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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된다는 건,

이 책 한권! / 경산서부초등학교_김지혜선생님

-티에리 드되 글·그림/ 야쿠바와 사자-


그림책을 같이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책에 기대어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다. 책을 읽었을 뿐인데 누군가의 삶을 알고, 다른 이들과 나누고, 나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다. 너무 단단해서 휘어지지 못하고 부러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학창 시절에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내게 다른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직업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들도 같은 책으로 다양한 생각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같은 그림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림책은 신기하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고, 매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회적 분위기, 학교와 교실 분위기 또 누군가와 함께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프랑스 작가 티에리 드되의 「야쿠바와 사자」는 매년 빠지지 않고 읽어주는 책이다. 캔버스에 검정색 아크릴 물감을 묻힌 붓으로 그려낸 강렬한 흑백 그림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림책은 아프리카 대륙의 한 부족의 성인식을 알리며 시작된다. 이 책을 읽어줄 때는 더 몰입할 수 있게 불을 끄고 음악을 튼다. 나는 잠시 선생님이 아니라 그 현장에 있는 배우가 된다. 교실은 초원과 사막으로 바뀌고 저 멀리 북소리가 들려온다.


야쿠바는 부족의 전사가 되기 위해 사자와 맞서 싸우는 임무를 받게 되고, 그 길은 오롯이 혼자 견뎌야만 하는 길이다. 골짜기를 건너고, 언덕을 넘고, 온몸으로 거친 바위와 우거진 숲, 바람을 헤쳐나가야 한다. 숨 막히는 두려움의 긴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자는 이미 사나운 맹수와 밤새 싸워 피를 흘리고 지쳐있는 상태였다. 다친 사자를 만난 건 쉽게 전사가 될 수 있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사자의 깊은 눈을 마주한 그 순간 야쿠바는 다시 고민하게 된다.


‘자, 둘 중 하나다. 비겁하게 날 죽인다면,
넌 형제들에게 뛰어난 남자로 인정받겠지.
만약 내 목숨을 살려 준다면,
넌 스스로 고귀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는 거야.
대신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받겠지.
어느 길을 택할지 천천히 생각해도 좋아.
날이 밝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스스로만 아는 ‘고귀한 마음을 가진 어른’과 비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전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독자는 그림책의 페이지 넘김을 통해 다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야쿠바에게 그 한 장은 날이 밝도록 고민하는 긴 시간이었다. 수업에서도 이 부분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내가 만약 야쿠바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사자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선택 중 한 가지만 택할 수 있는 ‘찬반 토론’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 수업에서는 제3의 선택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비겁하게 전사가 되는 것은 옳지 않기에 사자를 살려야 한다는 아이들과 부와 명예를 버리고 따돌림을 당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살려주는 선택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아이들이 팽팽하게 맞선다. 제3의 선택을 한 아이들은 ‘사자와 친구가 되어 떠난다, 동맹을 맺는다’ 등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야쿠바는 밤새워 고민한 끝에 창을 거두고 망설임 없이 마을로 향한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감내하며 마을 멀리서 물소를 지키게 되는 처지를 후회하지 않았을까? 비난과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 없이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은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혼자 ‘사자와 맞설 용기’도 대단하지만 스스로 신념을 지키며 선택한 ‘죽이지 않을 용기’에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림책의 부제가 ‘용기’다.)

마을에서 정한 성인식의 통과 의례와 상관없이 야쿠바가 진정한 어른이라는 걸 독자는 알게 된다.


그림책 수업에서 마지막 5분은 함께 읽은 책을 다시 혼자서 정리하는 글쓰기 시간이다. ‘그림책과 내가 만난 지점’에 대한 에세이 쓰기를 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의 글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보고 또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모은다. 어떤 책은 아이들에게 강렬한 자신과의 만남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5학년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게 하였다.


나는 발표를 진짜 아주아주 싫어한다. 어떤 문장을 읽을 때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뽑을 때 나만 아니면 된다! 라고 생각할 만큼 발표하는 것은 최악이었다.
가끔 걸릴 때가 있었는데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안 나와 답답했다. 그래서 방에서 혼자 계속 연습하다 보니 ‘이번에는 꼭 말해야지’라고 다짐했다.
학교에 가면 친한 친구들이 있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가끔 말을 못 할 때가 있지만…. 이제 발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6학년 김00)


힘들게 냈을 용기와 그 과정을 글까지 써준 아이의 더 큰 용기에 감동하여 작년 담임선생님께 이 글을 나누며 함께 기뻐했다. 고민의 시간과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또 다른 아이의 글은 지금의 모든 어른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라 기록해 두었다.


야쿠바의 용기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야쿠바가 한 그 용기를 나도 이해하고 해보고 싶다. 무언가를 자신이 혼자 생각해서 옳은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용기를 실행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용기를 배우고 싶다.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에. (6학년 이00)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되는 ‘그냥 어른’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어른’이 되기는 쉽지 않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으며, 갈등을 멈출 용기가 필요할 때이다. 그 용기는 나를 바꾸고, 내가 속한 사회를 평화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2025 봄호 목차

1. 시론
2. 포럼&이슈
3. 특집
4. 수업 나누기 정보 더하기
5. 티처뷰
6. 이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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