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4 댓글 4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파나마에서 메시를 만나다.

by 삐아노 Feb 05. 2025

원래 이번 주에 쓰려고 했던 것은

'파나마에서의 운전'에 관한 글이었는데

가끔은 갓 겪은 따끈따끈한 글이 어떨까 하여 다음 주로 미루고 대신 이 글을 쓴다.





파나마 날짜로 2025년 2월 2일!

정말 최근의 일이다.



1월에 열린 파나마 재즈 페스티벌 콘서트를 보고 와서

괜스레 헛헛한 마음이 들어 티켓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던 중이었다.

(콘서트를 보고 집에 오면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약간 울적해지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들지 않은가?)



보다가 한 배너에 축구선수와 축구공이 그려져 있었서

'어? 파나마에서 축구도 하나 보네' 란 생각이 들었다.

남편한테 "파나마에 축구 경기도 있나 봐" 하고 보여주자

남편이 "어? 마이애미는 메시 있는 덴데? 메시도 오는 거래?" 하는 거다.



오잉? 축알못인 나도 메시는 아는데 설마- 하고 급 검색해 보니

진짜 메시가 온단다!

라틴 투어로 친선 경기차 파나마에 온다는 것.


 

브런치 글 이미지 1


바로 티켓을 사려고 보니 들어가 지질 않았다.

구글을 검색한 끝에

내일 오후 1시에 오픈한다는 정보를 습득했다.

(이런 것도 티켓 판매 사이트에 정확히 쓰여있지 않은, 역시 파나마.)



다음 날, 점심으로 토마토소스를 만들면서 1시가 되길 기다렸다가

빛의 속도로 구매링크를 클릭했다. 대기 순서는 몇 백번 정도였고, 몇 분 후 들어갈 수 있었다.

축구장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니 제일 빠르게 없어지는 곳을 클릭했다.



앞 구역은 2인에 무려 800불을 넘어가서

뒷 구역으로 선택했다. 2인 350불 정도였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때에 클릭하여 자리를 샀단다.

내가 맡은 자리가 조금 더 앞이었지만, 남편이 이미 사버렸고 사이트에 환불 같은 것은 없으므로 그냥 그 자리에서 보기로 했다.

(이것도 파나마 특징이랄까? 한 번 사면 무를 수가 없는 게 환불 버튼이 아예 없다. 어떤 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  


 

드디어 2월 2일.


5시에 경기 시작이니 밤비를 산책시킨 후, 3시 40분쯤부터 우버를 잡기 시작했다.

와, 근데 우버가 잡히는 족족 취소되는 것이다.

한 15분을 계속 취소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하나가 잡혔다.

더욱이 도착지점을 잘못 선정하여 다른 길로 빠질 뻔했으나

기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무사히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평소에는 라티노로서 결코 손도 대지 않을 것 같은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빼곡했다.

(단 한 번도 남자가 분홍색, 주황색,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걸 본 역사가 없다.)


커플, 가족이 많았다. 기다란 줄 옆에는 시원한 물, 꼬치구이, 메시 옷과 모자를 파는 행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기다림 끝에 입장하기 시작했는데 경찰들이 소지품과 옷 검사를 꽤 심각하게 했다.

가방 안에 지갑이며 립스틱까지 열어봤다.


그런데 남편이 검사를 받을 때 들고 온 물과 과자를 전부 뺏겼다는 것이다. 아니 공항도 과자는 들고 가게 해 준다고!

돈을 아끼려 일부러 챙겨 온 것인데

한 봉지조차 뜯지 못한.. 한인마트까지 가서 사 온 쌀과자였다. 어찌나 아깝던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찾으러 위로 올라갔다.

근데 도무지 우리 자리를 못 찾겠는 거다.

안내요원 몇 명을 붙잡고 물어봐도 그냥 내려가서 돌아가라라고 할 뿐이었다.

그렇게 헤매던 중, 왠지 여기가 아니라 저 건너편일 거라는 촉이 왔다.

그래서 건너편으로 가려는데 양쪽 모두 벽으로 막혀있었다!




경기 시작은 5시.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4시 40분이 되었고 초조해진 우리는 부리나케 뛰어다녔다.

다시 1층에 가서 안내요원한테 물어보니 또 옆으로 가란다.

'no calle este'라고 했더니 당황한다. 우리가 나가서 가야 하는 거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뒤에 있던 경찰한테 물어봤다. 그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나가서 가란다.



파나마는 한 사람한테만 물어보면 큰일 난다. 절대 믿으면 안 되고 여러 사람한테 물어봐야 한다.

가게든 관공서든 어디든 간에- 모른다는 이야기를 잘 안 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간 다음 엄청나게 뛰었다.

땡볕에 옷이 땀으로 범벅되었다.

겨우 Oeste(서쪽)을 찾았다. 알고 보니 우리는 Este(동쪽) 지역에 있던 것,

들어가서 앉으니 56분 정도가 되었다.

남편이 물이랑 먹을 것을 좀 사 온단다.



저 맞은 편에 있었다.저 맞은 편에 있었다.



자리는 무척이나 좁았다.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오오!!!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메시가 등장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메시! 메시!"



브런치 글 이미지 4
브런치 글 이미지 5



어린이들과 선수들이 같이 입장한 후, 사진 촬영이 끝나자 어린이들이 하나같이 메시한테 달려갔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경기가 시작됐고 남편도 얼음컵과 물, 맥주를 들고 무사히 왔다.

