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가지 특징
파나마에 온 지 초창기에
스페인어를 열심히 해보겠단 취지로
라틴 국가 사람들이랑 언어교환 앱으로 대화를 했더랬다.
여러 주제 중 운전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했다.
"Conducir en América Latina es el caos en sí mismo."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운전은 카오스 그 자체다)
언제나, 예외가 없었다.
대부분 라틴 국가의 운전이 험악한 것처럼,
파나마에서의 운전도 비슷하다.
이 나라에 대한 첫인상도 단언 운전이었다.
미친 듯이 껴들고 달리는 차들에 부딪힐까 봐
허벅지에 나도 모르게 힘이 꽉 들어갔다.
파나마의 운전 특징을 16가지 나열해 보겠다.
1. 포트홀
도시건 근교건 어디건 포트홀은 언제나 존재한다.
포트홀이란 도로에 생긴 구멍이다.
근데 이게 정말 많고 크기도 꽤 크다.
지름이 2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것도 많다.
포트홀은 2분에 최소 하나씩은 만난다.
물론 고속도로에도 예외는 없다.
쇽쇽 피할 때마다 슈퍼마리오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근데 게임은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현생은..?
가끔 옆 차로 인해 피하지 못하게 될 때는
'우당탕 쿠당탕'과 함께 부디 타이어가 무사하길 빌곤 한다.
2. 깜빡이는 켜지 않아
깜빡이를 웬만해선 안 켠다.
사용할 때는 딱 한 순간.
꽉 막히는 차선에 끼어들 때뿐이다.
달릴 때는 전혀 쓰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옆 차가 갑자기 껴들어오는 건 그냥 일상이다.
처음에는 갑툭튀로 놀라서 욕을 한 사발 했지만 이제는 앞에 약간 간격만 있으면 당연히 껴들어오겠거니 예상한다.
그 예상은 높은 확률로 들어맞는다.
깜빡이를 정직하게 켜는 사람은 아마 외국인뿐일 것이다.
3. 경찰 단속으로 하나 되는 인류애
'웨이즈'라는 앱이 있다.
이 앱은 경찰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면 경찰들이 일정간격으로
서있으면서 속도를 체크한다.
앱뿐만 아니라 간혹 경찰이 있는 것을 깜빡이 등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남편이 한 번 겪었다는데,
이때 따스한 인류애를 느꼈단다.
참, 경찰한테 걸리면 뇌물을 줘야 한다.
보통은 20$로 책정되어 있다.
저번에 남편이 회사에서 일이 터져 급하게 꼴론에서 가는데 속도 단속에 걸렸다.
하필이면 그때 지갑에 100$짜리밖에 없었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줬다는데 진짜 너무 아까워서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꼭 20$씩 차에 두고 다니자.
4. 운전 매너
운전 매너는 형편없다.
양보도 잘 안 하거니와 옆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껴든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클라션을 빵--------!!! 매우 신경질적으로 눌러 댄다.
가볍게 뾱! 이런 거 없다.
제일 희한한 점은 따로 있다.
내 앞에 깜빡이를 킨 차가 정차해 있다. 그럼 당연히 누굴 기다리나 보다- 하고 지나쳐 갈 것이 아닌가?
근데 내가 지나쳐가려고 하는 순간 움직여서 먼저 간다.
주차된 차도 마찬가지다. 주차되어 있구나 하고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쓱 움직여서 먼저 간다.
어제도 겪었다.
이때가 가장 화나는 때이기도 하다.
뒷사람이 먼저 가면 지는 기분이 드는 걸까?
그럼 애초에 서있지를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5. 무단횡단
파나마에는 횡단보도가 거의 없다.
건너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그러기에 무단횡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근데 문제는 휙휙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너네가 알아서 안 치겠지~ 피하겠지~라는 마인드인 건지.
특히 어두울 때 검은 옷 입고 튀어나오면
심장이 밖으로 꺼내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6. 주차 삥
삥 뜯는다는 말은 속어가 아닌가.
