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인생
초등시절에는 우등생으로, 중등시절에는 평범하게 마친 것 같지만 고등학교 시절엔 사춘기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어느 때부턴가 생각이 많아지고 수업시간에 집중보다는 공상 내지는 망상을 하는 버릇이 생겼고 시에 관심을 갖게 되어 나중엔 친구들 몇이랑 시집도 만들어 보고, 가을철이면 다른 학교에서 개최되는 시화전도 기웃거려 보는 문학 소년이 되었다.
이따금씩 달콤한 향기와 아름다운 꽃들이 펼쳐질 듯한 어휘를 나열해 주는 헤르만 햇세가 쓴 시집도 사서 즐겨 읽어 보기도 했었다.
대학졸업 후 다락방정리를 하면서 만들어 보았던 시집을 발견했는데, 친구들과 모든 감성과 열성을 기울여 만든 것이 남이 보면 부끄러운 존재라 얼른 버렸으며 입가엔 나도 모를 미소가 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고교 성적은 그만큼 떨어지게 되었고 특히 수학 성적은 형편없었다.
난 수학과는 담을 쌓을 수가 없는 이과반이고 대학을 이공 계열로 진학해야 하는지라 워낙 기본을 갖추지 못한 수학실력을 키우기 위해 외우는 과목이 아닌 수학을 풀이과정 하나하나씩 외우기 시작해서 나중엔 해법을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기상천외한 방법도 동원해 봤다.
그나마 공학을 전공했고 지금껏 그 학문을 토대로 먹고살아온 걸 보면 그때 무데뽀 식의 외우기 수학공부가 큰 밑천이 되었을런지 모르겠다.
고교시절에는 그동안 외삼촌이 도와준 그늘막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우리 집을 장만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지금의 본가가 그 집이다.
아버지와 난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설계도면(평면도)의 밑그림을 그려보았고 실제 설계도면과 지어진 집은 아버지와 내가 의도했던 것과 일치한다.
우리 집을 처음으로 지어본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즐거운 눈치였다.
이 조그마한 집의 밑그림을 그려본 것이 내가 건축을 전공하게 된 초석이 된 지도 모르겠다.
당시 집을 건축하고 있을 때는 얼른 새 집으로 이사를 해보고 싶어 짓는 현장을 자주 찾아보곤 했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동작이 얼마나 굼뜨게만 느껴지던지.
빨리 지어야 빨리 새집에서 살 수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