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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Jul 03.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5(22.정심행선분3)

선법을 닦는다는 것은 나 자신이 그런 선으로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 즉비선법 시명선법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수보리야, 말한 바 선법이란 여래가 설하되 곧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니라


여래가 선법을 닦는다고 하니 또 선법이 따로 있는 줄로 착각한다.


선법을 닦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선법을 닦는 자기가 있고, 또 닦아는 자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울을 아무리 반짝반짝하게 먼지 하나 없이 닦아봐야 깨끗이 빛날 뿐, 거울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고, 또 거울을 닦는 자기 역시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자연히 거울에 먼지가 끼게 되고 자기는 닦고 그만두고 다시 닦는 것을 반복하며 끝나게 된다.


그러면 자유(自由)가 어디 있고 평화(平和)가 어디 있으며 거기서 벗어난 해탈(解脫)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 자신에게 여전히 매여 있으므로 힘은 힘대로 들고 고(苦)는 영원히 지속될 뿐이다.


또 거울이 반짝반짝 빛나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면 좋은데, 그 거울에 집착하여 그 거울에 걸맞은 예쁜 액세서리를 요구한다.

이른바 멋있는 상(相)을 가지고 그것마저 자기 자신과 분리되어 분열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 상(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 거울이 내 것이라는 착각과, 거울을 닦는 나 자신이 또 있다는 망상이 뿌리 잡고 있다.


이런 착각과 망상이 지속되는 한 선법(善法)은 자기 자신에게 오히려 악법(惡法)으로 작용한다.


이것을 칼을 잘못 휘둘러 자기 자신이 크게 베이는 꼴이다.


선법(善法)을 닦는다는 것은 닦는 나와 닦이는 나 자신을 나누어 닦고 말고 가 아니라, 사상(四相)으로 구성되어 있는 자기 존재 전체를 극소화시키거나 극대화시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극소화(極小化)시킨다는 것은 점차 줄여나가다가 마침내 티끌보다 더 작은 상태로 되어 그것을 다시 한번 더 쪼개서 텅 빈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극대화(極大化)시킨다는 것은 점차 키워나가다가 마침내 우주보다 더 큰 상태로 되어 모든 존재를 포용하여 자기 자신을 텅 비워버리는 것을 말한다.

어느 방향이든 하고 싶은 쪽으로 하면 되지만 결과는 똑같다.


자기 자신이 완전히 공(空)이 되어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불성(佛性)이 찬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일체선법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표현하셨다.


여기서 선법(善法)은 자기 마음을 닦는 각종 좋은 수행방편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런 선(善)으로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법을 닦는다는 일체법에 물듦이 없어서 일체경계에 대해서 자기 존재가 극소화되거나 극대화되어 가거나 간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으며 흔들리지도 않고, 세간과 출세간 어느 쪽에 머무르지도 않고, 해탈을 증득하고자 하는 마음도 내지 않고 사상(四相)을 떠나서 자기 존재가 공(空)이 되어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어찌 나 자신과 선법이 따로 있고 선법과 악법이 따로 있으랴?


선법은 세간법(世間法)도 아니고 출세간법(出世間法)도 아니다.


단지 그 이름이 선법(善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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