근데 이 표현을 꼭 쓰고 싶다.
공연이나 시합, 축제 등이 있어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형광 조끼를 입은 남자들이 나타나 차량을 적극적으로 인솔한다.
이 사람들은 행사 관계자도, 아무도 아니다.
그냥 동네 주민이랄까.
근데 주차요원인 척 차를 주차하게 하고 팁을 요구한다. 저번에는 재즈 공연을 보러 갔는데
어떤 사람이 차를 몇 대 인솔하더니
우리한테만 5$을 요구했다.
(옆 사람들이 주나 관찰했는데 요구하지도 주지도 않았음)
차 인솔에 5$? 7200원? 이 돈 벌려면 얼마나 고생해야 하는데!
무시하고 갔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건물에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다. <주차비 무료>
우리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계속 팁 달라고 따라와서 결국 1$을 줬다.
이런 '삥' 외에 혼잡한 상가에 차를 댈 때는 주차요원에게 1$을 팁으로 주는 것이 관례다.
7. 차량털이를 조심해
우리는 캐나다에서 짐이 털린 적이 있다.
주차를 했는데 차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한 것.
트렁크에 넣어둔 내 캐리어와 패딩이 없어졌었다.
치안이 극도로 좋은 몇 국가 빼고 차량털이는 당연히 벌어지는 일 중 하나이다.
어느 한인 사장님께 알브룩몰에서 차를 털린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특히 해변가에서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로컬 동네로 갈수록 위험하달까. 구글 리뷰 보면 차량털이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쓰여있다.
나는 한국에서 블랙박스를 가져와 달았는데 매우 위험한 행동이긴 하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까지 털린 적은 없는데, 그 이유로는 검증된 마트, 쇼핑몰만 가기 때문인 것 같다.
더 자세한 내용은 <치안> 편에서 다루어보겠다.
8. 강제 튜닝
파나마에는 손상된 차들이 정말 많다.
어디 스크래치 난 건 애교고 유리창이 없어서 비닐로 덮고 다니는 사람들, 범퍼가 빠진 채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봤는데 아쉽게 못 찍었다.)
이들은 절대 고치지 않는다.
수리비가 비싸서인지 아니면 수리센터가 마땅히 없어서인지 아마 그 둘 다 인 것 같지만-
도로를 달리다 보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튜닝된
기상천외한 차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9. 교통체증
나는 서울에서 가장 막히는 지역 중 하나에서
방문 수업을 다녔다.
그 지역들처럼 파나마시티 역시 정말 많이 막힌다.
특히 오후 4시 이후가 되면 정체가 시작되기에
밖에 나가는 일과는 되도록이면 그전에 끝내야 한다.
가끔 사고가 나거나 하면 20분 거리가 1시간씩 걸리곤 한다.
특히 costa del este로 가는 길은 10분 거리가 1시간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시티로 잘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데 몹시 이해가 간다.
10. 교통사고
꼴론에서 누가 남편 차를 뒤에서 쿵 박아서 내려서 차를 확인했단다. 근데 상대방이 내리기는커녕 차 안에서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별 일 아닌 걸로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큰 손상은 없었고 차 안에 손님들도 있어서 그냥 차에 탔다는데, 교통사고가 났을 때 스페인어를 잘 못하니 이 '공포의 오리발'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심각한 교통사고 역시 자주 발생한다.
아래는 오늘 뉴스 사이트에 뜬 안타깝고 슬픈 사건이다.
+
오늘 집에 오는데 차가 갑자기 막히길래
뭘까? 했더니 차사고가 나있었다.
앞유리가 박살.. 사람은 안 다친 것 같아 다행이었다
11. 워터파크 개장
파나마는 배수 시스템이 굉장히 열악해서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오면 도로에 물이 찬다.
1시간쯤 소나기가 내리면 도로는 침수된다.
