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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Apr 21. 2022

영하 24도, 내가 살아야 하는 곳

2022.01.08 일기 (캐나다 +2)

'1월 7일? 너 진짜 가장 추울 때 도착했네.'


    1분만 밖에 있어도 속눈썹이 얼어 시야에 얼음이 보이고, 코털이 얼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가운 영하 24도. 집에서 나온 지 23시간 만에 캘거리에 도착한 나를 반기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였다.


    사실 캘거리에 도착해서도 다사다난함은 끊이지 않았다. 이제 호텔에 가서 한 숨 돌릴까 싶었는데 짐이 나오지 않았다. 수하물을 수령하는 곳에서 또다시 시작된 기나긴 기다림. 밴쿠버에서 타고 온 국내선이라 한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이러한 기다림이 익숙해 보이는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새벽 한 시, 호텔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불안했던 것은 호텔까지의 이동이었다. 호텔에서는 셔틀을 제공해준다고 했지만 시간은 거의 새벽 한 시가 되었고 셔틀이 끊겼다고 거의 확신을 했다. 워낙 오기 전에 캘거리에 대한 사건 사고를 많이 검색해 보아서 그런가 걱정은 더욱 커졌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서도, '공항에 마중 나와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시는 염려를 보내셨다.  


    택시를 같이 타고 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 주위의 한국인을 둘러보았다. 거의 장발이라 헤어밴드를 하고, 갈색 외투를 입고 있는 내 또래의 남자애가 보여 말을 걸까 말까 수많은 고민을 했다. 한국인이 아니면 어쩌지(그럴 확률은 낮았지만), 거절당하면 민망할 텐데.... 등. 예전에 대학교 OT를 가려고 버스 줄을 서는데, 앞에 있는 남자애한테 말을 걸어서 지금은 4년 지기 친구가 된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용기 내서 말을 걸었다. 


'저 혹시 한국인이세요?'


'아, 네!'


'그럼 혹시 저랑 택시 같이 타고 가실래요? 밤이 늦어서....'


    하지만 돌아왔던 대답은 '픽업해주실 분이 있다'는 거절이었다. 데려올 사람이 있다는 부러움과 씁쓸함이 섞여 복잡한 마음으로 나도 호텔에 전화해서 혹시라도 셔틀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30분 후에 셔틀이 도착한다는 좋은 답변을 받았다. 직원 분의 말이 너무 빨라 'Pardon Me!'만 세 번 넘게 했어야 했지만 말이다. '1시 5-10분까지 5번 게이트로 와라'라는 답변을 들었는데, 그 뒤에 자꾸 16, 17을 외치길래 헷갈렸다. 알고 보니 '5번 게이트 앞 16-17 정류장 사이로 와라'라는 뜻이었더라. 캘거리 공항에 대해서 알 리가 없는 나는 어리둥절함의 연속이었다. 


입국 서류가 몽땅 든 짐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은 짐을 하나씩 찾아 가는데 내 짐 하나가 나오지를 않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부쳤던 작은 기내용 캐리어였다. 당연히 들고 탈 줄 알고 캐리어 앞 주머니에 스터디 퍼밋, PCR 검사지, 입학허가서 등 모든 중요한 서류들이 담긴 파일을 넣어 놓았는데, 공항 측에서 무료로 부쳐 준다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캐리어를 넘겼다. 잃어버리면 정말 낭패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나를 보고 뒤에 남자 친구분과 서 있던 금발 언니가 '저기 에어캐나다 사무실 앞에 캐리어들이 몰려 있으니 확인해봐라'라고 말해주었다. 자기도 캐리어를 거기서 찾았다고. 키도 크고 얼굴도 정말 예쁘셨던, 캐나다의 메이플 리프가 그려진 모자를 쓴 그 언니에게 참 고마웠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내 작은 캐리어는 보이지가 않았다. 들고 탈 거라고 생각해 다른 캐리어들과 다르게 보자기 조각을 묶어두지도 않은, 그래서 마냥 시커먼 검은색이라 찾는 것도 힘들었다. 와글와글 모여 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 한산했고, 주인을 찾지 못한 가방들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정말 잃어버렸나?'라는 불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에어캐나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을 잡고 캐리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수하물 확인 티켓은 다행히 파일 안에 넣지 않아서 번호를 확인했고, 직원 분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던 그때, 컨베이어 벨트에 익숙한 가방이 보였다. 


