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담임선생님은 부드럽고 친절한 분이었다. 온 시골 동네가 바쁜 모내기 철이 지나자, 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가정방문을 시작하셨다.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만나 나의 학교생활에 관해 칭찬을 듬뿍 말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이후 동네 이웃들을 마주칠 때면 학교에서 제법 공부를 잘하는 손녀딸을 자랑하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마루에서 학교에서 빌려온 책들을 쌓아놓고 읽고 있을 때면, 집안일을 시키지도 않으시고 밭에서 따오신 오이를 주시기도 하고 감자를 쪄주시기도 했다.
그해 시골 마을 6월은 유난히 해가 쨍쨍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반공웅변대회를 실시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조그만 책자 하나를 건네셨다.
“해달이 니, 요서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 보그라. 내일까지 원고지에 써 온나. 할 수 있재?”
그 책자는 반공웅변대회 원고 모음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웅변이 뭔지도 모르는데, 대회를 나가라니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뭔가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주신 원고지 종이에 연필을 꾹꾹 눌러 웅변원고 한편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 소리 내 읽어봤다. 그 책자의 원고 대부분이 공산당을 때려잡자, 괴뢰군을 무찌르자,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사실 나는 공산당이 뭔지 잘 몰랐다. 그리고 누굴 무찌르고 박멸해야 한다는 말들은 열 살인 나에게 너무 무시무시한 말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원고는 분단국가의 아픔과 통일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원고지에 옮긴 웅변내용을 외워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빨래터에서 빨래하며 한쪽으로 원고지를 작은 돌멩이 하나로 날아가지 않게 눌러놓고 외웠다. 커다랗고 작은 바위 사이사이, 시냇물이 옆으로 지나가며 맑고 경쾌한 소리를 냈는데,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어서 노랫말 같기도 하고, 가끔은 누가 나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말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중간중간 대꾸하듯 원고의 글귀를 말하며 빨래를 했다. 고개를 돌리면 주변엔 시냇가, 산, 하늘, 바람, 그런 것들뿐이었다. 마음이 편했고, 나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는 듯한 물소리와 바람 소리, 내 목소리가 장난치듯 즐거웠다.
드디어 반공웅변대회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나를 큰 교실로 데려가셨다. 거기에는 교장, 교감 선생님과 다른 학년 선생님들, 그리고 대회에 참가한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었고, 그 대회는 3학년부터 6학년 대상이니 나는 거기서 막내였다. 내 순번은 2번이었는데, 내 앞에 5학년 오빠가 크고 당찬 목소리와 자세로 발표를 마쳤다. 사실 내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왜 이렇게 낯선 사람들이 많지? 웅변은 어떻게 하는 거지? 나도 저 오빠처럼 손도 들고 소리도 질러야 하는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은 너무 낯설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내 다리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해마다 6월이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북녘땅에는….”
어깨를 움츠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순간, 나를 심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수십 개의 눈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다리가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저 사람들, 저 사람들은 왜 여기서 나를 노려보는 거야?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어디 갔지? 나를 버리고 다른 데로 가버리셨나?’
더 이상 말할 수도, 손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저 사람들의 눈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순간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세상이 까맣게 덮였다.
그렇게 나의 첫 웅변대회는 폭삭 망했다. 선생님은 나중에 내가 5분 정도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내가 눈을 뜨고 뭐라도 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결국 선생님이 단상으로 나와 나를 데려간 것 같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그대로 4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다시 6월이 되고,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에게 다시 그해 반공웅변원고 모음집을 주셨다.
“해달이 니, 작년에 해봤으니까 올해는 더 잘할 수 있재? 하나 골라 온나.”
선생님이 너무나 당연한 듯 말씀하셔서 나도 이상하게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 작년보다 올해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원래 이런 건가 보다. 한 번 망하면 또 해서 조금 더 잘하고, 그러면 사람이 많아도 발표를 잘하게 되고. 선생님이 또 하라고 하니, 이번엔 조금 더 잘해봐야겠다.
“근데, 니 이번에는 원고 다 외우면 마을 앞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한 번 해보래이. 달걀 하나 탁 까먹고, 위에서 아래를 내리 봐라. 밑에 나무들이 많이 있재. 나무들이 바람에 막 흔들린대이. 마, 그런기라. 발표할 때 보이는 사람들은 다 그런 나무들인기라. 암것도 아이다. 알겠재? 연습 10번 하고, 교실에서 우리 반 아들 앞에서 한 번 해보자.”
나는 여덟 장 정도의 원고지와 날달걀 하나를 들고 우리 동네 앞산으로 올라갔다. 나뭇가지 이파리 사이사이 불어오는 바람이 올라오느라 살짝 땀에 젖은 등을 시원하게 지나갔다. 달걀을 탁 까먹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봤다. 6월의 나무들은 초록이 짙기 시작했고,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릴 때마다 잎들은 와글와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잎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사람들이 내는 박수 소리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나는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많은 나무들 앞에서 완벽하게 외운 원고를 천천히, 자신 있게 발표를 시작했다. 어찌나 결연했던지 나도 모르게 손도 막 올라가고 마지막에 ‘이 연사 큰소리로 힘차게, 힘차게 외칩니다!’를 정말 큰소리로 힘차게 외치며 발표를 마쳤다. 내 앞에 있던 수많은 잎들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박수 소리를 만들었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맨 뒤쪽에서 선생님은 나를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긴장해서 살짝 땀에 젖은 등이 시원했고, 그것이 뭔가 후련한 느낌이면서 기분 좋은 시원함인 것 같았다.
- 에필로그:
3학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웅변은 매년 내가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특기가 되었다. 5학년부터는 웅변원고를 직접 써서 발표했다. 반공웅변이 주였던 웅변대회는 이후 점차 주제가 통일로 바뀌었고, 통일에 대한 방법론적인 여러 가지 접근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웅변대회 원고를 쓰고 발표했던 경험은 이후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주장하는 글을 쓰는 것이 익숙했고, 그것은 논술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또 3학년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비법으로 콩닥콩닥 수줍음 많았던 나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다가 넘어지면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걸어가면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신 성백* 선생님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