가뜩이나 좌석이 좁았는데, 하필 남편 오른편에 앉은 사람이 몹시도 거구였다.

남편이 내내 더워하고 불편해했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가 이따 나온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전반전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나마 팀이 첫 골을 넣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보면서 느낀 건 두 팀의 실력이 비등비등하다는 거였다.

'오 몰랐는데, 파나마 꽤 하네!? 란 생각이 들어 남편한테 물어보니 마이애미가 그렇게 리그 성적이 높지는 않단다.

메시가 공을 찰 때마다 관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는 공을 잡기 전에 설렁설렁 뛰다가 공을 잡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달렸다.

몹시 신기했다. 내 눈앞에서 메시가 뛰고 있다니! 남편이 말하길, 메시는 역사를 통틀어 전 세계 1위 선수란다.



메시가 공을 잡을 때마다 파나마 팀 선수들이 공을 뺏으려고 거세게 달려들었다.

메시만은 막자. 이런 느낌이랄까.


브런치 글 이미지 8




후반전, 3분 연장에서 마이애미가 첫 골을 넣었다.

친선 경기라 그런지 골 세리머니는 딱히 없었던 게 살짝 아쉬웠다.




이윽고 전반전이 끝나고, 선수들이 퇴장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사러 일어나자, 남편 오른편에 앉아있던 거구의 남성도 우릴 지나가려 했다.

최대한 다리를 쪼그려주던 순간-



'으잉?'

그가 내 어깨를 잡고 가는 게 아닌가?



??? 아니 이 무슨 뭐지?

내가 지금 잘못 본 건가? 하고 쳐다봤는데 그는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전혀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지면서 불쾌감이 올라왔다.



그러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남편도 거기서 본인이 넘어지려고 해서 자기도 모르게 난간 잡듯 잡은 거라며. 안 넘어진 게 다행이지 않냐고 위로해 줬다.

졸지에 '인간 난간'이 되었기에 불쾌감이 100%에서 95%로 내려갔고 5%의 자리는 웃김이 차지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은 전반전과 달랐다.

파나마팀이 전반전에 힘을 너무 빼서 그랬을까. 체력이 훅 떨어져서 잘 달리지도 못했고 막는 것도 힘에 부쳐 보였다.

반면 마이애미팀은 오히려 생기가 더 돌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후반전 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마이애미팀이 한 골을 더 넣었다.



그다음 또 한 골이 더 들어갔다.

이로써 1:3 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파나마 팀의 한 선수가 메시한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손과 몸통으로 밀쳐가며 싸움을 걸고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관중석에서는 우우! 하는 야유가 터져 나왔고 그 선수는 결국 퇴장을 당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9



웃긴 장면도 있었다.


파나마 선수가 다쳐서 들것에 실려나갈 때였다. 선수들이 잔디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갑자기 극성팬이 난입해서 메시를 껴안았다.


한 번은 어린이, 두 번은 성인 남자였다. 어린이의 경우 다소 훈훈했다.

메시가 안아준 다음 경비와 함께 순순히 걸어 나갔고

성인 남자는 메시를 끌어안자마자 억지로 떼내어져 끌려가다시피 했고, 마지막 남자는 메시한테 닿기도 전에 경찰한테 붙들려 퇴장당했다.


난입한 팬들에게 사람들은 야유 대신 환호를 보냈다.



이것이 메시의 힘인가.



메시뿐만 아니라 수아레즈도 있었다. 남편이 이 선수도 엄청나게 유명한 선수라고 했다.

수아레즈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반성하게 됐다. 그는 경기 내내 미친 듯이 뛰었다.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고 어떻게든 볼을 점유하려고 했다. 열정이 몹시도 대단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0



아까 파나마 측에서 메시를 다치게 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기에, 선수 보호 차원에서 메시는 교체되었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총 75분 정도 뛰었다고 한다. 정말!! 이 때는 파나마 선수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선 경기인데!


근데 한 편으로 그 선수는 '내가 메시 태클 걸어봤어'를 평생 자랑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생각도 들긴 했다. (파나마의 골키퍼도 메시가 찬 공을 잡았다. 평생의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까?)



브런치 글 이미지 11


후반전 막바지쯤, 수아레즈가 몸통을 돌리면서 슛을 날렸다.

아쉽게도 공이 너무 높아서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 아크로바틱 한 슛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경기는 막을 내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2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원이 갑자기 밖으로 쏠려 나오자

교통체증이 심각했다.

우리는 우버를 불렀으나 연거푸 취소되었고

비싼 웃돈($15)을 주고 부른 우버가 겨우 잡혔고, 총 40여분을 기다린 끝에야 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피곤함도 피곤함인데, 어딘가 허망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수십 억 명의 팬이 있는 세계 최고의 선수와 내가 비교되어 그런 걸까? 아니면 많은 관중들 틈에 섞여 있다가 적막한 집에 오니 그런 걸까? 여러 기묘한 생각들이 일었다.

구운 닭을 시켜 먹은 후, 남편과 뒷정리를 하면서 메시의 생애에 대한 유튜브를 들었는데,

메시의 삶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앞서했던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인생에서 언제 메시가 공 차는 것을 라이브로 볼 수 있을까.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이전 04화 파나마에서 장보기는 너무 피곤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