    '찾았어요!' 


    안도감에 웃음이 나왔고, 발끝까지 지친 상태에서도 '잃어버린 줄 알고 걱정했다, 다행이다'라고 직원분과 대화를 나눴다. 곧 호텔에서 제공한 셔틀이 도착하기에 서둘러 5번 게이트 앞으로 뛰어갔다. 


팁은 안 주셔도 돼요, 그냥 도와주는 겁니다.

    

    영하 24도의 새벽 캘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추웠다. 롱 패딩 안에 후리스를 입고, 그 안에 티셔츠를 입었는데도 바람이 조금 분다 치면 안쪽 살을 파고들었다. 캐리어를 찾고 뛰느라 한가득 났던 땀은 이마에서 바로 얼었고, 굳어버린 앞머리는 흔들리지도 않았다. 



    셔틀 기사님께서는 운전석에서 내려 내 모든 짐들을 뒤에 싣도록 도와주셨다. 공항 카트가 없는 순간부터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짐 옮기기였는데,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차에서 이동하는 내내 캘거리가 춥지 않으냐고 말을 걸어주시고(너무나 춥다고 대답했더니 웃으셨다), 나 다음으로 셔틀에 탄 커플도 나를 보자마자 생긋 웃고는 스몰 톡을 이어나갔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셔틀을 타는 내내 나는 팁을 얼마를 드려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짐이 많아 많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보통은 지불해야 하는 가격에 15%를 준다고 하지만 이 셔틀은 무료였고, 너무 적게 드리면 오히려 호의를 무시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기사님께서는 짐을 전부 내리고 호텔까지 이동하는 것도 도와주셨다.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결국은 직접 가서 물어보는 방법을 택했다. 


'짐 옮겨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제가 캐나다에 처음 온 거라, 팁 문화를 잘 몰라요. 혹시 이런 경우에는 팁을 얼마나 드려야 하나요?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요.'


    기사님께서는 웃으시며 손사래를 치더니 '팁은 안 주셔도 돼요. 그냥 도와주는 겁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라고 말씀해주셨다. 괜히 여쭈어 보았나 싶으면서도, 추운 캐나다의 날씨 속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The largest bag that I've seen!


    내가 머물렀던 호텔은 '윈덤 가든 캘거리 에어포트'였다. 평점이 좋고 공항에서 가까우며, 셔틀이 있는,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은 호텔로 예약을 했다. 그래도 가격은 12만 2천 원 정도. 너무 저렴한 호텔은 위험할 수도 있을까 봐(사실 그렇지는 않다) 적당한 가격으로 타협을 했다. 



    카운터에서는 아까 전화를 받았던 말 빠른 직원이 체크인을 도와주셨다. 앞에 사람이 많아 15분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그래도 따뜻한 샤워와 침대가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체크인에서는 여권과 PCR 검사지를 확인했고, 보증금을 50불 카드로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내 카드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현금으로 무려 200달러나 맡기고 아침에 찾아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신한 체크카드를 이용하게 되면 호텔 등에서는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도난 이후 부정 사용 등이 이유라고 하는데, 사실 왜 딱 호텔만 그렇게 제한하는지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사용하는 카드는 미니언즈가 앞에 그려진 'Hey Young' 비자 카드인데, 호텔과 마찬가지로 에어비앤비 결제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 출국 전에 은행에 가서 해외 사용을 위해 만든 카드였는데 안타깝다. 신한 은행 카드를 가지고 출국하는 사람들은 꼭 확인해보길!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방으로 짐을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트 없이 가방 4개를 끌고 가기에는 힘이 너무 빠져 있었고, 호텔에서 카트를 빌렸지만 괜히 작은 사이즈를 가져와 가방 두 개만을 겨우 얹었다. 낑낑거리며 끌고 가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자기가 태어나서 본 가방들 중에 제일 크다'는 칭찬(?)을 해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를 위해 모두 길을 비켜주셨고, 나는 두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모든 짐을 싣고 위로 올라갔다. 호텔이 낡고 엘리베이터도 나무 재질이라 내가 힘을 쓰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아래까지 다 들렸고, 사람들은 'Oh my gosh!' 하면서 감탄사를 내뱉어 주었다. 끝까지 다사다난했던 호텔 입장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호텔(추천합니다!) : https://www.wyndhamhotels.com/wyndham-garden


