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사라졌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하루만 기억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과거가 많이 기억이 안 난다. 앞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과거를 소거하고 있는 것 같다.
뭐, 사실은 병 때문이지만, 좋게 생각하고 싶다. 남들보다 혹은 어린 나이에 빨리 기억을 잊는다는 건, 치매가 빨리 올 거라는 건 두렵지만 나름 재밌다. 오히려 사실을 미리 아니깐 대비하는 맛이 쏠쏠하다.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엄청 무섭다. 스스로 기억력, 지능이 떨어지는 게 인지가 될 때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예민해지곤 한다. 과거의 찬란했던 자신과 비교할 때마다 비참해지고 가끔씩 그가 미워지곤 한다. 내가 왜 이런 희생을 치르고 대가를 치러야 할까 남은 건 상처뿐인데. 정말이지 저런 생각이 들면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구나 결국에 자기를 챙기는구나 이러면서 치료의 방법을 강구한다.
그래도 그 모습도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겨내고 있긴 한데 정말 힘들다. 미치도록 불안하고 무섭고 숨을 못 쉴 것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기에 맞서 싸우잔 생각으로 상황에 맞게 적응을 하다 보니 순간순간을 보게 되어있었다.
사랑의 벚꽃이 피는 동아리 여행
다시 과거를 써볼까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꽤 지났기에 방학을 언제 했는지는 모르지만 해마다 여름 방학 때 전체 과학동아리끼리 놀라간 적이 있었다.
난 바다보단 산이 익숙한 아이였다. 산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고, 매번 보는 게 산이었으며, 그와 어릴 적 휴가를 제외하면 거의 바다는 못 봤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산이 좋았다. 어두워져도 산에서 길을 찾고 산을 줄곧 뛰어다녔다.
우린 1박 2일이었나 2박 3일로 바닷가로 향했다. 물론 동아리 담당 선생님들도 따라가셨다. 버스에서 난 잠을 청했다. 속도 안 좋았고 피곤했기에 이야기를 하며, 떠들기보단 창문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과 대화에 속이 더욱 안 좋아졌다.
언제부턴가 시끄럽고 북적이는 게 나한텐 역겨웠다. 이런 생각이 날 더 갇히게 만드는 거 알지만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가 죽었을 때 통곡하고 싸우고 데시벨이 높아졌기에, 사람들의 데시벨이 높아지면 난 몸에서 저런 반응이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게 되었다. 정작 훈련받을 땐 누구보다 함성과 소리침에 익숙하던 나였지만 말이다.
그저 하염없이 "조용히 살고 싶다"와 "쉬고 싶다"란 문장만 내뱉을 뿐이었다.
얼마나 잠을 청했을까. 누나가 날 깨웠다. 휴게소였다. 휴게소의 음식 하면 당연 통감자와 쥐포 오징어가 아닌가. 매주 동아리 시간에 만나고 그리고 기숙사에서 소소한 대화와 저녁에 운동장 걷기 등 고등학생 그때만 할 수 있는 썸을 타면서 가까워진 누나와 나는 함께 사 먹으러 갔다.
누나는 한껏 행복해 보였지만, 그 행복 안에 먼지 모를 찝찝함이 있으셨다. 느껴졌다. 아마 내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남들과 많이 달라서 그럴 것이었다.
그게 좋은 쪽이든....
그게 나쁜 쪽이든....
그럴 때면 항상 스스로 생각했다.
나의 어떤 모습이 좋았을까. 폰도 없어 연락도 안될 거고 갇혀 살고 바보 같으며 현대문명이란 건 하나도 모른 채 가진 것은 몸 하나뿐인데. 순수함을 넘어서 무지할 정도인데. 누나는 왜 날 좋아했을까.
감정과 이성은 누가 다르다고 말했는가. 이유를 찾는 생각을 접고 본능에 빠져,
점차 서로에 빠져갔다.
세상의 한없이 좋게 바라본 누나.
세상을 한없이 안 좋게 바라본 남자.
우린 정반대였다.
하루의 해는 저물고, 사랑은 결실을 맺고
어느덧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풀고 3개월 정도 팀별로 준비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꽤 의미 있는 과학주제에 대해 고찰을 해볼 수 있었어서 좋았다.
신선한 주제도 많았다.
그 후 저녁식사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선생님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가지러 사라지셨다.
아마도 술이었을 것이다.
그럼 우리의 시간도 가져야 했다. 주섬주섬 술을 꺼내는 선배들, 난 바람이나 쐴 겸 담배를 피우러 바닷가로 갔다. 그가 생각났다. 아버진 깡촌에서 태어나셨지만 수영을 좋아하셨지. 어두운 밤. 출렁거리는 파도와 습한 냄새, 발에 들러붙는 모래 그가 그리웠다. 담배연기와 함께 사라지듯 그도 언젠가 내 기억에서 사라질게 분명했다.
