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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19. 2017

그 여行자의 집 (17)

2017년 봄, 마흔둘 경재의 그 해. #17

17.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훌쩍 어디론가 떠나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불현 내가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 더 정확하게는 현실 혹은 일상이라 불리는 무엇에서 떠나고 싶단 생각에 그녀를 기억해 내고 연락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주 솔직히 일탈에 대한 상상이 없지는 않았다. 드러나게 정의되지 않았던 그 일탈에 대한 것이 어떤 자극적이고 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바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벨소리에 신이 난 애견 사과가 달려 나오고 그 뒤를 따라 큰딸 민이가 사과를 잡으러 뛰어나왔다.

「아빠 왔어? 엄마, 아빠 왔어.」

「응~ 나 금방 나가.」

화장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똥 누나 봐.」

딸이 냄새가 나기라도 한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젓고는 사과를 안고 방으로 향했다. 새삼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익숙한 나의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멍하게 서 있어?」

「응, 아냐.」

「늦었네~ 얼른 씻어. 간식 좀 줄까?」

「아니 괜찮아.」

아내는 그렇다면 자신이 할 몫이 끝났다는 듯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무릎이 나온 잠옷 바지를 입은 아내는 아줌마가 다 된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단아 씨보다 딱 한 살 더 많을 뿐인데.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 사실 나쁘지 않다. 토끼 같은 자식들도 있고. 32평 아파트에, 자동차. 그리고 빚도 많이 갚지 않았던가. 하지만 분명 이건 내가 20대에 상상하던 미래의 삶에선 벗어나 있다. 티브이를 보다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빤히 보며
「왜? 할 말 있어?」

라고 묻는다.
「우리 여행 갈까?」 

「진짜? 어디로?」 

「뭐, 어디든.」

「뭐야? 보너스라도 탄 거야?」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표정엔 연애할 때의 소녀 같던 모습이 설핏 남아있다. 

「아니. 그냥. 회사 그만두고 애들 데리고 한 일 년 여행이나 다니면 좋겠단 생각이 문득 들어서.」

무슨 실없는 소리냐는 듯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그럼, 뭐 먹고살고? 여행 1년 갔다 오면 회사에서 다시 받아준데?」

「그런가?」

그녀의 시선이 티브이로 돌아갔다. 역시, 그런 걸까? 샤워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행복한가? 정말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것일까? 하긴, 어쩔 수 있나. 내 새끼들 행복한 게 내 행복이지. 먹이고, 가르치고, 입혀야 하는데.. 씻고 나왔더니 아내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왜?」

「오빠! 우리 진짜 여행 갈까? 생각해보니까 내가 지민이네 엄마한테 들었는데, 몇 년 전에 자기 사촌네 부부가 애들 12살, 10살 때 회사도 관두고, 애들도 학교 쉬게 하고 1년 동안 세계일주를 했는데 지금 돌아와서 잘 살고 있대. 책도 써서 팔고, 애들하고도 관계가 좋아졌고. 우리도 그런 거 할 수 있을까? 내가 함 물어볼까?」 

갑작스레 적극적인 아내의 반응이 짐짓 당황스러웠지만 그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번 만나서 물어봐.」


우리는 정말 떠날 수 있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향긋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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