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든 촛불‘만’ 진짜다

by 레지나

오랜만에 만난 모임, 각자 사는 이야기들로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판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가족 이야기 여행 이야기 소소한 분위기 속에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역시 즐겁구나 느끼던 찰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충 들어주는 척하다 결국은 경쟁하듯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느껴져 왠지 씁쓸하다. 그러다 끝내는 ‘불행 배틀’ ‘고생 배틀’로 이어지기 마련. 상대방의 고통의 경중이나 우열을 따지기보다는 ‘누가 더 많이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비위에 맞거나 이익이 되면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말은 사절이다.

우리 금융노동자가 고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객의 업무 요청 앞에서 우리의 산뜻한 미소는 KPI(핵심 성과지표) 앞에서 꿍꿍이(?)로 변모한다. 고객의 이익보다 회사의 실적 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하려다 보니 여러 사건들이 터졌고 사회에서 우리 금융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날이 서기 시작한다.


이 시선 앞에서, 훗날 부당한 상황이 처해졌을 때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리 없다. 우리의 촛불에는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온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의 상황을 인식하고 ‘공동의 선’을 욕망해야 한다.

‘인식’은 인간을 수동적 평온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반면 ‘욕망’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든다.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은 그래서 욕망의 대상을 부정하고 파괴시킴으로써 또는 적어도 변화시켜서라도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예컨대 우리는 음식물을 파괴하든지 또는 변화시키지 않고는 허기를 채울 수 없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행동의 근원은 부정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금융노동자들은 부정한다. 욕망하기 때문이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 촛불을 들고 투쟁하는데 우리의 목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 반복에는 우리의 순수한 이념을 이용하려는 수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는 생각에 연막을 쳐서 굉장한 사상을 가장하는 속임수는 환각제 못지않은 죄악이다. 우리는 이 속임수에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 누가 우리 금융노동자와 민중의 친구이며 누가 적인지를 냉정하게 가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속임수는 ‘내가 든 촛불만이 진짜’라고 말한다. 알맹이 없는 생각에 연막을 쳐서 굉장한 사상을 가장하면서 말이다.


우리 금융노동자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가꾸고 아름다워져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와 생각 아름다운 사람이 든 촛불만이 진짜인 것이다. 그렇다고 고귀의 미를 얻기 위해 옛날로 돌아가 어느 특권의 울타리 안에다 미를 가두어야 하는가 하면 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구나 지닐 수 있는 아름다운 물자를 가지고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창조품으로 선택해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금융노동자에 대한 신뢰를 쌓아야 우리가 촛불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돌아봐 주지 않을까.

내가 든 촛불만 진짜라고 앞세우기 전에 우리 금융노동자 개개인의 품격을 높여야 우리 목소리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우리가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면서까지 욕망하는 ‘공동의 선’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의 산뜻한 미소가 정말 그러한 진심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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