그러다 보니 바퀴가 반쯤 잠긴 채로 도로를 지나야 하는 일은 꽤 흔하다.
한 번은 외출했을 때 한인마트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갔는데, 10분 거리를 3시간이 되도록 못 간 적이 있었다. 붕어싸만코를 샀었는데 다 녹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심각하게 막히지? 했는데 아메리칸 브리지가 침수되어 그랬단다.
12. 삥
앞서 주차 삥에 대해 적었으나 다른 삥도 존재한다.
(1) 구걸 (2) 유리창 닦기 (3) 불꽃 쇼 (4) 판매
구걸은 성인들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을 앞세운 경우도 많다. 혹은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하기도.
그럴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곤 한다. 젊고 멀쩡한데 일은 하지도 않고 애들한테 구걸을 시키다니.
유리창의 경우, 보통은 물어보는데 아주 가끔씩 멋대로 거품물을 뿌려버리고 닦은 후 손을 내밀어 1달러를 갈취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차가 정차했을 때 원치 않는 쇼를 강제로 보여주기도 한다. 불꽃을 던져서 저글링을 한다던지 외발 자전거를 탄다던지 그런 식이다.
마지막으로 '판매'라고 썼으나 '반강제 판매'다. 껌이나 쓰레기봉투, 혹은 아보카도, 꽃다발, 국기, 불꽃놀이 등을 들고 다니면서 판다.
모든 차에 가서 사달라고 들이민다.
물론 나는 사거나 구걸에 돈을 준 적이 없지만 언제나 머쓱하다.
우버를 탔을 때 현지인의 대응을 보니 아예 무시하고 쳐다보지 않길래 다음부터 나도 그렇게 해야지 마음먹었다.
13.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거나
운전 속도가 가지각색이다.
물론 보통 속도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다.
그러나 가끔씩 분노의 질주를 한다던지 느긋하게 노를 젓듯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1차선에서 느릿느릿 가면 정말 답답해 미칠 거 같고 마구 칼치기를 해대는 운전자를 보면 저절로 욕이 나올 수밖에 없다.
(파나마에서 운전하면서 욕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4. 노란 차를 조심해
노란 차는 택시다.
파나마의 택시는 정말 높은 확률로 운전 매너가 매우 별로다. 그들은 신호도 지키지 않고 언제나 새치기를 하며 갑자기 멈춰 서거나 갑자기 껴든다.
양보란 절대 없다.
빨리 가기 위해서라면 역주행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래서 나는 택시 앞에선 웬만하면 끼려고 하지 않는다.
참, 그리고 외국인의 경우 노란 택시를 타면 안 된단다. 그래서 언제나 우버를 탄다.
15. 불타는 차
꼬스따에서 집에 오는데 갑자기 고속도로가 막혔다.
무슨 일이지? 앞을 보는데 연기가 난다.
양 옆은 바다인데!? 조금 더 가니 실체가 보였다.
트럭이 불타고 있었다.
영화가 아닌 실제로 차가 불타는 걸 본 인생의 첫 순간이었다.
뉴스에 종종 불타는 차 사고가 뜬다.
16. 장점은?
단점이 있으면 언제나 장점도 있다.
여기선 미국처럼 양보를 해주면
한 손을 들어 보인다.
건너는 사람이나 운전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비상깜빡이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항상 한다.
또 전반적으로 여성운전자를 많이 배려해 주는 편이다.
주차장에는 임산부용 주차 공간이 따로 있는데,
증서가 있는 사람만 댈 수 있어서
절대 아무나 그냥 댈 수 없다.
또
익숙해지니 운전이 어렵지 않다.
으음 이 정도?
남편이랑 소원으로 비는 게 있다.
파나마 있는 동안 죽이지도 않고(무단횡단자들)
죽지도 않게 해달라고.
농담 같지만 진심이다.
특히 위험한 꼴론을 매주 가는 남편이 언제나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