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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16. 2021

김네 김밥에 자주 가요.

우리 오늘부터 1일

보이는 대로


 자주 가는 식당을 소개하라고 했더니 ‘김네 김밥’이라 말한 미국인 학생이 있었다. 처음에는 ‘김네 김밥’이라는 식당도 있나 했다. 그래, 예전 우리 집 근처에 있 식당은 ‘김밥 천국’이 아니라 ‘김밥 천지’였잖아. ‘김네 김밥’도 있을 법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이 말한 ‘김네 김밥’은 이름을 듣고 내가 떠올린 식당이 맞았다.


 김밥 전문점 ‘김가네’의 간판에는 식당 이름이 ‘김家네’라고 적혀 있다. ‘家’는 간판 중앙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학생은 한글 ‘김’과 ‘네’만 글자로 생각해서 ‘김○네’로 읽은 모양이다. 그 학생이 한자를 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안다고 해도 한자까지 넣어 같이 읽어야 한다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김네’가 된다.

 사실 학생 말을 듣기 전까지는 우리가 한글과 한자를 같이 읽어 ‘김가네’라고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한글을 모르는 중국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간판을 본다면 ‘○家○’로 보일 것이라 생각하니 문자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의미를 알면 뜻을 가진 글자로 보이지만 의미를 모를 때는 그저 그림 같다.


 예전에 사우디아라비아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학생이 필기한 것이 신기해서 한참 공책을 들여다 봤다.  아랍어를 전혀 모르니 짧고 길고 꼬불꼬불하고 덜 꼬불꼬불한 선과 그 위에 있는 점들이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위 아래 문장이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말에 나와 다른 나라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 아랍어 글자는 비슷한 선과 점이 나열되어 있어서 시킨 사람도 없는데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뭐가 다른지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학생이 선물해 준 책에 내 이름이 아랍어로 적혀 있는데 아마 그 글자가 뒤집혀 있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아랍어를 배울 용기를 낼 것 같지는 않다. 아랍어 글자는 영원히 나에게 그림으로 남아 있을 예정이다.


첫인상


 학생들에게 한글의 첫인상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자주 나오는 대답이 ‘도형 같았다’이다. 옛날에는 세모도 있었으니 진짜 도형이다. 어떤 학생은 한글을 처음 봤을 때 네모와 동그라미가 있고 가로선, 세로선 같은 직선이 모여 있어서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학생은 ‘옷’이라는 글자가 사람 모습 같아서 귀여웠다고 고, 한국 드라마에서 처음 본 ‘ㅋㅋㅋ’와 ‘ㅠㅠ’의 모양이 재미있었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

 외국 문자 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점이 붙어 있는 문자 다. 베트남어 글자를 처음 봤을 때 글자 위에 점 같은 것이 두 개나 붙은 글자도 있고 우리의 마침표와 쉼표 같은 것이 글자 위, 아래에 막 붙어 있어서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보는 한글에는 점이 없지만 훈민정음 해례본 같은 데는 글자 옆에 점이 한두 개 붙은 글자도 있다. 점을 찍으면 아예 다른 글자가 되는 건가. 마치 드라마에서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한글은 알파벳의 대문자, 소문자처럼 크기를 다르게 쓰는 글자가 없고 각 글자의 크기가 비슷하다. 알파벳 ‘g’나 ‘y’처럼 아래로 내려서 쓰는 글자도 없이 모두 동일한 위치에 쓴다. 글자를 구성하는 자음과 모음의 크기를 조절해 가며 조화롭게 모아서 써야 보기 좋고 예쁘다. 모두들 어린 시절 한글을 배울 때 깍두기 공책에 글자를 썼을 것이다. 나도 열심히 공책에 있는 칸을 채우며 연습했다. 받침은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남은 공간이 별로 없어 난감해하며 무척 위축된 받침을 칸 안에 구겨 넣던 꼬맹이 시절이 있었다. 한 칸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초성과 중성과 종성에게 공평하게 나눠 줄 수 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글이랑 나랑 오늘부터 1일


 처음에는 직선과 도형으로 보였던 한글이 어엿한 글자로 입력이 되어 더이상 직선과 도형으로 보이지 않는 변화. 외국어를 배울 때 신기한 순간은 이렇게 글자와 글자가 아닌 것의 경계가 바뀔 때인 것 같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듯 의미 없었던 동그라미와 네모가 이제 ‘이응’과 ‘미음’이 된다.

 한류 열풍 덕분에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아졌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그런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몇 년 사이 유학생도 급격하게 늘었고 학생들의 국적도 매우 다양해졌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지구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는 ‘동그라미와 네모’가 ‘이응과 미음’으로 바뀌고 ‘가로선과 세로선’이 ‘모음’으로 의미가 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종대왕님은 말씀하셨다.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글자가 바로 한글이라고. 세종대왕님의 기획 의도는 우리 백성들이 쉽게 익혀 날마다 쉽게 쓰는 것이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 먼 나라 색목인들까지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해외 진출까지 하게  줄은 모르셨겠지만 제작자세종대왕님도 분명 흐뭇해하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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