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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Apr 20. 2022

결국 왈칵 울어버렸던, 기나긴 밴쿠버 환승의 기억

2022.01.07 일기 (캐나다 DAY+1)

한 시간 반 만에 이걸 다 하라고?


여권 뒤의 흰 색 종이가 키오스크에서 뽑은 것, 사진과 함께 프린트 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해야 했던 건 뛰어서 밴쿠버 공항 가로지르기.


    탑승구에서 내려 한국인들을 따라 뛰다시피 걸으니 키오스크처럼 생긴 예비 입국 심사대가 나왔다. 날개 쪽 자리였던 나는 비교적 일찍 나왔고, 기계도 굉장히 많아서 여유 있게 일을 볼 수 있었다. 여권을 스캔하고 지문 등록, 사진 촬영 등의 간단한 절차를 거치니 종이가 한 장 나왔고, 이를 들고 또 줄을 서서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입국 심사대처럼 생긴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비자 심사를 하나보다, 하고 가져온 서류들을 모두 꺼냈는데 오직 음성으로 나온 영문 PCR 검사지만을 요구했다. 알고 보니 이후에 캐나다에서 할 PCR 검사 요청서를 받는 줄이었다. 이때만 해도 밴쿠버가 아닌 캘거리에서 제대로 된 입국 심사를 받는 줄 알고,  '아, 거의 다 했구나!'라는 아주 과대평가된 짐작을 했었다.


느려도 너무 느렸던 캐나다의 일처리

    

기둥 뒤로 보이는 곳이 입국 심사를 하는 곳. 사람들이 서 있는 곳 앞에 두 번째 사진과 같은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


    짐을 찾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었는데, 공항 직원을 붙잡고 여쭤보니 여기가 정말 비자를 발급받는 곳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공항 직원은 먼저 짐부터 찾고 여기에 오라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11시 50분에 도착한 인천발 밴쿠버행 비행기의 짐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밴쿠버에서 캘거리까지 가는, 내가 예약한 다음 비행기는 1시 반이었다. 짐을 찾을 때 즈음이 12시 10분 정도였고, 자가 환승이었기에 짐을 찾고 또 짐을 다시 부쳐야 했으며 아직 제대로 된 입국 심사도 받지 못했단 것을 자각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함께 기다렸던 왼쪽 아주머니께서는 에드먼턴에 가는 비행기가 1시인데 어떡하냐고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걱정되었던 것은, 짐을 사람들이 모두 찾으면 비자 발급을 받는 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내 짐이 늦게 나오기라도 한다면 비자 발급은 더더욱 늦어질 것이다. 공항 직원 말만 듣고 마냥 짐을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먼저 심사받는 방으로 들어가 앞사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비자와 짐과 탑승 시간 사이의 초조함


짐을 기다리면서 확인한 비행기 시간.


    왼쪽에는 아랍 국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50-60명씩 서 있었다. 여쭤보니 워크퍼밋 받는 줄이라고 했다. 시급이 15달러, 팁까지 받고 택스는 5% 밖에 떼지 않는 캘거리의 조건이 너무 좋아 진지하게 워크 퍼밋도 고려했지만, 이때만큼은 스터디 퍼밋으로 오기 잘했구나 싶었다.


    나는 eTA 비자와 스터디 퍼밋 모두를 신청해놓았는데, 출국하고 나서 까지도 스터디 퍼밋 승인이 나지 않아(출국 한 달 반 전 즈음에 신청) 사실상 eTA 비자만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입국을 거절당할 일은 드물겠지만, eTA는 사실상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에 들어 올 수만 있는 7달러짜리 허가증에 불과하기에 입국이 보증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 서 있는 여자애에게 '이 줄이 스터디 퍼밋 줄이 맞냐'라고 물어보니 맞다고 대답했다. 내가 비행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지금 너무 불안하다고 했더니, 자기는 밴쿠버가 도착지고 이미 승인받은 스터디 퍼밋이 있어서 금방 끝날 거라고, 혹시 원하면 먼저 받으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어차피 짐이 나올 때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캐나다에 도착해서 처음 느껴보는 호의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중간에 짐이 나왔는지 확인하고 싶어 대기하는 자리에 내 배낭과 서류를 놓고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 다녀왔는데 역시나 아직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직원들이 이 가방과 서류 주인이 누구냐고 찾고 있었다. 급하게 내 것이라고 했더니, 절대 가방만 놓고 어디 가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여기저기 물건을 흩뿌려 놓아도 안심이었는데, 외국인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비자 발급!


