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발현일 뿐이다.
나는 사실 결혼을 4개월 가량 앞둔 예비 신부인데,
늘 그랬듯
어느 날 또 유난한 충동이 일어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고야 말았다.
나도 나름 결혼 전이니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지만
본성을 억누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왕복 17만 원의 항공권을 도대체 어떻게 참나 이 말이다.
도대체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좀 알려주었으면 좋겠거늘
그 때 내 귀에 그 방법을 속삭여준 사람이 없어서
덜컥 비행기표를 예매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팀장님께 후보고를 드리고
오케이 받아 신난 마음을
얌전히 잘 감춘 채
그렇게 d-7이 되었는데..
글쎄 엄마에게 넌지시 말해버린 나의 일정에
그 날 저녁,
아빠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춘기 시절부터 딱딱하고 엄하기라곤
남부럽지 않았던 울 아부지.
역시나 잠도 안 주무시고
노처녀 딸내미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코. 환갑이 넘은 노인네 같지 않게
아직도 눈빛이 푸르딩딩 살아있네.
평소엔 애교 많은 곰탱이가 되기도
철부지 막냇동생같기도 하지만
이럴 때만은 사대문 안에 있는
유서 깊은 양반가문의 영이 들어 앉나보다.
못마땅한 여식에게
불호령을 내리고선
이를 말리는 엄마에게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하며
다소 근엄한 모습을 보이신다.
그러고서는 또 한참을
'저가 혼자 컸네.', '결혼할 때 아무 것도 해주지 말아야 하네.'
'결혼자금 아끼면 나도 여러 나라 가볼 수 있는데'
등등..
그 커다란 목청으로
쏟아내고 싶은 말들을 잔뜩 내뱉으시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또 이런저런 안해도 될 말을 쏟아내신다.
그 정제되지 않은 모든 말들을 다소곳이 받아낸 나는
'하지만 아버지, 그건 훈계가 아니라 분풀이 같은데요..'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순순히 '그럼 비행기표 취소할게요.'하며
상황을 일단락시킨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나이를 먹어 많이 꺾였다 싶은데,
울 아부지는 백발이 무성함을 비웃듯
아직도 저리 정정하시다.
미운오리새끼는
사실 미운오리새끼의 자식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