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잘하게 된 것 중 하나는 바로 홈베이킹이다. 빵과 떡을 사랑했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빵집이나 떡집에 들르곤 했다. 한국에서 빵과 떡은 그저 사 먹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나는 웬만하면 사 먹지 않는 것이 되었다.
미국의 부엌에는 오븐이 잘 갖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미국의 마트에는 온갖 베이킹 도구와 재료들이 즐비하며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이유가 미국을 홈베이킹을 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오븐은 내게 너무 생소한 가전제품이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오븐은 필수와도 같다. 오븐은 채소나 고기를 구울 때 이용되기도 하고 디저트를 만드는 용도로도 쓰인다. 모임에 가면 늘 홈베이킹으로 만든 다양한 디저트가 빠짐없이 등장을 한다.
오븐으로 빵을 굽게 된 계기는 몬태나에서 만난 한 친구 덕분이었다. 그 친구는 어릴 적부터 빵을 만들어 먹었고 미국에서도 홈베이킹을 자주 하며 빵과 과자를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친구였다. 내게 소보로빵(곰보빵)과 단팥빵 만드는 법을 알려준 친구는 이사를 가면서 많은 베이킹 도구들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도구들이 한꺼번에 갖춰지게 되니 이것저것 시도를 해 보게 되었고 나의 홈베이킹 실력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홈베이킹의 시작은 퀵 브레드
오븐을 활용한 베이킹으로 처음 시도해 본 것은 머핀이었다. 머핀은 재료가 간단하고 발효 필요 없이 모든 재료를 휘휘 섞기만 하고 구워내면 된다. 마트에 가면 가루 재료를 다 섞어 놓은 다양한 머핀 믹스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한두 번 머핀 믹스로 머핀을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너무 달고 알 수 없는 재료도 들어 있었다. 이후로는 집에 있는 밀가루, 계란, 우유, 설탕, 베이킹파우더 등의 재료로 직접 만들게 되었다.
그다음 시도해 본 것은 호박(주키니)빵, 바나나빵이었다. 이 빵들도 역시나 머핀만큼 쉽게 만들어졌다. 모든 재료를 한데 섞어서 젓은 후 틀에 부어 굽기만 하면 된다. 머핀이나 호박빵, 바나나빵과 같이 베이킹파우더나 베이킹 소다(탄산수소나트륨) 등으로 부풀려서 만드는 빵은 퀵 브레드(quick bread)라 불린다. 효모를 이용해서 시간을 두고 부풀리는 것이 아닌, 화학적 팽창제를 이용해 말 그대로 빨리, 쉽게 만드는 빵이다.
한국 사람은 소보로빵, 단팥빵
퀵 브레드에 자신이 붙자, 친구와 함께 만들어 보았던 소보로빵과 단팥빵을 혼자 만들어 보기로 했다. 친구가 준 빵 기계(브레드 머신)를 이용해 빵 반죽을 하니 정말 쉽게 1차 발효된 반죽이 완성되었다. 소보루 가루를 듬뿍 묻혀서 2차 발효를 시킨 후 15분 구워내니 겉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달콤한, 속은 이불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소보로빵이 완성되었다.
단팥빵은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다. 단팥을 따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불 앞에서 딱딱한 팥을 삶고 조리고 휘휘 젓는 일을 한 시간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쉽게 만드는 레시피를 찾다가 전기밥솥으로 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룻밤 불린 팥을 물과 함께 밥솥에 넣고 푹 익힌 후, 설탕 넉넉히 소금 약간 넣어 다시 취사를 돌리니 생각보다 쉽게 단팥이 완성되었다.
그다음 도전한 빵은 소보루빵과 단팥빵을 결합한 맘모스빵이었다. 칼집을 넣은 모양이 마치 갈비 같다고 해서 갈비빵이라고도 불리는 커다란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큰 반죽 덩어리에 단팥을 듬뿍 넣고 잘 여민 후 밀대로 밀었다. 납작해진 반죽 위에 소보루를 골고루 뿌리고 양쪽에 칼집을 낸 후에 2차 발효에 들어갔다. 적당히 부풀면 오븐에 구울 시간이란 의미가 된다. 일반 빵 5개 분량으로맘모스빵 하나를 만들었는데 큼지막하니 크기가 딱 좋았다. 이웃과 나눠 먹을 생각에 4개나 구웠다.
다양한 쿠키와 케이크에 도전
빵 만드는 것이 점점 재미있어지면서 다양한 베이킹을 찾아보게 되었다. 쿠키는 나와 똘똘이가 즐겨 먹는 간식이다. 쿠키를 만들기 전까지는 쿠키에 얼마나 많은 설탕이 들어가는지 알지 못했다. 밀가루 양과 거의 동일한 양의 설탕이 들어가는 쿠키는 그래서 더 맛이 있나 보다. 나름 건강 쿠키를 만든다고 설탕을 많이 줄여 만든 적이 있다. 역시나 그 쿠키는 맛이 없었다. 만일 쿠키에서 설탕을 뺀다면 초코칩이라도 많이 넣어주어야 맛이 난다.
