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자 Jul 20. 2017

그 여行자의 집 (19)

2008년 여름, 스물다섯 민주의 그 해. #19

19.

 나는 지금 홍콩의 침사추이에 있다. 일주일 전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 출근일까지 남는 삼 주의 시간 중 열흘 동안 여행을 하고자 나흘 전 홍콩에 왔다. 곧 고모 생일이라 선물도 사야 한다. 고모는 10년 넘게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을 평생의 생일 선물로 받겠다는 심산인지 매년 더 좋은, 서프라이즈 한 생일 선물을 바라신다. 가끔 집에 갈 때마다 주변의 누구는 자식들한테 무슨 선물을 받았다며 대놓고 눈치를 주시니 못 챌 수도 없는 형편이랄까. 올해는 두어 달 전부터 동창회 갔더니 친구가 딸한테 선물 받은 명품 백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렇게 예쁘더라며 자신도 하나 가지고 싶은데 딸년, 아들놈은 아무리 말을 해도 눈도 깜박 않는다고 서러운 티를 엄청 내셨다. 그 백을 사드려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들었는데, 알아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 차에 홍콩에 오면 저렴하게 투 플러스 A급 이미테이션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큰 마음을 먹고 여행지를 홍콩으로 정했다. 운 좋게 더 나은 조건에 새 직장을 구해 옮기게 되었고 1년 치 퇴직금도 받았으므로 그 돈으로 여행도 하고, 선물도 살 겸 온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고모가 엄마였어도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어림도 없다. 이건 정말이지 부모님 돌아가시고 갈 곳 없는 나를 고모가 남편에게 빌고 싸워가며 데려다 언니, 오빠보다 더 신경 써서 키운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가끔은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밖에서 혼자 살았을 걸 싶단 생각도 들지만 열 살짜리가 미래에 대해 뭘 알았겠는가? 결과적으로 갚아야 할 빚 이긴 한데 이런 한국의 삶은 참 녹록지 않다. 홍콩에선 오자마자 만난 이곳 호스텔 친구들과 마음이 맞아 밤마다 같이 놀고, 낮에는 도시며 바다를 싸돌아다니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아.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주 6일, 하루 8시간씩 노동하고 학자금에, 키워준 은혜까지 갚아야 하는 삶이라니. 이곳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준킷은 홍콩대 휴학생인데 방학 때 잠시 알바를 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가 재밌어서 1년째 휴학하고 매니저로 일을 맡아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음대생인 그는 틈틈이 작곡을 하는데, 분위기가 좋은 밤이나 특별한 날에는 공연도 한다. 체크인하는 첫날 약간의 기계적 문제가 있어 곤란함을 겪었는데, 준킷은 그날 밤, 내게 미안했다며 나를 위한 공연이라고 공표를 하고 기타 연주와 함께 분위기 있는 노래를 세곡이나 불러주었다. 그 덕에 첫날부터 분위기가 무르익어 사람들과 더 쉽게 친해지고 이곳이 금세 집처럼 편하게 느껴진 것 같다. 어젯밤 술 잔뜩 마시고는 나에게 사랑한다며 기습 뽀뽀를 한 헨리는 영국에서 왔는데, 보기엔 딱 날라리이다. 좀 귀엽게 생긴 데다 어려서 좋게 넘어가 주려 했는데 자꾸 엉긴다. 따끔하게 한마디 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고. 뭐, 길어봤자 열흘만 볼 사이이니 봐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난 준킷이나 다니엘이랑 더 친해지고 싶은데 인생 참 뜻대로만 안 된다.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 3장, 민주의 이야기

이전 18화 그 여行자의 집 (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