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는 무지하게 습도가 높은 나라다.
우기 때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매일 비 옴)
건기에도 비가 상당히 많이 내린다.
구글에 검색하면 평균 습도가 80%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 집은 해안가 옆이라 그런지
제습기를 틀면 높은 확률로 88%-90% 정도의 숫자가 뜬다.
누구는 목욕탕에서 사는 거 아니냐고 농담하던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습도에 좀 둔감한 편이지만, 민감한 분들은 침대에 누울 때면 물에 젖은 이불에 감기는 기분이 든다고 할 정도다.
과한 습도에 엄청나게 더운 기온이 더해진다.
딱 우리나라 장마철, 열대야를 생각하면 된다.
이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불쾌지수? 찝찝한 땀?
그런 것도 물론 존재해서 날 괴롭게 하나
곰. 팡. 이
가 최대의 주적이다.
곰팡이가 정-말 빠르게 번식해 댄다.
작년 초 한창 미디작업을 하느라 서재에 블라인드를 친 채로 몇 달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프린터 밑 받침대를 보니 푸르른 뭔가가 동그랗게 퍼져있는 것이다.
어? 저게 뭐지?
자세히 확인해 보니 그것은 곰팡이었다.
하얀색 나무 받침대를 모조리 푸르뎅뎅하게 만들어버렸다.
놀라서 블라인드를 걷고 보니 모든 벽, 바닥에 곰팡이가 번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간 곰팡이 방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 그때의 참담함이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오염에 대한 결벽증이 다소 있는 편인데(남편에 의하면)
원효대사 해골물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요일 오전.
늘 그렇듯 집안일을 하던 중, 새하얀 먼지가 살포시 내려앉은 침대 옆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이 탁자는 두잇센터에서 한 30불가량에 구입한 것으로 내가 직접 조립한 저렴이 가구였다.
그 위에는 항상 핸드폰을 놓고 지내고 있었으며 침대에 누워있는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쓰윽-
위에는 깨끗하네.
밑에 먼지만 좀 쌓였네.' 생각하며 윗 선반 아랫면을 닦자.
"!? 아니 너는!??"
그때 만난 그 푸른곰팡이 자식이었다.
뽀얗게 내려앉은 건 귀여운 흰 먼지가 아니라
죄다 징그러운 곰팡이었던 것이다!
위만 깨끗하고 밑 판, 아래, 또 아래 판, 기둥 모조리 다 곰팡이 밭이었다.
스페인어 책도 놨었고 안대라든지 각종 잡동사니가 놓여있었는데 책 빼고 죄다 버렸다.
초록색이 되어버린 걸레를 내려다보았다.
아... 이 가구는 버리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나는 그동안 여기에 핸드폰을 두고 비비적거리면서 깔끔하다고 생각했다니...
충격을 먹고 돌아서는 순간 화장대 옆 미니 화장대를 보자마자 소름이 끼쳤다.
아니 왜 그동안은 보이질 않았던 건지.
그 화장대 역시 푸른곰팡이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서랍을 열자 꿉꿉하고 불쾌한 곰팡내가 물씬 풍겼다.
그 안에는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온 화장품들이 가득했다.
모조리 꺼내어 박스를 버리고 세척을 하고
미니 화장대는 아까 그 선반과 같이 버렸다.
이유를 알고 보니, 둘 다 무척 저렴한 가구여서 코팅이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코팅이 안된 부분 전체에 곰팡이가 피어올랐던 것!
코팅이 안된 화장대 다리에도 곰팡이가 번져있었다.
이 사건이 경종을 울려 그 후로 절대 코팅 안된 가구는 구입하지 않으며,
블라인드를 치고 있지 않으며,
제습기를 세 대나 샀다.
게다가 옷장이며 어디며 할 것 없이 실리카겔을 마구 던져 넣었다.
곰팡이 하면 화장실과 에어컨을 빼놓을 수가 없다.
파나마의 집구조는 이상하다.
방 하나에 무조건 화장실이 딸려있다.
방 화장실들, 거실에 있는 손님 화장실, 일하는 사람 방 화장실까지.
화장실만 6개. 6개의 화장실을 혼자서 어떻게 매번 청소할 수 있겠는가?
하나만 빼고 모조리 봉인해 놨다.
365일 문은 닫혀있지 습도는 높지... 안에 펼쳐진 처참한 상황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에어컨은 필터 청소할 때
그 참혹한 몰골에 쇼크를 받았는데
지금 혹시 식사 중이시라면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습도가 높으니 벌레도 꼬인다.
그 악명 높은 먼지다듬이.
벌레 이야기도 할 말이 많으니 다른 챕터에서 자세히 하기로 하고-
오늘 이 글을 쓰기 직전에
제습기 설명서를 찾으려고 각종 매뉴얼 종이를 넣어둔 서랍을 열었는데
다시금 악몽 같은 냄새가 풍겨왔다.
아아
버릴 가구가 하나 더 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