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막는 편견에 대하여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간호학과에 다니는 조카가 과제로 정신건강 분야의 간호사를 인터뷰해야 하는데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해 고민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우리 팀 직원을 떠올렸다. 경찰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자살예방 사업을 맡고 있는, 정신전문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에게 물어보니 흔쾌히 응하겠다고 했다. 후배는 고마움의 표시로 점심을 사겠다며 자리를 마련했다.
시청 근처 고등어덮밥집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고등어덮밥 한 가지만 파는 작은 식당이었다. 작은 솥에 지은 밥 위로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 두 토막이 올려져 있었고, 잘게 썬 쪽파가 뿌려져 있었다. 겨자 간장을 부어 고등어를 으깨면서 밥과 비볐다. 처음 먹어보는 메뉴였는데 비릴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고소함과 겨자의 알싸한 맛이 어우러져 괜찮았다.
직원은 정신과 병동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현병 초기 증상을 보이는 의무경찰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했던 경험들이었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사례들을 말할 때 그의 목소리에는 보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보건소로 배치된 후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치료 시기를 놓쳐 만성화된 환자들이 많았고, 병원이 치료 공간이 아니라 그냥 머무는 곳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나는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정신과 전문의 두 사람이 지역사회 재활시설을 만들겠다고 나섰던 일이었다. 부지도 사고 건물도 지었다. 병원 밖에서 환자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했다. 나는 그때 그들의 계획을 지켜봤고 좋은 취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설 설치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의 반대가 시작되었다.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쩌죠?" "아이들 학교길이라 불안해요."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상인들은 손님이 줄어들까 봐 우려했고,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결국 지자체장은 결정을 미뤘고 행정절차는 중단되었다. 두 의사의 계획은 그렇게 멈춰 섰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답답했다. 실제로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범죄는 전체 범죄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에서 한두 번 크게 보도되면 사람들의 인식은 그보다 훨씬 무겁게 굳어진다. 두려움이 사실보다 크게 자리 잡는다. 가장 큰 장애물은 질병이 아니라 질병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고등어덮밥을 한 숟가락 더 떠서 먹으면서 생각했다. 처음엔 낯설었던 이 맛이 이제는 괜찮게 느껴진다. 우리는 경험하기 전에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지만 꾸준히 치료받으며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있다.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다닌다. 또 다른 이는 동료지원인이 되어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사람들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언제 내가 그 자리에 설지 모른다. 돌봄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일이 아닌 것이다. 오늘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내일은 그 누군가가 나를 도울 수도 있다. 서로 기대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평소 같으면 고등어덮밥 같은 메뉴는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먹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내가 미리 정해놓은 편견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만나보지도, 함께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막연한 두려움만 키운다. 그 두려움은 벽이 되어 누군가의 회복을 가로막고, 우리 모두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기회를 놓치게 한다.
용기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낯선 음식 하나 시도해보는 것처럼, 낯선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는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 작은 시작이 결국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