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랑과 내리사랑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와서 좋아요.
너무 신나서 기분 좋은 게 폭발해요.
할머니, 할머니, 이제 청소는 그만 해요.
할머니가 힘들면 엄마가 속상해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집에 가니까
우리 집이 너무 조용해요.
부모님이 다녀가셨다. 말끔한 집에서 특별한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다.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털털한 우리 집. 시간을 끝도 없이 들여야 하는 살림에 나는 적당히 대충이다. 쓰고 그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이후 더 하다. 저울질을 하지만 선택은 늘 같다. 재밌는 것을 선택한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물건이 많지 않다. 아이들이 보다가 흐트러뜨린 책들을 책꽂이에,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는 색연필을 연필꽂이에, 한 뭉치의 종이를 포트폴리오에 꽂아 넣으면 그럭저럭 눈가림이 가능하다. 아침에 청소기 한 번 슉 돌리고, 저녁에 한 번 휙 정리만 한다. 깔끔하기만 한 것 같은데 들여다 보면 구석구석 먼지다. 대청소가 필요했다.
새벽에 너무 일찍 일어난 것이 사단이었다. 2시 반부터 4시까지만 놀고, 남편 도시락 싸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한 다음 일찍 집안 정돈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글을 조금 쓰고, 그림을 한 장 그리고, 책을 몇 장 뒤적이다 보니 금세 6시였다. 시간은 첫째가 등교하는 8시 35분까지 뱅글뱅글 더욱 빠르게 흘렀다. 히휴. 참외를 깎아 거실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둘째 아이 옆에 놓아주고, 커피를 한 잔 내려 맞은편에 가 앉았다. 계획한 모든 걸 해낼 수 없을 거라는 분명한 예감이 떠올랐다. “엄마, 몇 시에 도착 예정이에요?” 여유로움을 연기하며 전화를 걸었다.
한가득 화사한 꽃다발을 안고 엄마가 왔다. 불룩한 장바구니를 세 개나 들고 아빠가 왔다. 아빠가 조잘조잘 아이들에게 칭찬과 축복을 먹이는 동안, 엄마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봄나물을 데치고, 고기를 손질해서 냉장고에 착착 넣고 크고 싱싱한 딸기를 씻어 접시에 담았다. 창틀에 쌓인 묶은 때를 닦고, 주방 후드 커버를 떼어내 씻어 햇빛에 널었다. 건조기의 먼지망을 꺼내 털었다. 트더진 것과 떨어진 것들을 찾아내 꿰맸다. 식물의 가지를 정리하고, 길어진 둘째 아이의 앞머리를 다듬었다. 그 모든 움직임이 쫓으며 나는 우왕좌왕 거들다가 말리다가, 말리다가 거들었다. “너무 신나서 기분 좋은 게 폭발”한 아이들이 “할머니가 힘들면 엄마가 속상”하다고 말렸다. 그제야 겨우 아이들 곁에 앉은 엄마는 '아이들 손톱을 깎을 때 되지 않았나?’ 살폈다.
치사랑과 내리사랑을 뻐근하게 받으며 이틀을 보냈다. 몸살이 났다. 따끈한 차를 한 잔 끓여 거실로 가 앉았다.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집에 가니까 우리 집이 너무 조용해.”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엄마의 손길이 닿아 빛을 달리하는 공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