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슬쩍 꺼내 본- 합주회

10. 합주회

by 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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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곧장 학교 근처까지 갔지만, 교문 앞에서 서성이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가 상당히 되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알고 있는 그곳, 이미 봐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이 한두 명 지나가는 곳이다. 내가 대자로 엎드리고도 두세 명은 족히 더 엎드릴 수 있는 넓은 바위가 있고, 그 옆으로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버드나무랑 비슷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큰 바위가 있고, 거기에서 나는 혼자 나들이 온 듯이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엄마가 2년 전 사주셨던 목걸이 시계가 있어서 몇 시인지는 알 수 있었다.

‘9시 1분, 수업이 시작되었겠다. 지금쯤 선생님은 내가 안 온 것을 알고 걱정을 하고 계실까?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면 어떻게 하지? 반 애들은 내 생각을 할까? 내가 아프다고 생각할까? 그냥 갈 걸 그랬나? 아니야, 안 가는 게 맞아. 잘한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3교시 수업 시간이 되었다.

‘아, 벌써 3교시네. 드디어 3교시다. 이제 시작하겠지? 합주회.’


실로폰, 멜로디언 둘 중의 하나를 연주하는 반 합주회였다. 그런데, 나는 실로폰도 멜로디언도 없었다. 언니가 멜로디언을 가져갔고, 동생이 실로폰을 가져갔다. 엄마에게 차마 실로폰을 하나 더 사야 한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연습하는 기간 동안은 어찌어찌 실로폰 한 번, 멜로디언 한 번 이렇게 가져갔다. 언니랑 동생이 안 가져가는 날, 다행히 그날은 ‘악기’ 하나를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합주회 당일, 그날은 셋 다 동시에 ‘악기’가 필요했다. 그날은 중요한 날이었다. 나는 장학사들이 학교를 방문해서 담임선생님의 성과를 평가하는 날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할까. 1. 엄마에게 실로폰을 사달라고 한다. 2. 선생님께 악기가 없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린다. 3. 엄마 몰래 학교에 가지 않는다.’


- 실로폰을 사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와 헤어지고 자식들을 찾아오겠다고 몇 년을, 못 마시는 소주를, 맥주를 배우고 겨우 식당 하나를 열었다. 그 식당은 홀이 있고, 방 하나가 딸려 있었다. 민들레 식당, 엄마가 자기 이름으로 개업한 식당의 이름이었다. 민들레 식당 방문 뒤쪽으로는 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집들이 마주 보는 그런 모양이었다. 담벼락 쪽으로 가건물처럼, 흡사 헛간처럼, 스티로폼으로 두 평 남짓 공간을 만들었고, 우리 셋은 그 스티로폼 집에서 잠을 자고 생활을 했다.


언젠가 한참 잠을 자는데 언니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해달아, 일어나! 일어나라고!! 얼른 식당 부엌에 가서 큰 그릇이나 뭐 그런 거, 담을 것을 가져오라고, 어서!!”

나는 아직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민들레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큰 바가지, 그릇, 뭐라도 움푹한 것을 주섬주섬 주워 들었고,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보았다. 금세 내 머리가 젖었고,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 옷자락 끝에서도 물이 흘러내렸다.

“해달이, 뭐 해! 얼른 와. 다 젖어! 다 젖는다고!!”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우리-언니, 나, 여동생-는 여기저기 빗물이 주르륵하는 바닥에 그릇을 늘여 놓았다. 그릇이 작아서였을까, 빗물의 속도가 빨라서였을까, 야속하게도 그릇은 금세 차 버렸고, 언니는 물을 밖으로 버리라고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동이 터올 때까지, 비가 멈출 때까지 그랬다. 그날 저녁엔 여기저기 눅눅하고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더 진해진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는 괜찮았다. 우리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 물론, 그날 밤 엄마는 없었다. 괜찮았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일하다가 어디론가 잠시 간 것일 테니까. 아마도 비가 와서 엄마는 우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 비를 맞고 거리를 걷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민들레처럼, 들꽃처럼, 그렇게 홀씨들이 거리로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빗물을 담았고, 밖으로 버렸고, 반복했고, 그렇게 아침이 오기를,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래서였다. 나는 엄마에게 실로폰을 사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멜로디언보다는 실로폰이 저렴했지만, 실로폰도 비싼 악기였다. 우리 형편에는.


- 학교 땡땡이, 그리고 그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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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선택지 중 남은 두 가지, 선생님께 악기가 없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린다. 그리고 엄마 몰래 학교에 가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것은 마지막 [엄마 몰래 학교에 가지 않는다]였다. 담임선생님 성함은 배종*. 선생님은 아마 40대 아줌마였던 것 같다. 도시적인 세련됨이 묻어있는 차분하지만 따뜻한 분이셨다. 지적이고 아는 것이 아주 많은 분이셨다. 나에게 따로 어떤 말씀을 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내가 낸 숙제 공책에 잘했다는 말씀을 적어 주셨다. 그리고 1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은 두 손 가득 연필을 들고 오셨다.