태어나서 먹었던 짜파게티 중에 가장 맛있었던


    방에 모든 짐을 옮겨 놓고 나서는 편한 잠을 자고 싶어 가방을 전부 뒤져 잠옷을 꺼내 입었다. 밖이 그렇게 추웠는데도 옷 안쪽은 땀으로 흥건해 내일 입을 새 옷도 꺼내 두었다. 호텔의 수압이 세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내친김에 팩도 했다.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고 영상 통화를 하고, 일기를 마저 쓰기도 했다. 밀린 일들을 하나하나 해내며 점점 긴장이 풀리고 배가 고팠다. 



    마음 같아서는 뜨끈한 컵라면을 먹고 싶었지만, 가방에 짐이 많아 출국 직전에 부모님께 건네 드려 짜파게피밖에 남지 않았다. 이게 어디냐 싶어 로비로 내려가 뜨거운 물을 요청드렸고, 일회용 젓가락이 없어 한국에서 싸 온 쇠젓가락을 이민 가방 앞주머니에서 꺼냈다. 볶음 김치를 얹어 먹으니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하나로 배가 다 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게 아주 늦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주 달았던 잠과 기숙사 입주



    길고 긴 여정 끝에 누운 침대는 정말 푹신했다. 생각할 새도 없이 잠들어 체크아웃 시간 직전에 잠이 깼다. 그래 봤자 9시간 누워 있었던 거였는데,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 카운터에 전화해 레이크 체크아웃을 부탁드렸다. 한 시간 가량 더 뒹굴거리다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더 머물고 싶었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기숙사 입주를 얼른 해야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밖은 여전히 추웠지만 낮에 보는 캘거리는 또 아름다웠다. 온 세상이 흰 눈과 추위로 덮여 겨울 왕국이었다. 우버를 잡았는데, 짐이 많은 터라 5인승으로 예약을 해 공항에서 기숙사까지 무려 50달러가 넘었다. 그래도 편하게 기숙사에 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번엔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신 기사님께 스무스하게 5달러를 팁으로 드리기도 했다. 하루 사이에 그래도 하나는 적응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기막힌 우연!


    캘거리에 도착하고 약 세 달이 지난날, 기막힌 우연이 만든 인연이 생겼다. 캘거리에 도착해 짐을 기다리다 말을 건, 그 헤어밴드를 쓴 한국 남자애를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외국인들과 한국어를 배우는 KCC라는 모임을 갔는데, 앞자리에 앉은 한국인과 대화를 하다가 입국일이 같은 것을 발견하고 익숙한 헤어밴드길래 혹시 싶어 물어봤는데, 바로 그 친구였다! 내 또래일 것 같다는 예상이 정확하게 맞았고(동갑이었다), 내가 택시를 같이 타자고 한 것도 기억해 주었다. 그 친구랑은 지금 같이 자전거를 타고 친구 생일 파티를 가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 역시나 말을 걸길 잘했다! 


그럼, 캘거리 대학교 기숙사 소개를 비롯한 적응기는 다음 일기에!


오늘 깨달은 일상의 TIP

-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할 때는 그냥 걸자. 밑져야 본전이고, 혹시 인연을 만날지 모르니까...ㅎㅎ
- 신한 체크카드를 해외에서 이용하고자 할 땐 숙박 시설에서의 결제가 가능한지 확인하자.
- 캐나다에서의 팁은 주는 사람 마음이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면 가격의 15% 내외로!

2022.01.06부터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게재해 온 캐나다 교환학생 일기를 하루에 하나씩 정리해서 올립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부터 교환학생 생활에 대한 유익한 정보까지, 솔직하고 꼼꼼하게 담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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