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절 일정을 세울 때부터 마음에 불편감을 키우는 대한민국의 6년차 며느리다. 기혼의 여성들이라면 단박에 이해할텐데 나는 나에게조차 불편감의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명절이면 나는 “설거지 머신”으로 변신한다. 여기서의 방점은 ‘설거지’라는 노동이 아니라 ‘머신’이라는 무감각 상태에 있다. 시댁에서 보내는 시간동안 얽히고 설키는 생각과 마음을 차단하기 위해 나는 일찌감치 ‘머신’을 선택해버렸다. 해야할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내자. 그런데 그러다보니 명확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없어져 버렸다.
해리, 마음을 다치거나 혹은 마음을 다치게 할 것이 두려워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을 차단했던 것이다. 그 시간도 경험도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럼 좀 괜찮았을까? 수용되지 못한 감각들은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자꾸만 내 손과 발을 묶었다. 꼼짝없이 선택 당했다. 이번 명절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짐했다. 이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개별자로 명절을 맞아야지. 재미있는 점은 ‘설거지 머신’은 설거지가 끝나도 주방에서 자리를 지키며 집안어른들이 나누시는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거나 과일을 깎고 차를 내리고 다과를 내지만, ‘설거지 담당 개별자’는 대화의 주제가 마음에 부대끼면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마음의 스위치를 껐다. 어느 쪽이 ‘머신답다’ 할 수 있을까?
몇번이나 눈치를 받았다. 다 좋은 분들이고 나에게도 잘해 주시는데 나는 왜 괴로울까? 내가 느끼는 ‘불편감’ 뒤로 불편하게 떠올라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해소되었다. 내게 요구되어진 (요구받고 있었던 게 정말 맞았다) 감정노동 때문이었다. 눈치를 받을 때마다 나는 마음으로 되뇌었다. 눈치를 사양하겠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며느리’라는 느슨한 가족의 타이틀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끌고 내달리는지 그 타이틀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머무르는 곳이 내 가장 친한 친구, 남편의 집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친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쁘니까 자꾸 잊어버리게 되더라.”
젊은 날, 친정에 온 고모님들 수발을 드시느라 당신은 명절에 친정에 가지 못하셨다는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정작 어머니가 시어머니가 되고보니 바빠서 나에게도 가고싶은 친정이 있다는 것을 잊게된다는 어머니의 자각. 그 생각을 나누어주신 것은 반갑고 감사했지만, 그다지 큰 감흥은 일지않았다. 역시 내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시댁이랑 친정이랑 양쪽 모두 꼭같이’의 지점은 아니었다.
나는.명절을.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결혼 전부터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집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연신 꺄르르 꺄르르 웃어젖히는 내 아이들처럼 어린 날의 나는 어쩌면이지만. 나는 축축한 흙냄새가 대기중으로 피어오르는 추석즈음을 좋아했다. 엄마 손잡고 새벽의 골목을 돌아 목욕탕 가는 길 몸을 움츠리게 하던 서늘한 바람, 팔을 접거나 몸을 돌릴 때 고스란히 느껴지던 빳빳한 새옷의 감각,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팔을 벌리고 환한 얼굴로 뛰어나오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사놓은 사브레와 빠다코코넛과 버터링과 땅콩 캬라멜, 리어카를 타고 누비던 시골길과 학교 운동장, 신문에서 오려온 티브이 편성표, 화로에 구워먹던 각종 꼬치들, 온가족 둘러앉아 빗던 송편과 만두를 어쩌면, 어쩌면 나는 좋아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할머니의 찡그린 얼굴, 엄마의 고단한 뒷모습이 자꾸만 오버랩 되어 흐려지고야 만다. 명절은 왜? 명절은 왜?
명절 연휴 마지막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데 아버님께서 잘 깎은 연필 한뭉치를 건내주셨다. 아이들 쓰라고 깎아두신 거라고 했다. 다 전하지 못해 늘 못내 아쉬운 마음, 감사히 받아 가방에 챙겼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아직은 낯선 우리가 나눌 마음은 무엇일까? 강요하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가 만난다면 다음번의 만남은 조금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