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엔
흔들리는 것들이 모두 모인다
거리를 당차게 구르던 웃음도
가로등 흐린 불빛에 얼굴 가리던
한 송이 장미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찾느라
축축한 하늘 더듬고 있다
은밀한 숨결마다 속살 감춘 채
휘파람 장단 맞추던 하이힐 소리
너의 시간을 지나 나의 시간이 된
오늘이 바람개비를 돌린다
스며드는 한기에
커다란 창 앞, 젖은 낙엽이 빼곡히 붙어 있는
낯익은 카페에 앉는다
가장 빛바랜 잎을 떼어 찻잔에 띄운다
사랑을 목숨처럼 이어가던 그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기 뒤로 측은히
나를 쳐다보는 올렌카*
먼 길 떠나는 듯 묵직한 가방이
낙엽 소리를 울리며 지나간다
온종일 거센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비를 습관처럼 자꾸 털어내고
넘지 못한 길은 빗속에 흔들리다 또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 안톤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 여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