    앞의 친구가 허가를 받는 데에도 5분 넘게 걸렸는데, 나는 10분 가까이 서류를 들여다보고 계셨다. 탑승 시간은 가까워지고, 비행기를 놓치는 것은 상상도 못 하겠고, 내가 재촉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보니 단순히 입국을 허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직 승인받지 못했던 스터디 퍼밋을 그 자리에서 승인하고 서류를 만들어야 해서 오래 걸린 것이었긴 했지만.... 한국의 일처리 속도에 익숙했던 내가 처음으로 캐나다의 여유로움을 마주했던 시간이었다. 내 서류를 들고 있던 직원분이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옆 사람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휘파람도 불며 일을 하시는 동안, 내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결국 내가 준비해 갔던 수많은 서류 중에 검사한 것은 학교 입학 허가서뿐이었다. 입국 심사에 통과하고 짐을 기다려 받으니 1시 정도, 탑승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았었다. 13킬로짜리 이민 가방 2개, 가장 큰 대형 캐리어 하나, 작은 기내용 캐리어까지 네 개를 혼자 들고 카트에 실었다. 과연 짐을 지금 부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불안감이 몸을 사로잡았지만 일단은 '이제 공항에서의 절차는 다 끝났겠지?'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아, 이러다간 진짜 비행기 놓친다


    하지만 밴쿠버 공항의 환승 절차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말 억 소리 나는 PCR 검사 줄이 앞에 있었다. 당연히 입국 심사도, PCR 검사도 캘거리에서 할 줄 알았던 나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입국하기 전에 신청하는 ArriveCan이라는 서류에서 '미리 PCR 신청을 하면 공항에서의 대기 시작을 아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봤었는데, '귀찮다, 그냥 캘거리에서 조금 기다리지 뭐' 했던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PCR 검사를 기다리는 줄에서 휴대폰 QR 코드로 가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 것도 헷갈리고 오래 걸렸고, 애초에 이 줄 자체가 너무 느리게 줄어들어 20분 넘게 서 있어야 했다. 내가 타려는 비행기가 30분 정도 연착되어서 짐을 찾고 바로 뛰어가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PCR 검사 줄에서 발이 묶이면서 큰일 났다 싶었다.


    일단 가능한 밴쿠버-캘거리행 비행기를 스카이스캐너에서 급하게 검색을 했다. 상상도 못 하지만 혹시라도 비행기를 놓치면, 밴쿠버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비행기를 타고 캘거리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비행기표는 50만 원이 넘었다. 솔직히 지금 밴쿠버-캘거리 왕복 비행기는 5만 원도 안 하는데, 그때는 뭐 이리 비쌌나 싶다. 잘못 봤을까 봐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원화로의 계산을 했는데도 그때는 확실히 50만 원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거금을 쓸 수는 없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렇다면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직원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지금 비행기가 곧 출발하는데, 이걸 놓치면 다음 비행기는 너무 비싸고, 반드시 이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다행히 직원분이 긴 줄에서 나를 빼내어서, 자가로 검사를 할 수 있는 키트를 받게 했다. 내가 있던 PCR 신청을 하는 줄 문이 열렸고, 그 뒤에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실제 검사를 진행하는 줄이 있었는데 정말 여기에서 기다리다간 2시간은 후딱 이었겠구나 싶었다.


50킬로짜리 카트 끌고 공항 질주



    검사 키트 상자를 들고,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카트를 끌고 나서는 이제 짐을 다시 부칠 에어캐나다 카트를 끌어야 했다. 비행기가 출발한다고 고지된 시간이 10분도 남지 않을 때였다. 사실 짐도 부치고 수색받고 탑승을 하기에는 당연히 불가능한 시간이었고, 이미 놓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이걸 받아들이고 느긋하게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무거운 가방들을 들고 공항을 마구 질주했다. 실수로 방향을 잘못 잡아 공항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내 조급함이 표정으로 보였는지 친절한 한국 분들께서 엘리베이터 자리도 마련해주셨고, 길도 비켜주시기도 했다.


