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봄, 할머니, 할아버지의 구박은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떠안게 된 손주 네 명이 먹는 쌀이 아깝다고 계속 말했다. 국민학교 6학년이 막 되는 언니는 삐쩍 마른 체형이었고, 입도 까탈스러워 음식을 절대 많이 먹지 않았다. 열 살이 된 내가 우리 형제 중에서 제일 많이 먹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서워 절대 많이 먹는 티를 내지 않았다. 주면 주는 대로 먹었다. 국민학교에 막 입학한 수나는 작고 왜소한 아이였고, 막내 남동생은 이제 세 살이 되었다. 그래도 네 명을 모두 합치면 많이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할머니의 유난한 언어폭력이었다. 할머니는 언니를 볼 때마다 싸가지가 없다, 대든다며 온갖 안 좋은 말을 했고, 수나에게는 병신이라며 밥 먹는 것도 아깝다고 했다. 수나가 집안일을 아무것도 못 해서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밤이 되고 나는 숙제를 하는 척하다 몰래 편지를 썼다.
‘엄마, 나랑 막내는 괜찮아요. 하지만 엄마, 언니랑 수나는 꼭, 빨리 데려가야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구박이 너무 심해요. 언니는 견디지 못할 거예요. 수나는 너무 불쌍해요. 엄마, 그러니까 엄마가 너무 힘들면 제발 둘만이라도 데려가 줘요.’
진달래가 피기 시작할 즈음, 엄마가 시골로 찾아왔다. 엄마는 나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예쁜 목걸이 시계를 걸어주었다.
“해달아, 이제 시계 볼 줄 알지? 선물이야.”
막상 엄마가 언니랑 수나만 데려간다고 생각하니,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가슴 한쪽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간신히 참고 있었다.
“엄마가 3년 뒤에 데리러 올게. 그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막내 어진이 잘 돌봐줘.”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 말이라도 했다가는 소리 내서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아서.
언니와 수나가 떠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구박은 거의 없어진 것 같았다. 나는 말수가 없고 시키는 일은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하는 아이였다. 막내는 마당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함머니’, ‘하버지’라고 할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척 좋아했다.
학교까지는 동네 아이들과 걸어 다녔다. 지난겨울 실패했지만 탈출하기 위해 처음 걸어가 봤던 장터까지 가면 거기서 유일한 국민학교가 있었다. 나는 3학년 1반, 사실 1반밖에 없었다. 모든 학년이 다 1반이다. 그러니 전교생 127명이 놀라울 일도 아니다. 학교에는 영양 선생님이 계셨고, 식판에 급식을 듬뿍듬뿍 주셨다. 점심을 먹고 나면 커다란 노란색 주전자에 담긴 우유를 따라주셨다. 우리는 대접을 받아 들고 하얗고 따뜻한 우유를 마셔야 했는데, 여자애들은 잘 못 마셔서 우유에 설탕을 조금 넣어주시기도 했다. 선생님 몰래 남자애들에게 주는 여자애들도 있었다. 나는 우유 냄새가 싫었지만, 그냥 꾹 참고, 한 번에 들이켰다. 우리 반에는 19명의 학생이 다였다.
학교에서 있는 동안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일부러 애들 썼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1, 2학년과 달리 읽을 교과서가 많아진 3학년이 좋았고, 도서관에서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시골 학교라 그런지 도서관은 아무 때나 가서 책을 읽을 수 있고, 집에 몇 권씩 그냥 가져갔다가 돌려놓으면 되었다. 아무도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아무도 책을 훼손하거나 빌려 가서 가져오지 않는 일도 없고 그냥 그렇게 둬도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점심밥을 먹고 나면 친구들과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이야기하거나 상상했던 이야기를 연극으로 구성해보기도 하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느 10살 아이처럼 학교에서 있는 동안은 그렇게 평범하게 지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를 도와 부엌일을 했다. 아궁이에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넣고, 불을 피우고, 양동이에 물을 길어 가마솥에 쏟아붓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빨래터에 가서 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이런 집안일들은 시골 아이들은 대부분 하는 일이었다. 나만 하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절대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모내기 때 새참을 나르기 위해 학교에 못 가게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언니랑 수나가 생각났다.
‘엄마랑 잘살고 있을까? 엄마는 언제 나랑 막내를 데리러 올까? 그래도 언니랑 수나가 더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의 구박을 받지 않는 것은 참 다행이다. 보고 싶다. 우리는 언제 다 같이 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어쩐지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났다. 헤어지기 전 언니랑 수나 얼굴을 더 자세히 봐둘 걸 그랬다. 공책에 그림이라도 그려놓을 걸 그랬다. 보고 싶은가 보다.
- 에필로그:
우리 4형제는 흩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구박을 심하게 받았던 언니와 여동생은 엄마가 데려갔다. 나의 선택이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다. 내가 엄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언니와 여동생 대신 나와 막내가 엄마와 살았다면, 아니, 우리 4형제가 그날 탈출에 성공해서 엄마를 찾아갔다면. 이런 생각들은 그저 ‘가지 않은 길’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그래야만 했던’ 길이었다. 지금 나는 내가 ‘걸었던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길을 걸었든, 나는 여전히 나의 최선을 다해 걸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