세심한 단계가 필요한 빵은 역시 케이크다. 케이크를 만들려면 계란 흰자에 설탕을 넣고 하얀 거품을 만드는 머랭 만들기 단계가 필요하다. 거품기가 있기 때문에 머랭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거품기도 친구가 빵 기계를 주면서 함께 준 베이킹 도구이다. 케이크에도 설탕이 쿠키만큼 많이 들어간다. 설탕이 많이 들어가야 사르르 녹는 케이크의 맛이 나올 수 있다. 케이크를 만든 후에는 생크림과 과일을 듬뿍 얹어 먹는다.
팬데믹은 홈베이킹의 시간
미국에 팬데믹이 시작되고 락다운(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나의 베이킹은 더 불이 붙었었다. 아침이 되면 어떤 빵을 구울까 생각을 하게 되고 재료를 주섬주섬 꺼낸 후 오븐 불을 켰다. 쉽게 아침에 만들 수 있는 빵은 팬케이크, 그중에서도 자주 만들어 먹은 팬케이크는 오븐에 굽는 더치 베이비였다. 더치 베이비는 버터를 듬뿍 넣어 만드는 독일식 팬케이크로 만들기도 쉽고 맛도 좋다.
발효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아침부터 일찍 준비를 해야 했다. 아침부터 발효빵 준비를 하면 점심때쯤 갓 구운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 발효빵 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꽈배기와 피자빵. 꽈배기는 똘똘이가 정말 좋아하고 피자빵은 나와 남편이 좋아하는 빵이다. 똘똘이는 배배 꼬여있는 꽈배기를 풀어가면서 먹는 것을 참 좋아한다.
빵도 좋지만 떡, 찐빵, 약밥
퀵 브레드, 발효빵, 쿠키, 케이크 등 집에서 다양한 베이킹을 했지만 역시 내 입맛에는 미국 빵보다는 한국 빵과 떡이다. 빵에 자신이 붙으면서 떡 만들기도 시도를 해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빵보다 더 쉽게 느껴졌다. 오븐 찰떡의 경우 만들기가 아주 쉽다. 찹쌀가루(미국 마트에 파는 모찌코 가루)에 우유, 설탕, 소금, 베이킹파우더 그리고 다양한 견과류, 건과일, 찐 호박이나 콩 등을 넣고 잘 섞은 후 오븐에 40~50분 정도 구우면 맛도 영양도 좋은 찰떡을 만들 수 있다.
미국 간식도 맛있지만 한국 간식은 더 맛있다. 아몬드 가루를 듬뿍 넣은 전병, 찰밥을 지어 반죽기로 치대 만드는 찹쌀떡과 인절미, 콩을 콕콕 박아 찜통에 쪄서 만드는 찐빵 등. 특히 좋아하는 한국 간식은 약밥이다. 불린 찹쌀에 모든 재료를 한데 넣고 섞은 후 전기밥솥을 이용해서 만들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만든 약밥은 식힌 후 먹기 좋게 잘라 랩으로 씌워 냉동 보관하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먹고 싶을 때 꺼내어 전자레인지 해동 기능으로 살살 데우면 금방 한 약밥처럼 쫀득한 맛이 되살아난다.
미국에 산 지 어느덧 4년이 넘었고, 홈베이킹을 한 지 딱 4년이 되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갖가지 빵과 떡을 만들면서 홈베이킹 실력도 많이 늘었다. 더불어 함께 늘어난 것은? 나의 몸무게와 뱃살. 거의 모든 베이킹에는 설탕이 들어가고 밀가루도 많이 사용된다. 살을 빼기 위해서는 설탕과 밀가루를 줄여야 하는데 홈베이킹은 줄일 수 없으니 어떡해야 하나?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가 좋은 대안을 찾았다.
설탕 대신 대체 감미료, 밀가루 대신 아몬드 가루와 오트밀(귀리)을 사용하는 것. 어떤 대체 감미료가 좋은지는 말이 많지만 요즘 내가 선택한 것은 꿀, 메이플 시럽, 에리스리톨, 몽크프룻이다. 빵을 만들 때도 아몬드 가루와 오트밀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밀가루와 설탕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지만 올해 들어서는 조금 더 건강한 재료로 홈베이킹을 하고 있는 중이다.
홈베이킹은 나를 위한 취미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취미이기도 하다. 맛있는 빵과 떡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행복을 더할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홈베이킹의 매력에 빠져 지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