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교원의 정치적 중립’의 시작과 왜곡

시론 / 새로운학교네트워크_정책위원장 유재

좋아요 3번, 댓글은 1번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

위 말은 내가 선관위에서 조사받을 때 직원에게 들었던 말이다. 교원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 또는 후보가 되려는 자뿐만 아니라 후보를 돕는 선거운동원 등이 올린 페이스북의 글에 ‘좋아요’를 세 번만 눌러도 조사하여 처벌할 수 있고, 댓글은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이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개인 페이스북에 시사만평을 올리거나 정치 관련 게시물을 공유했다가 기소되거나, 일과 이후에 특정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카톡을 보낸 일로 벌금형을 받거나, 정당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고발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만 18세 이상인 학생은 지지 정당이나 후보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정작 가르치는 교사는 할 수 없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가 징계받는 일은 보수 정권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일이 언론에 의해 이슈가 될 때마다 언론은 헌법을 들먹이며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자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언론에서 근거로 든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이다. 즉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에 따라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와 다른 의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글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단어가 헌법에 사용된 시기와 그 배경 그리고 변천을 살펴봄으로써 당연하게 여겼던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의미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4·19 혁명으로부터의 시작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미군정을 지나 헌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일본식 표현인 헌법은 법 헌(憲)자에 법 법(法)자를 사용하는데 한자만으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최상위법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우리나라의 헌법은 독일의 국가기초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제헌 헌법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헌 헌법의 교육과 관련한 내용 중에는 “제16조 모든 교육기관은 국가의 감독을 받으며 교육제도는 법률로써 정한다”라는 현행 헌법에는 있지 않은 내용이 있다. 이 조항은 프로이센 일반 란트법(1794년)에 연원(김용, 2019)하는 것으로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서 계승된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했던 1950년대 한국에서는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감독 권한이 교육행정에 대한 국가 기관의 과도한 개입으로 과잉 해석되고 적용(박대권 외 2인, 2020)되었다. 결국 이승만 독재가 장기화하면서 이러한 문제는 지속해 발생했고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교원과 학교가 동원되기에 이른다. 이는 4·19 혁명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는 행정 권력의 교육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방어하기 위한 의미로 해석되었다. 결국 4·19 혁명 두 달 후인 1960년 6월 15일 “제27조 2항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는 내용이 헌법에 신설된다. 그리고 장면 총리는 그 의미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혁명정신을 계승하는 것’(박대권, 김용, 최상훈(2020) 헌법 31조 4항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헌법 편입 과정)이라고 밝혔다. 민중의 항거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몰아낸 4·19혁명 정신은 1961년 5·16쿠데타 속에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국회를 해산하고 언론 출판 등의 일체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신헌법을 제정하여 총선거를 시행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교육계는 끊임없이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1962년 “제27조 4항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문구가 헌법에 최초로 포함되게 된다. 이 조항은 전두환의 쿠데타 이후 개정된 헌법에 “제29조 4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로 이어지고, 87년 민주항쟁 이후 개정을 통해 “제31조 4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로 이어진다.

5.jpg


‘교육의 정치적 중립’ 의미의 왜곡

‘정치적 중립’이라는 문구가 헌법에 편입되고 변화해 온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는 정부가 교원과 학교를 동원하여 정치활동에 개입하고 학생을 정치행사에 동원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에서 편입되었다. 하지만 이후 권위주의 정권을 거쳐오면서 이러한 의미가 왜곡되어 교원이 정치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변질되어 결국 교원은 정권을 비판할 수도 없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으며, SNS상에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하는 것조차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1966년 유네스코의 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eachers(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 중 Rights of Teachers(교원의 권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Teachers should be free to exercise all civic rights generally enjoyed by citizens and should be eligible for public office. (교원은 시민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공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Where the requirements of public office are such that the teacher has to relinquish his teaching duties, he should be retained in the profession for seniority and pension purposes and should be able to return to his previous post or to an equivalent post after his term of public office has expired.(공직에 취임함으로써 교직 임무를 포기하여야 하는 경우, 교원은 연공 가산과 연금의 혜택을 위하여 교직에 그 적을 보유하고 공직의 임기종료 시에는 전직 또는 그와 동등한 직위에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유네스코의 이 권고는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켜지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는 학교 내에서의 정치적 발언이나 활동만 제한받을 뿐, 일과 이후에는 자유롭게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독일 등의 나라에서는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표를 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4.jpg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잘 알려진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자유 전쟁’을 통해 ‘자유’라는 단어가 본래 진보의 상징과 같은 단어였는데 어떻게 왜곡되고 변질하여 보수에서 사용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본래의 의미를 찾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 또한 마찬가지다. 헌법에 처음으로 명시된 이후 권위주의 정부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행정 권력의 부당한 지시와 간섭으로부터 교육을 보호해야 한다는 4·19혁명 정신으로부터 출발한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교원에게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해석하는 견해의 차이로 넘길 일이 아니다. 최근 정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제든 권위주의 정부가 부활하여 교원에게 굴종의 삶을 강요하는 기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이 편파와 몰상식으로 나타나고, 급기야 계엄이 계몽이 되는 세상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 것은 교원에게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중대한 과업이다.



2025 봄호 목차

1. 시론
2. 포럼&이슈
3. 특집
4. 수업 나누기 정보 더하기
5. 티처뷰
6. 이 책 한 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라를 지키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