문 밖으로는 몇 킬로미터 밖 숲과 들이 전부 보였고, 해가 지는 서쪽 방향이라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의 색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다. 공해가 전혀 없는 캐나다의 하늘은 일 년 내내 맑은 캘거리의 날씨와 어우러져 항상 아름다웠고, 청량한 바람은 그대로 방에 들어와 시원하게 코를 간지럽혔다.
이 풍경 덕분에 매일 아침 일어날 맛이 난다.
기숙사에 들어가보자!
호텔에서 우버를 타고 학교로 이동해, 짐을 기숙사 1층에 잠시 내려 놓고나서는 International House에 열쇠를 받으러 다녀왔다. 오로라 홀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이고, 학교에서 설정한 입주일 이후에 키를 받을 수 있으며 수령 가능 시간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나는 나 제외 2명의 룸메이트들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을 공유한다. 방은 잠금 장치가 있는 문으로 구분되어 있는 개인실이기에 사생활은 제대로 보장된다. 구체적인 방의 크기와 360도 영상, 가격 등은 아래 홈페이지를 참고하는 것을 추천한다.
https://www.ucalgary.ca/ancillary/residence/live-with-us/places-to-live/upper-year/aurora-hall
나는 이미 룸메이트들이 입주해 있는 줄 알았는데,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고 깨끗했다. 앞 거주자가 청소를 워낙 깔끔하게 해놓고 가서 부엌과 화장실, 거실 모두 반짝반짝 빛날 정도였다. 조리도구가 없을까봐 한국에서 냄비를 가져온 것이 무색하게 도마부터 온갖 식기, 수저와 칼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앞 사람이 놓고 간 덕분인 듯, 방마다 다를 수는 있다). 부엌에 나 있어 음식 냄새를 뺄 수 있는 큰 창과 창문, 음식 냄새를 빨아들이는 환풍구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커피포트와 토스터, 믹서도 있었다!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방 중 왼쪽에는 세면대와 변기, 오른쪽에는 샤워 부스가 있었다. 둘 다 크기는 작았지만 나뉘어져 있어 방을 나눠 쓰는 세 명이 겹침 없이 번갈아가며 이용할 수 있었다.
내 방 문을 열쇠로 딱 열었을 때는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앞서 설명했던 아름다운 뷰 때문도 있었지만, 침대가 생각보다 넓었고(두 명이 잘 수 있을 정도), 책상과 책장, 옷장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모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침대 아래 이층 서랍장도 두 개나 있어 수납공간은 정말 넉넉했고, 햇볕을 제대로 가리는 블라인드와 깔끔한 카페트식 바닥도 마음에 들었다.
내 방에 적응하는 시간
가장 먼저 집에서 가져온 청소박사로 칸칸이 청소를 하고 짐정리를 했다. 짐을 워낙 많이 가져온 터라 정리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지만,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노래를 틀고 정리를 하니 금세 방이 제 구색을 갖추어 갔다. 보물처럼 모셔온 한식은 책장 가장 아랫칸에 모아 두고, 옷들은 옷장과 서랍장에 분리해 넣어 놓고, 전기장판 위에 까는 요, 그 위에 이불을 덮고 베개까지 놓아 두니 그냥 익숙한 내 방이었다.
전 날 긴 시간을 이동하느라,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추운 날씨에 낑낑대며 옮기느라 고생했던 나를 위해 긴 긴 낮잠을 잤다. 사실 겨울 캘거리는 네 시 반이면 해가 지기에 밤잠이나 마찬가지지만. 창 밖으로 구름과 해와 하늘을 보며 잠드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 멀고 먼 캐나다에서, 내 방을 만들고 적응하기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일어나서는 부지런히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그대로 써도 괜찮겠지만 괜히 찝찝해서, 모든 플라스틱과 유리 그릇을 꺼내두고 한 번씩 씻기도 했다. 간단히 햇반을 데워 가져온 장조림과 깻잎으로 저녁을 먹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오늘의 일기를 쓰며 가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숙사 입주를 매우 추천하는 이유는,
혹시 교환학생으로 캘거리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제출했다면, 승인 통지와 함께 학교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기숙사 신청을 하라'는 메일을 받을 것이다. 처음에는 늦게 신청하면 기숙사 방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경고에 잔뜩 겁을 먹고 티켓팅처럼 어플라이를 했는데, 사실 그정도까지 입주가 빡빡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미적거리면 혹시라도 신청이 밀릴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하기. 교환 학생이라는 단기 거주자의 입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방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캐나다는 한국보다 물가가 비싸기도 하고, 전세 개념이 없어 보증금은 거의 없이 월세만으로 방세를 받는데 보통 아무리 작은 원룸이라도 부엌과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다면 한 달에 700-800불은 한다. 물론 학교 기숙사 또한 사실 계산해보면 네 달 거주에 346만 원이니 만만치 않게 비싸지만, 교내에 거주하여 도서관과 피트니스 센터 등의 편의시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실과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유틸리티 빌을 따로 내지 않고, 부엌과 거실, 화장실 등 사용할 수 있는 전체 공간의 크기가 기존 원룸보다 훨씬 크며 안전하다는 점에서도 장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학교 차원에서도 교환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기숙사 입주를 권한다.
