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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03. 2023

다음 날, 나는 인사팀에 면담을 요청했다

제7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강한 영어학원 만들기에 업로드합니다.]






전략기획팀으로 넘어가서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숫자를 보고, 가공하는 일이었다. 


각 본부에서 제출한 내년 매출목표를 취합하고, 목표액이 어떤 근거로 산정되었는지 검토하고, 회사의 전략 방향과 향후 시장의 변동 가능성에 맞추어 목표액을 수정하고, 다시 본부에 보내 실현 가능한 액수인지 조정하고... 


물론 내가 메인으로 하는 업무가 아니라 나와 함께 본인의 원래 팀으로 돌아온 파트장님과 함께 하는 일이었다. 


경력직으로 들어왔지만 마케팅 경력이었고 전략기획 업무에서는 신입과 다름없었던 나는 회사 내에서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에 놓였다. 


다행히 파트장님은 그 부분을 잘 알고 계셨고 신입을 가르치듯 (사실 이 업무에선 신입이니까!)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이 시기에, 모든 숫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파트장님 말고도 전략기획팀에 소속되어 있던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신입 사원으로 입사했을 때부터 전략기획팀 소속이었다. 


나와 연차는 비슷했지만 꾸준히 몇 년간 이 업무를 해온 그녀와 나는 업무 처리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허둥대는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팀과 회사 내에서도 에이스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그녀는 서툰 나를 도와주고 안심시켜 주며 일을 알려주었다.


팀장님이 임원진 보고로 두어 시간 자리를 비우는 때에는 기가 막히게 스케줄을 꿰고 있어서, 쩔어 있는 나를 데리고 나가 회사 야외 정원에서 한 숨 돌리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마음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정말 많이 의지했다. 




팀장님은 내가 전략기획팀으로 발령이 날 때, 다른 팀에서 전략기획팀장으로 발령이 나서 새로 오셨다. 


말하자면 나도 팀장님도 다른 팀에 있다가 전략기획팀으로 처음 오게 된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나이스한 분이셨다. 


큰 소리를 내거나 반말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인자하신 분이었다. 


다만 내가 업무적으로 질문을 할 때 그것에 대해 알려주시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해결해주시지 않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업무분장이 하나 있었다. 


나를 거래처 담당 컨택 포인트로 선정한 일이었다.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대략 상장 회사의 IR 담당자와 비슷한 업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거래처들과 서로의 매출, 수익 부분에 대한 정확하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해야 하는 업무였다.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러 거래처의 컨택 포인트를 맡은 분들은 모두 각자의 회사에서 대리 말에서 차장 사이의 직급인 사람들이었다. 나만 사원이었다. 


둘째, 나는 그 당시 회사에 들어온 지 6개월이 갓 지난 상태였으며, 그 6개월조차 신규사업 마케터로 근무했던 때이다. 회사의 숫자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셋째, 이 부분을 사수 없이 나에게 단독으로 맡긴 업무였다. 


난 처음에 팀장님의 속뜻을 알아차리려 노력했다. 



내가 이 팀에서
잘 성장하는 기획자가
되게 하기 위함일까?



그래서 난 모르는 것을 곧바로 묻기보다는 어떻게든 해결하려 노력했다. 


내가 각 팀에서 받은 자료 중 거래처에게 공유해야 하는 숫자가 이해되지 않으면, 내 자리의 노트북을 뽑아들고 그 숫자를 만든 팀의 담당자의 자리에까지 방문해서 질문했다. 


메신저로 묻기에는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어서 소통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직접 자리까지 간 것이다.


그렇게 한 번씩 노트북을 들고 다른 팀에 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일을 해내야 했으니까. 



또 어느 때는 회계팀에 찾아가 여러 업무로 바쁜 담당자를 붙들고 죄송하지만 이 일부터 처리해 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을 했다.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다. 


팀장님이 전화 한 통으로 회계팀장님께 전화하여 업무 협조 요청을 했으면 쉽게 끝날 일이었다. 


팀장님은 그런 전화를 해 주신 적이 없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지쳐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도 해결할 수 없던 일들에 대해선 팀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팀장님은 말을 돌리며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언제나 뭉뚱그리셨다. 


나는 급격하게 안색이 어두워졌다. 


힘에 부치던 어느 날, 파트장님께 말씀드렸다. 


“파트장님, 팀장님께서 제가 모르는 것들이나 업무에 대해 질문하고 요청하면 알려주시질 않아요. 제가 여기부터 여기까지 이러저러한 방법들을 써서 가능한 만큼 한 다음 여쭙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략기획 업무를 오래 담당하다가 신규사업 기획자로 나와 함께 일하다 다시 전략으로 돌아온 파트장님은 안타까운 얼굴로 말하셨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지켜봤는데, 팀장님이 이 전략기획 업무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그래서 물어봐도 잘 알려주시질 않고. 나도 컨택포인트 담당자 선정이 이해가 안 됐거든. 일단 내가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보자.” 


이럴 수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팀장님도 몰라서 그런 거라고? 


너무 허무했다. 

그리고 미웠다. 



다음 날, 나는 인사팀 과장님께 면담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다음 편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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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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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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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문제는, 나는 그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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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는 동그라미 모양인데 그 회사는 별 모양이라서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7

6화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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