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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02. 2023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제6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강한 영어학원 만들기에 업로드합니다.]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199

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1

3화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4

4화 문제는, 나는 그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6

5화 나는 동그라미 모양인데 그 회사는 별 모양이라서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7






첫 회사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식품회사의 마케팅팀.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고 원했던 그 산업과 직무를 찾아 꾸역꾸역 들어갔다. 


직원 수는 약 60여 명에 매출액은 360억. 


회사는 작았지만 일은 재밌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으로의 출장이 잦아서 해외를 갈 일이 많았고 결이 맞는 좋은 팀장님을 만났다.


회사에서도 동기들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입지를 다져 나갔다. 


작은 회사여서 가능했겠지만, 사원인 내가 사장님실로 불려 가 직접 업무를 지시받거나 보고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더 큰 회사로의 갈증, 나를 시기질투하는 옆 팀 대리의 괴롭힘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계속해서 퇴근 후 이직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시간들이 몇 개월 이어졌다. 


결국 매출액 1조 이상의 회사로 이직을 성공했다. 


‘니가 아무리 나를 미워해봤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뿐이지 좌절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옆 팀 대리를 두고 회사를 떠났다. 


통쾌했다. 

한 방 먹인 기분이었다. 


상대가 파괴적이고 비 건설적인 험담을 하는 동안 나는 괴롭힘에 굴하지 않고 눈물지으며 밤새 이직 준비를 했다는 것이 슬프게도 뿌듯했다. 





새 회사에 갈 땐 많이 긴장했다. 


원래 있던 곳보다 훨씬 큰 회사였고 경력직 입사자에게는 곧바로 성과를 요구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걱정은 무색했다. 


파트장님은 유능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와 또래인 세 명의 파트원들은 서로 금방 친해져서 퇴근 후 술 한 잔 기울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리님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팀 내에 또라이가 없으면 본인이 또라이라는데, 내가 또라인가?하고 의심하는 순간이 있을 만큼 좋은 팀원들이었다. 




그렇게 새 회사에서 6개월이 지나고 우리 팀은 공중분해 되었다. 


사내 신규 사업 인큐베이팅으로 시작한 우리 팀은 경영진의 판단에 의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팀원들은 각자가 원래 일하던 팀에서 차출되어 왔기에 다시 돌아가면 되었다. 




문제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파트장님은 우리 팀의 공중분해를 안내한 뒤, 나와 개인 면담을 잡아 말씀하셨다.


“나랑 같이 전략기획팀으로 가는 게 어때? 지금 당장 마케팅팀으로 가면 좋지만 T.O. 가 없기도 하고, 숫자랑 기획 다룰 줄 알면 나중에 마케터로도 큰 도움이 될 거거든. 한 번 생각해 봐.” 



파트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략기획팀으로 못 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한 번 생각해 볼 수'가 없었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다시 이전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나는 파워포인트와 발산하는 사고가 익숙한 마케터에서, 엑셀과 깊이 수렴하는 사고가 필요한 전략기획팀원으로 원치 않는 2차 전직을 하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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