원하는 기숙사 골라보기
자신이 속한 학년마다 입주할 수 있는 기숙사가 다른데,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4학년 1학기에 교환학생을 왔으니 Upper Year로 분류되어 Aurora, Cascade, Glacier Hall 등의 선택지를 가졌다(자연을 사랑하는 캐나다의 대학교라 그런지 기숙사 이름이 전부 자연 현상과 관련이 있다). 나는 학교 어디든 갈 수 있는 지하 통로를 보유하고 있고, 이벤트가 자주 열리며 신축인 오로라 홀을 택했다. 만약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Cascade를 추천하는데, 쉬고 싶을 때에도 소란스러울 수 있으니 잘 고민해서 선택하자.
그리고 만약 기숙사 배정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 되지 않았다면, 배정 받은 즉시 학교에 메일을 보내 기숙사를 옮겨달라고 정중히 부탁해도 된다. 대부분의 경우, 입주 이전이라면 무료로 옮겨 준다. 하지만 기숙사 입주 이후에 옮기게 된다면 50불의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Varsity Courts라는, 학교 중심부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가족 생활동에 처음 배정을 받았는데 너무 멀고 낡아 보여 메일로 간절하게 변경 요청을 드렸다. VC 거주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학교 시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싶다면 VC는 너무 멀기에 추천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음에 예민하다면, 전부 나무로 지어진 복층 주택의 특성상 바로 옆 집이 샤워하는 소리까지 들리기에 더욱 유의해아 한다. 오로라 홀은 그래도 방음이 꽤 잘 되고, 다이닝 센터와 도서관, 올림픽 오발과 가까워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었다.
좋은 기숙사란
'좋은 기숙사'에 살아 본 경험으로 '좋은 기숙사의 요건'을 생각해보자면, 일단 첫째도 둘째도 방음이다.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공간이기에 서로의 생활 소음이 겹칠 수 밖에 없는데, 이 소음이 신경쓰일 정도로 크다보면 서로의 존재가 불편하고 짜증나게 된다. 그러다보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안 씻은 접시 하나에도 괜히 기분이 상하게 되고. 다행히 오로라 홀은 방음이 꽤 잘 되었고, 룸메이트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배려하는 생활을 했기에 기분 좋게 거주할 수 있었다.
또, 어느 정도의 여유로운 공간과 더불어 바깥과 통하는 창의 유무도 매우 중요하다. 내가 쾌적하게 생활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방의 공간이 넉넉했고, 거실과 주방의 크기가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과 주방에 나 있는 창문으로 환기와 요리 후 냄새 빼기가 쉬웠기 때문에 불쾌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또 탁 트인 창문 덕에 답답함이 없었고, 하늘을 보고 시간의 흐름을 눈치채며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기도 했다.
캘거리 대학의 모든 기숙사가 오로라 홀처럼 쾌적한 것은 아니다. Kananaskis Hall은 두 명이 한 방을 나눠서 쓰기 때문에 생활 패턴이 다르다면 매우 불편하고, 주방이 없는 기숙사는 매 끼니를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또 Varsity Courts처럼 학교의 중심 시설과 거리가 멀다면,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수업 하나를 들으러 매일 걸어서 40분을 왕복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항상 가까웠던 터라 나는 기숙사에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름 마음 속에 담아 둔 로망이 있기도 했는데, 룸메이트들과의 파자마 파티나 밤샘수다 등.... 물론 내 룸메이트들은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어 서먹한 사이를 학기 내내 유지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고 깔끔했던 내 기숙사가 항상 그리울 것 같다.
캐나다라는 추운 나라에서도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기숙사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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