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파나마까지
도어 투 도어로 32시간쯤 걸린다.
무조건 경유를 한 번 해야 하는데, 뉴욕까지 13시간 반 정도 그리고 경유 후 6시간을 더 가야 도착한다.
비행시간도 지지리 길어서 힘들었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해외 이사 준비부터 말해볼까 한다.
8년의 연애 끝에 2022년 여름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바로 알콩 살콩 사는 신혼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먼저 내가 친정에서 일을 해야 해서 왔다 갔다 하기가 다소 번거로웠고
둘째는 남편의 해외출장이 길고 잦아서 한 번 갈 때마다 두 달씩,
1년에 8개월을 나가있었다. (결혼준비도 혼자 했다!)
그래서 남편이 혼자 살던 전셋집에
남편이 한국에 있는 주말에만 같이 있었는데 신혼생활이라기보단 연애 때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사 준비를 친정집과 남편의 집 두 군데서 했어야 했으며,
친정집의 재개발 이주 시기와도 맞물리는 바람에 내 짐을 모조리 버리고 갔어야만 했다.
1차 치우기 지옥이 시작됐다.
파나마는 물건도 별로 없거니와 굉장히 비싸고 품질은 좋지 않다고 들었다. (진짜 그렇다.)
그래서 각종 생필품부터 상비약, 가구, 바퀴약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물품들을 온라인으로 샀다.
2차 지옥이랄까.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했던 쇼핑은 난생처음이었다.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택배가 오면 뜯고 확인하고 정리하고 버리고 닦고- 하는 게 일이었다.
이삿날이 가까워오자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 집 앞에 택배들이 도착했다.
게 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택배도 있었는데, 파나마가 너무 멀어 배송비도 비싸고 우체국 시스템도 좋지 않아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다.
아래 사진의 파란색 상자들과 오뚜기 박스는 다른 사람들의 택배였다.
당연히 이해를 했다.
아래의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남편도 곧 출국이라 각종 약속 등이 많았던 때인데
그날은 새벽 1-2시까지 회식을 해서 몹시 지쳤었다고 한다. 몸을 겨우 이끌고 도착한 현관 앞에서
이 장면을 보고는 몹시 놀랐다고 했다.
게다가 내용물은 죄다 화장품이었어서 옮기느라 너무 무겁고 힘들었단다.
나는 솔직히 화가 많이 났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짐도 다 실릴까 말까인데!!
해외이사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단언 내 보물 1호, 그랜드 피아노였다.
이사비용도 몹시 비싸거니와 무조건 파손이 생긴다고 해서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으나
친정집이 이사 가면 놓을 자리가 없어서 가져가기로 결심했다.
결론적으로 약간의 파손이 있었지만 가져오길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320kg에 달하는 그랜드피아노를 남사장님 두 분이서 계단으로 들고 가시는데,
그 광경이 너무나 아찔하여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파나마에서는 젊은이들이 10명씩 있어도 너무 무거워서 들지를 못했다고 하던데
역시 대한민국의 기술은 세계에서 손꼽힌다.
이삿짐을 얼추 테트리스 하고 마지막까지 넣어질까 안 넣어질까 했던 일리팁컬도 성공적으로 안착!
이사 차량을 보니 감회가 뭔가 새로웠다.
이건 남편이 바프찍을 때 콘셉트용으로 산 장난감 총인데 정리하다가 나왔다.
이삿짐 직원분이 해외 통관 시 이런 거 있으면 난리 난다고 하셨다. 진짜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나마는 총기의 나라니까.
이삿짐은 부산으로 가서 배로 약 40일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주위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십 년이 넘게 해 오던 레슨을 정리하면서 성인분들, 아이들, 학부모님들과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또 대학원에 가서 교수님께 편지와 인사를 드리기도 했고 나의 정신적 멘토분께도 정성 어린 편지를 써서 드렸다.
친구들과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떠나는 날. 발걸음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지만 친정 강아지, 내 사랑 엠마와 마지막 포옹을 하고
엄마와 광역버스를 타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캐리어 두 개, 가방 한 개를 싸매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나 혼자 비행은 처음이었는데, 운 좋게도 업그레이드 요청을 한 것이
이틀 전에 수락이 되어 인생 두 번째로 비즈니스를 타게 되었다.
와 진짜 좋았다.
이래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건가??
이코노미 타면 언제 도착하나 너무 지루하고 힘들기만 했는데, 여기서는 내리고 싶지 않았다.
언제 또 이리 호강하나 싶어서 배도 안고픈데 꾸역꾸역 라면을 시켜 먹었다.
아쉽게도 잠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자정쯤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렸다.
대한항공 직원분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파나마 가는 비행기까지 자동으로 짐을 이어주는 게 닫았단다.
직접 끌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단다.
컴컴한 밤에 가방 하나를 매고 캐리어 두 개를 끌고 갔는데 도합 65kg 정도 되었다.
진짜 너무너무 무거워서 내가 잘 못 들고 끙끙대자 뉴욕 시민분들이 선뜻 도와주셨다. 따스한 분들..!
어찌어찌 공항버스를 타고 남편한테 왜 지금 시간에 표를 끊었냐며 너무 힘들고 죽겠다 문자를 날린 뒤,
파나마로 가는 공항에 가서 다시 짐검사를 하고 짐을 부치고 또 검사를 하고 들어갔다.
경유를 몇 시간 기다리면서 엄마랑 통화를 했다.
뉴욕에서부터 6시간.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니 낯선 얼굴을 한 메소티소 사람들이 나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나도 신기했다.)
한 3시간 정도 잤나 보다.
코파항공에서 짐을 들고 나오는데 여기는 나갈 때 짐 검사를 또 한다.
너무 무거워서 이골이 난 탓에 마지막 짐검사를 보고 뜨악했다.
결국 분노한 나는 레일에서 나오는 파란색 캐리어 하나를 팍! 밀어버렸고 깨져버렸다.
'아니 내가 이고 지고 가야 하는데 무거운 물건을 왜 주냔 말이야!' 하고
지인들의 선물에 잠깐 원망도 했더랬다.
물론 잠도 자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후로는 너무 고마워서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찌어찌 공항을 나오니 남편이 픽업하러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을 보자마자 뱉은 첫마디는
"이 나라 너무 뭐 같아!!! (삐-)"
이해해 달라.
32시간 중 3시간 남짓 선잠 자고 65킬로를 끌고 들면서 왔으니 그럴법하지 않나.
남편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도로 상태가 좋지 않고 운전이 몹시 험악하여
나도 모르게 발목에 힘을 꽉 주게 되었던 것이
파나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