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슬쩍 꺼내 본 - 새'엄마'

9. 새'엄마'

by 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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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이혼 후, 우리 4형제는 할머니 할아버지 시골집으로 보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손주 4명을 떠안게 되어 몹시 화가 났고, 그 큰 화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밥을 조금밖에 주지 않고, 집안일을 많이 시키고, 그런 구박은 괜찮았다. 하지만 언니에게 성질이 못됐다며 손으로 머리를 때리고, 뜨거운 곳에서 잠을 자면 안 되는 동생에게 손 병신이라고 욕을 하며 한겨울에 불을 때지 않는 차디찬 골방에서 자게 한 것은 너무 끔찍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몰래 대전에 있던 엄마에게 편지를 썼고, 봄이 되자마자 엄마가 시골집으로 찾아와 언니와 여동생을 데려갔다.


남겨진 막내 남동생과 나는 1년 반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보냈다. 4학년이 되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시골 생활이 제법 익숙해졌다. 학교생활은 즐겁고 평화로웠다. 매달 시험을 보고 결과에 따라 금, 은, 동 배지를 달아줬는데, 동네에서는 내가 제법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동네 어른들은 늘 칭찬해 주셨다. 7월이 되고, 한낮의 땡볕이 더, 더 뜨거워졌을 때, 어느 아침 할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저녁까지 일어나지 않으셨고, 다음 날 이른 아침 병풍으로 가려졌다. 시체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할아버지는 편안하게, 때가 되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혼자가 된 젊은 할머니는 할아버지 장례가 끝나고 삼촌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 나도 막내 남동생과 임시로 대전에 살고 있던 삼촌 집으로 가게 되었다. 삼촌은 아이가 둘 있었고, 나와 사촌 간인 그 아이들은 다 나보다 어렸다. 삼촌은 자주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신 날은 아빠의 옛날 모습과 비슷했다. 작은엄마를 때리고, 술주정했고, 애들은 다 숨어야 했다. 한 달 정도 그런 나날들을 지켜보다가 아빠가 찾아왔다. 우리는 아빠를 따라 대전시 서구, 아직 논밭이 많이 남아있는 변두리 동네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 새엄마가 있었다.


새엄마는 얼굴의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덩치가 좋은 여자였다. 부산 사투리를 썼는데,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다. 새‘엄마’는 갓난아기도 한 명 데리고 있었다. 이복동생은 얼굴이 하얗고 귀여운 여자 아기였다. 나는 아기의 포동한 손가락을 가만히 만져봤다.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왠지 눈물이 났다. 수나가 생각나서 그런가. 내 여동생 수나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하지만 새‘엄마’는 앞으로 옛‘엄마’ 이야기나 언니, 수나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앞으로는 내가 첫째고, 막내 남동생이 둘째고, 여자 아기가 셋째라고 했다. 새롭게 짜여진 가족관계가 너무 이상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나는 고작 열 한 살짜리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따질 수도 없었고, 잘못 말했다가 밥을 못 먹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새‘엄마’는 가끔 동네 작은 가게에서 쭈쭈바를 사주셨다. 분홍색이랑 흰색 두 종류가 있었는데, 나는 분홍색 쭈쭈바를 좋아했다. 시골에서만 살아서 그런 아이스크림의 존재도 너무 신선했지만, 뜨거운 한여름에 맛본 달짝지근한 쭈쭈바는 내 짧은 인생에서 맛보는 순간 머리를 ‘띵’하게 할 정도로 아주 맛있었다. 새‘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처럼 나에게 일을 많이 시키지도 않았다. 4학년 표준 수련장 문제집도 한 권 선물해 주셨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날, 쭈쭈바가 너무 먹고 싶었던 날, 새‘엄마’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겨우 들릴락 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엄…. 엄마, 저 쭈쭈바 하나 사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얼굴이 아주 아주 빨개졌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왠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뭐라카노? 니 뭐라 했노? 쭈쭈바?! 하이고, 돈 없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겨우, 겨우 참았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집에서 나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논 주변으로 달렸다. 이제 참았던 눈물이 막 흘렀다.

‘역시, 안 되는 거였어. 하지 말걸. 괜히. 괜히 말해서. 바보. 바보.’


그 뒤로 새‘엄마’에게 내가 먼저 뭘 해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주면 주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했다. 그래도 밥은 늘 먹을 수 있었고, 특별히 나에게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좋았다. 새‘엄마’는 자기가 낳은 예쁜 여자 아기를 키우느라 바쁜 것처럼 보였고, 그건 ‘엄마’로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의 옛‘엄마’도 언니, 나, 수나 어릴 적, 어진이 어릴 적 다 그랬을 테니까.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힘들지만 아기는 작고 예뻐서 아주 아주 조심해서 안아주고 업어줘야 하니까. 그래서 나도 새‘엄마’와 상관없이 새‘엄마’의 예쁜 아기를 좋아하기로 했다.


나는 새‘엄마’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서로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여주고 학교를 보내주는 것에 감사했다. 사실, 자신의 예쁜 여자 아기가 있는데도, 나와 막내 남동생 어진이를 받아준 것에 감동했다. 새‘엄마’는 무뚝뚝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나와 어진이가 예쁜 여자 아기에게 얌전하고 착하게 구는 언니, 오빠가 된다면 더 좋은 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새‘엄마’ 집에서 몇 달 못 있고 옛‘엄마’에게 돌아가게 된 것은 내가 막내 남동생, 어진이를 씻기려고 옷을 벗겼을 때 봤던 싸리나무로 때려서 선명하게 남겨진 핏빛 줄기들 때문이었다. 어진이는 네 살치고는 말을 아주 잘하는 아이였지만, 나에게 새‘엄마’가 때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누가 이랬냐고 물어보았다.

“엄마가, 엄마가 내가 잘못했다고 했다. 누나.”

‘뭘 그렇게 잘못해서 네 살짜리 아기를 때려. 너처럼 착한 아이를 나는 보지 못했는데. 동네 사람들도 다 네가 순하고 착한 아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가만히 네 살배기 작은 내 남동생, 어진이를 안아주었다. 아직 생채기가 아릴 것 같아 물을 묻힐 수 없어 새‘엄마’ 몰래 연고를 찾아 어진이의 등과 어깨에 발라주고 입으로 호호 불어주고 옷을 입혔다. 그리고 할머니,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얼마 뒤 옛‘엄마’가 찾아와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갔다. 언니와 여동생을 먼저 데리고 갔던 엄마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나 보다. 엄마가 일하는 민들레 식당, 그 뒤쪽으로 임시로 마련한 스티로폼을 엮어 만든 창고 같은 곳에서 우리 네 형제는 ‘함께’ 지내기로 했다.

- 에필로그: 지금도 새‘엄마’가 그렇게 밉지는 않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새‘엄마’는 너무 젊은 여자였다. 스무 살이 채 안 되는. 어린 나이에 사고를 쳤겠지. 아기가 생기고 옛날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시집을 왔겠지.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것도 힘든데, 갑자기 십 대 여자 아이와 네 살 남자아이를 함께 맡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녀 자신도 어린데, 갓난아기를 키우는 일도 버거웠을 텐데.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의 새‘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그저, 네 살, 내 사랑하는 남동생이 겪었을 아픔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뿐. 그런 상황을 만들었던 아빠가 원망스러웠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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