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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18. 2017

그 여行자의 집 (16)

2017년 봄, 마흔둘 경재의 그 해. #16

16.

그 후, 그녀는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독일까지 각 나라에서 2주에서 1달 정도를 머물며 여행을 이어갔다. 독일에 도착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나라들은 유럽에서도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동유럽 국가들이었고, 카우치서핑을 통해 여행을 하다보니 가장 큰 비용인 숙박비를 줄일 수 있는 게 메리트였다. 그렇게 타인의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서 적응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다 보니 좋고 싫음을 따질 겨를도 없이 흘러가는 물살 속에서 함께 떠밀려 어디론가 흘러가는 돛단배처럼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건 분명 회사를 다니던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삶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진정 원하던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얼굴도 모르고 한번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집에서 방을 혹은 거실을 빌려 잘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얼마나 불편할까? 하지만 그렇게 여행할 수 있다면 경비도 절약되고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도 처음에는 비용 절약 차원에서 카우치서핑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전체의 여행에서 1/3 정도를 카우치서핑으로 여행을 하고 보니 막상 그 장점이 단지 경비절감이 아닌 자신을 오픈하고 적극성을 띌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는 것이 더 크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에어비엔비나 혹은 아주 가끔이지만 저가 호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때는 아무래도 본인을 단지 손님이 아닌 고객으로 인식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평가적이거나 비판적 혹은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되기도 하는데, 카우치서핑의 환경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게 요지였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독일에서 워크캠프라는 것을 알게 되어 숙식을 제공받으며 어떤 마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11개국 27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그 프로젝트에서 그녀가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운 좋게 얘기가 잘 통하는 핀란드 남자를 만났고, 워크캠프가 끝나고 그와 함께 핀란드에 가기로 하고 비행기표까지 샀으나 알고 보니 캠프에 참여한 다른 브라질 여성과 그 핀란드 친구, 그리고 자신이 묘하게 삼각관계처럼 비춰지게 되어 핀란드 행도 취소하였고, 뜻하지 않게 참여한 모두에게 연락하기 조금은 그런 상황으로 1달 반의 캠프 프로그램을 마감하게 되었단다. 그녀는 그 사건이 매우 큰 후회로 남았다고 말했다. 사실 그 남자에게 이성적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애 상대로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으므로 충분히 모두에게 설명하던지 뭔가 문제를 더 현명하게 해결하고 더 좋게 마무리할 수도 있었는데 그 순간에는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단 생각과 열살이나 어린 친구와 자신이 한 남자를 두고 염문에 휘말린 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단다. 근데 그걸 그렇게 끝내버린게 두고두고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라고 말하는 그녀의 개구진 표정에는 뭔가 극복함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 후 그녀는 워크캠프에서 다른 참가자들에게 들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고자 프랑스 남부로 내려와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40일가량을 걸었다. 그 길에서 길을 걷는 수많은 순례자들, 여행자들을 만났다고 했다. 의외로 그녀가 한국 사람들과 가장 많이 교류한 곳이 바로 이 산티아고 길이었는데, 아무래도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나 제주 올레길이 만들어진 계기 등이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함께 인지도가 높아진 덕인지 혼자 걸으러 오는 사람부터 체험형으로 주요 코스만 걸으며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단체 여행자들까지 다양한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단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을 대하는 자신이 상대적 태도뿐 아니라 사고마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아마도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순례자의 길이라 불리 우는 그 길을 걸으면서 걷는다는 행동이 주는 건강함과 더 이상 순례자는 존재하지 않는 듯 여행자로 들어찬 그 길의 끝에서 만난 수 많은 관광객과 상업도시의 기묘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사람들이 왜 그곳에 가는지, 그리고 왜 여행을 떠나는지 알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이야기는 다음 여행지인 남미에 대해서는 언급도 못한 채 우리는 사람들은 왜 떠나는가?라는 여행 토론으로 자리가 끝날 때까지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정말 오랜만에 타인과 나눈 고도로 몰입한 대화였다.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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