그를 이렇게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저 멀리서 누나의 실루엣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내가 밖에 나온 건 어찌 알았는지 난 급하게 담배냄새를 털고 누나를 맞이했다. 누나는 내가 이미 담배 피우는 걸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 없을 거라고 웃으셨다.
누난 걷자고 했다. 손은 잡지 않았지만 잡으면 담배냄새에 예의가 아니었기에 델 듯 말듯하며 바닷가를 걸었다. 달빛에 누나가 이뻐 보였다. 문득 생각했다. 누나는 한잔을 한 걸까. 시간에 취했다. 빛과 파도소리, 누나 향기.
아름다웠다. 이런 거에 취할 정도로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웠구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고백을 했다.
누나 오늘부터 사귀어요. 툭 던졌다. 고요한 거리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으시며 내 머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어 주시면서 그래!라고 하셨다. 날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누나가 좋았다. 그렇게 우린 사귀게 되었다.
상상은 자유지만, 언젠간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이것이 세상을 다 가졌다는 기분일까. 망상이었지만 이대로 나이가 들어 결혼 후 행복한 삶을 보내는 미래를 펼쳐보았다.
난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다. 최근 들어 어머니와 누나는 내가 결혼생각이 있다는 거에 놀랐다고 하셨다. 내가 그가 죽었을 때나 이전부터 여성분들의 감정적이고 다투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세상은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을 많이 보았기에. 여자친구를 사귈지도 몰랐다고. 더 나아가 여성분들을 혐오하는 줄 아셨다고.
그렇기에 당연히 요새 시대가 그렇듯 결혼의 결자도 안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달랐다. 나와 맞는 인연인 여성분을 만나서 일찍 결혼하고 귀여운 아기를 3명 낳고팠다. 그토록 안정을 추구하기도 하였고, 윗세대에서 배운 게 있기에 자식들이나 와이프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름의 규칙까지 다 만들었었다.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 엄청 행복한.
이런 생각을 여선배와 걸으면서 스치듯 생각했다.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약속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장남이고 가장이니깐.
그날 불꽃놀이를 보며 여러 커플들이 탄생했다.
누나는 좋은 여자였다. 슬퍼할 줄 알고 행복할 줄 아는 그리고 다채로운 감성을 지니셨다. 밝고 넓은 마음으로 타인의 아픔을 보듬어주길 추구했고 타인이 엇나가는 걸 싫어하셨다. 어머니상에 가까운 요샌 더더욱 찾아볼 수 없는 귀한 그런 누나였다. 나랑 많이 부딪혔다. 가치관이 많이 달랐다. 난 스스로에게 있어 몰아붙이며 날 강하게 푸시하며 나약한 날 비판하며 발전해 왔다. 누난 발전은 좋지만 자기를 사랑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세상엔 좋은 게 많다고, 행복해져라고 하셨다. 힘든 거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서 말해줘도 좋다고. 나의 삶에 인생에 궁금해하셨다.
나를 아껴주신, 처음으로 세상에 따뜻함을 가르쳐 주셨다.
모두가 그렇듯, 열심히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면 지치거나 본질적인 의심 혹은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 까지 나와 만난 모든 여성분들이 그랬듯 정말 자기를 사랑하는지 좋아하는지 의문점을 제시하셨다. 설명하기 어려웠다. 엄청나게 좋아했다. 마음속 이야기를 하면 감정적인걸 받아들이고 나약함을 인정하는 거에 말을 하지 못했다. 강해져야 했기에 좋아하면 안 됐다.
그 당시 가장 필요 없는 게 감정, 사랑이었고 가장 필요한 게 발전이었으니깐.
나는 어리석었다. 누나와의 매번 선을 지켰다. 누나의 노력, 누나가 날 아끼는 정도를 알았음에도 마음을 열지 않고 베짱이처럼 말을 안 들었다. 손잡기도 포옹도 혹은 더 나아가 입맞춤이라도. 하나도 하지 않았다.
훗날 왜 그랬어?라고 물어본 친구들이 있었다. 난 대답하길, 너무 좋았으니깐. 처음으로 의지란 단어가 뭔지 알게 해 준 여자였다고. 그런데 여기서 의지를 해버리면 푹 빠져버릴 것 같다고. 물론 난 행복하겠지만 그럼 약속을 못 지킨다고. 참았다.
그래도 어지쩌지 사랑은 이어졌다.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없고,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이니깐.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