    아까 짐을 기다리면서 뒤에 서 계시는 공항 직원분께 '혹시 짐을 여기서 찾는 것이 맞냐'라고 여쭈어 보았는데, 뜬금없이 짐을 옮기려면 30달러를 내야 한다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공항 직원은 아니고, 짐을 옮기는 것을 돕고 돈을 받는 장사꾼이었다. 그분께서 '공항이 아주 크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역시나였다. 내 몸무게만 한 짐을 끌고 달리고 달렸는데도 에어캐나다 카운터는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에어캐나다 직원처럼 보이는 분께 방향을 여쭈어 보고 또 달리는데 불안함과 초조함에 눈물이 났다. 일단 눈물 흘릴 시간도 없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카트를 밀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다음 비행기표 수령

    


    결국 내 예상대로 비행기 탑승구는 이미 닫혀 있었다. 온몸이 땀범벅인 채로 카운터 앞쪽의 직원분께 갔는데, 정말 다행히 에어캐나다 측에서 가장 이른 티켓을 무료로 주셨다. 바로 다음 비행기는 2시간 후였지만 자리가 없었고, 결국 6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비행기표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새 표를 들고 내가 밀고 다니던 그 무거운 짐들을 전부 부쳤다. 속이 후련했다. 캘거리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오히려 몸수색과 짐 검사가 더욱 빡빡했는데, 가방에 있는 노트북과 카메라 등 전자제품을 모두 꺼내 어떤 기계에 올려놓고 확인을 받아야 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도 함께 생겼다. 캐나다 기념품을 파는 공항 상점에서부터 각종 음식점까지, 내가 외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병을 사서 마시려고 하는데 물가를 보고 정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음료수 한 병에 1,500원 정도 하지 않나? 여기서 내가 고른 음료수는 무려 4달러였다. 5달러짜리 지폐를 미리 꺼내놓았는데, 택스까지 포함을 하면 5달러가 넘어 결국 10달러 지폐를 지불하고 잔돈을 왕창 받아야 했다. 여긴 1, 2달러도 모두 동전이기에 짤랑이들을 가득 얻을 수 있었다.


늦어진 도착 시간, 일정을 바꾸자!


    초기 캘거리 도착 예정 시간은 늦어도 4시였지만, 이제는 출발 시간이 저녁 7시였다. 기숙사 입주를 하기 위해서는 8시 전까지 International House에 도착을 해야 할 텐데 이미 늦은 것은 확실했다. 도착하면 너무 늦은 밤이기에 공항 가까이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고, 기숙사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해 토요일에도 입주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영어로 처음 전화를 하는데 떨리고 지쳐서 제대로 말도 못 했었다. 돌이켜보면 영어 실력이 조금 늘긴 했네....


계속되었던 비행기 연착, 그리고 우여곡절 끝의 캘거리!


    6시간 대기는 정말 길었다. 휴대폰으로 일기를 쓰고, 스토리를 올리고,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 누워서 조금 자기도 했는데도 시간이 가지를 않았다. 표에 적혀 있던 탑승 시간이 되어 탑승 게이트에 갔는데, 내가 타야 하는 편명은 동일한데 탑승 시간이 10시로 변경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워 직원 분께 여쭤보니 연착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공항에서 이용할 수 있는 10달러짜리 쿠폰을 주셨다. 어차피 배가 너무 고팠기에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누들을 사 먹었다. 만 원이면 한국에서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디저트까지 먹을 수 있는데, 여기 물가는 너무 비싸 10달러 미만인 음식이 없어 결국 추가금을 내야 했다.



    드디어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고, 벌써 20시간이 넘도록 비행 혹은 대기를 했던 차라 피곤함은 한계를 넘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대기는 계속되었는데, 1시간이 넘도록 뜨지 못해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이륙 후 하늘에서 보는 밴쿠버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밴쿠버 아일랜드와 밴쿠버 다운타운이 불빛으로 구분되어 한눈에 들어왔고, 불빛은 생각보다 환했다.


    비행기에서는 잠을 잔 기억밖에 없다. 중간에 음료가 제공되지만, 내가 너무 깊게 잠들어 있어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덕분에 2시간이 금방 흘렀다. 그래도 정말 드디어, 이렇게 길고 힘든 환승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캘거리를 밟는구나, 싶었다. 힘들었던 만큼 잊지 못할 환승의 기억이었다.


    캘거리 도착 후의 이야기는 다음 일기에!


오늘 깨달은 일상의 TIP

- 캘거리에 입국해서 환승해야 한다면, 무조건! 환승 시간이 넉넉한지 확인하기
- 지금은 PCR 검사가 없어 변경되었을 수 있지만, 내 경우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했음
       1) 키오스크 종이 프린트
       2) PCR 검사지 수령
       3) 짐 찾기
       4) 비자 발급 및 입국 심사
       5) PCR 검사 신청 및 검사
       6) 이동 및 체크인, 짐 부치기
       7) 검색대 통과
- 비행기는 놓치거나 연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기!    



2022.01.06부터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게재해 온 캐나다 교환학생 일기를 하루에 하나씩 정리해서 올립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부터 교환학생 생활에 대한 유익한 정보까지, 솔직하고 꼼꼼하게 담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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