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짓는 골목, 아이들보다 먼저 부엌으로 찾아드는 소리가 있었다. 풍로를 고치는 기술자들이 기름통에 난 구멍을 때우거나 심지를 갈아주며 골목골목 누비는 소리였다.
식구들의 삼시 세끼는 석유풍로 위에서 끓었다. 심지를 돌려 밀어 올린 후 성냥불을 붙이면 주황색 동그라미가 서서히 올라오고 매캐한 석유냄새가 퍼지면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하나뿐인 화구에 밥솥이며 찌개 냄비를 차례로 올렸다. 밥솥이먼저, 냄비나 프라이팬 순이었다. 부엌에서 풍기는 석유냄새는 이제 곧 입맛 도는 한 상이 차려진다는 신호였다.
우리 집 부뚜막 위에 놓인 석유풍로는 ‘후지카’였다.집집마다 ‘한일’, ‘쓰리엠’, ‘내셔널’, ‘삼익’등이 하나씩은 놓였다. 한 대 가격이 5천 원에서 8천 원 사이로, 쌀 두 가마와 맞먹었다.
도시 서민들을 연탄아궁이에서 해방시킨 최신 취사 설비였으니, 적잖은 가격에도 잘 팔려나갔다. 불이 붙되 잘 타지 않는 석면 심지는획기적인 물건이었다. 발암물질인 석면에 매 끼니를 끓인 걸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지금에 와서 뭘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엄마가 결혼한 60년대 후반부터 한창 아이들을 키운 70년대까지 전기밥통이며 텔레비전, 냉장고, 다리미 등등 새로 쏟아져 나온 가전제품들이 즐비했다. 논밭이 펼쳐진 시골에서 서울로 시집 온 엄마는 그것들이 얼마나 탐났을까.
엄마는 믹서나 카세트라디오 같은 것들을 사들이기 위해 한동안 투쟁해야 했다. 그것 없이도 잘만 살았다는 할머니와 아빠를 설득하긴 쉽지 않았다. 엄마는 노선을 바꿨다. 낭비벽이 있다는 비난을 듣느니 몰래 들여와 숨겼다. 아무도 모르게 목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를 묻었다. 맘 놓고 쓰지도 못하는 물건을 구석구석 숨겨놓는 새댁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식구들의 비밀을 적어도 하나씩은 알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 앞에서 애써 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존재감 없는 아이일수록 주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하루 종일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 중 부뚜막에 붙어 있는 걸 가장 좋아했다. 된장 뚝배기를 풍로 위에 올려놓은 사이 어느새 나물을 무치고, 또 마당에 묻은 김칫독에서 배추김치나 동치미를 꺼내오는 엄마의 잰 손놀림을 보는 게 좋았다. 석유냄새가 몸에 좋지 않다고 엄마는 한사코 나를 쫓아내려 했다.
가끔 엄마가 허둥지둥 부엌을 나가는 날이 있었다.그런 날은 어김없이 풍로에 석유가 떨어진 날이었다. 석유가 심지를 타고 올라오지 않아 아무리 성냥을 그어도 불이 붙지 않았다. 그럴 때 엄마는 할머니를 향해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필 밥할 때 석유가 떨어진 건 난처한 일이지 그리 큰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듯이.
할머니는 그런 일에 잔소리를 하진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그냥 넘기진 않았다. 한 번씩 매섭게 혼을 냈기 때문에 불시에 폭탄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엄마가 기름집에서 석유를 받아오면 할머니가 고무호스를 입에 물고 푸푸 소리를 내가며 기름통에 석유를 넣었다.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볼이 푸, 푸 소리와 함께 홀쭉해졌다가 부풀기를 반복하는 동안 기름통에 석유가 그득 채워졌다. 석유의 양은 보통 세 되 분량이었다. 기름통을 가득 채우면 보통 4일 정도 쓸 수 있었다. 그건 3일째 되는 날부터 기름통을 잘 살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엄마, 석유는 어디서 나와?”
석유냄새에 취해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멀고도 더운 나라, 사우디라고 하드라.”
풍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대답했다. 엄마는 풍로에서 이는 푸른 불꽃을 바라보며 꽃다운 시절을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사우디라면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동재 아빠가 갔다는 곳이다. 동재 아빠는 석유가 펑펑 나오는 나라에 갔구나. 밥을 지을 때마다 나는 석유냄새는 사우디 냄새였구나. 동재네는 아버지가 돌아오면 양옥집을 지어 이사 간다고 했다. 나도 사우디로 가서 뜨거운 태양 아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돈을 벌면 풍로에 석유를 그득그득 채워 놓으리라.번쩍이는 가전제품을 잔뜩 사서 엄마에게 안겨주리라.
어느 봄날, 엄마는 살림장만 비밀 계원들과 나들이를 갔다.고만 고만한 아이들 일곱을 한 집에 모아놓고 큰 맘먹고 꽃놀이를 간 것이다. 곧 돌아올 거라고, 다른 데 가지 말고 꼼짝 말고 여기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한 다음 엄마들은 대문을 나섰다. 우리들은 마당에서 사방치기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며 엄마들을 기다렸다.
초저녁이 되도록 아무도 나들이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슬슬 배가 고팠다. 어떤 아이가 엄마들도 돌아오면 배가 고플 테니 부침개를 해놓자고 했다. 집주인 아이가 밀가루를 꺼내고 김치도 내왔다.
밀가루 봉지를 열자마자 하얀 가루가 펑 날렸다. 밀가루에 물을 붓고 프라이팬도 찾았지만 풍로에 불을 붙이는 게 문제였다. 풍로에 불을 붙이다 화재가 날 수 있다는 주의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여간 겁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곧 돌아올 엄마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 우리 중 제일 큰 애가 떨리는 손으로 성냥을 그었다. 둥근 심지에 주황색 동그라미가 뜨고 푸른 불꽃이 올라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질퍽한 반죽을 붓는 순간, 그 집 아주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엌에 들이닥쳤다. 애들만 있는 집에 석유 내가 진동했으니 놀란 건 당연했다. 부엌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릇을은 아무렇게나 뒹굴었고 부뚜막은 온통 밀가루 범벅이었다. 게다가 불 켜진 석유풍로라니! 아주머니는 부리나케 풍로의 불부터 껐다.
엄마들은 어쩔 줄 몰랐다. 아이들을 한 집에 몰아넣고 시간을 끈 건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랄 순 없었다. 모두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황망함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누군가는 필요했다.
그때, 엄마들 중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다름 아닌 우리 엄마였다. 갑자기 내 팔을 잡아끌더니 빗자루로 종아리를 후려치는 게 아닌가. 그 자리엔 언니와 동생도 있었는데!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엄마에겐 내 말을 들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엄마의 기세에 눌려 다른 엄마들은 각자 아이를 데리고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나는 사우디에 간다는 꿈을 버렸다. 사우디에서 돈을 아주 많이 벌어와 엄마를 가져다주겠다는 기특한 결심도 석유풍로에 다 닳은 심지처럼 사라졌다.
어린 시절의 꿈이 대개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지만,그처럼 극적으로 종말을 고한 꿈도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