“자, 이 연필들 주인이 있니?”

한참을 기다려도 주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 연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연필들을 너희들 중 필요한 사람에게 주려고 해.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아이들 중 누군가 말했다.

“해달이요~. 해달이는 볼펜 깍지에 연필을 끼워서 알뜰하게 써요.”

“맞아요. 해달이는 연필을 정말 절약해요.”

“해달이에게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사실, 언니가 몽당연필 두세 자루는 자기 볼펜 쓰던 깍지에 끼워서 쓰라고 했다. 나는 늘 정성스레 몽당연필을 볼펜 깍지에 끼워 칼로 뾰족하게 잘 다듬어 필통에 넣었다. 그것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총을 준비하는 군인의 자세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부끄럽지 않았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총을 잘 정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해달이, 나오세요. 연필을 아껴 쓰는 해달이는 자격이 있지. 자, 받아.”


연필은 수십 자루였다. 제법 새것들도 보였다. 집에 가져가자마자 언니에게 자랑했고, 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전리품을 다 수거해 갔다. 괜찮았다. 언니는 내가 필요한 만큼 항상 연필을 주었고, 한두 자루는 긴 연필이었고, 두세 자루가 몽당연필을 볼펜 깍지에 낀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가슴이 무척 벅차올랐고, 뿌듯했다.


나는 아마, 배종* 선생님께 빚을 진 느낌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장학사들 앞에서 선생님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또,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는 세 번째, ‘엄마 몰래 학교에 가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3교시가 시작되고 3교시가 진행되는 그 시간 내내 나는 엄마의 선물이었던 목걸이 시계의 초침, 분침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다른 것은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다른 곳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저 그 작은 동그란 원, 시계 안에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점심시간. 가방 안을 뒤적였다.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빨간 책가방 속엔 교과서와 공책 몇 권만이 있었다. 목이 좀 마르긴 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공책을 꺼냈다. 교과서도 꺼냈다. 배종*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교과서 보고 문제 200문제 내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85문제 정도를 써 내려가다가 문득, 저녁이 되는 것이 걱정되었다.

‘엄마, 엄마는 알게 될까? 선생님은 엄마한테 연락할까?’

갑자기 모든 것이 겁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지? 바보, 멍청이. 그냥 집에서 울어버릴걸. 왜 나는 엄마를 위한답시고. 왜 나는 선생님을 위한답시고. 이제 가면 혼나기만 하겠지? 아휴. 난 머리가 나빠. 바보. 바보.’


어둑어둑 저녁이 되었다. 그 커다란 바위에서 나는 공책과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집 쪽으로 가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담임선생님 집 쪽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 집이 어디라고 말씀해 주셨고, 나는 기억을 더듬어 용문동 배종* 선생님 집을 찾아갔다. 어떻게 찾았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문패에 한자로 선생님 성함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집이 선생님 집이라고 확신했다. 한참을 서성이다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할머니 목소리였다.

“저, 저는 배종* 선생님 반 학생 5학년 3반 67번 임해달이라고 하는데요. 선생님을 뵈러 왔어요.”

“아이고, 우리 딸아이가 성당에 갔다가 8시나 돼야 와요. 어떻게 하지?”

“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어둠은 점점 더 짙게 내렸다. 점점 춥기까지 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어났을 때, 누군가가 저쪽에서 다가왔다.

“선생님!”

“어, 해달아! 너 여기서 뭐 해?”

“선생님! 저. 저, 선생님이 곤란할까 봐 학교에 안 갔어요. 죄송해요. 저, 멜로디언도, 실로폰도 없어서. 으흐흑. 선생님, 선생님한테 잘못될까 봐 학교에 갈 수가 없었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선생님은 가만히 내 두 손을 잡았다.

“해달아, 그랬구나. 선생님은 네가 아파서 안 온 줄 알았어.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해달아. 미안, 선생님이 그런 사정도 모르고. 미안해. 해달아.”


선생님은 나를 안고 한참을 토닥거려 주셨다. 선생님도 계속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았는데, 바보같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선생님의 따뜻함이 느껴졌던 그 숄더 같은 곳에 얼굴을 파묻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9시가 다 된 것 같았다. 당연히 엄마한테 무지 혼났다. 그래도 좋았다. 다음날 엄마는 나에게 실로폰을 사라고 2천 원을 주셨다. 다행이다. 다음 합주회 때는 결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에필로그 -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마도 그때 나를 포옥 안아주셨던 선생님의 숄더가 그리워서일까. 그 시절 실로폰을 살 수 없어서 벌어졌던 나의 국민학교 시절 결석 사건이 아련해서일까. 그 시절은 어려워도 마음은, 마음은 따뜻했던 시절 같다.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은 학생을 이해하고, 부모는 자식이 학교에는 꼭 잘 다니기를 바랐던 그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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