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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1. 2022

연기 (5)

  진호를 돕는 사람은 나 말고도 아주머니 2분이 더 있었다. 진호는 ‘형은 올해 11월까지. 저분들은 이번 달 말에 끝나요.’라고 구분해줬다. 진호가 맡은 업무가 공공근로 같은 일자리 사업들이라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공공근로로 보조를 붙여 어떻게든 해왔는데, 3개월이면 자꾸 사람이 바뀌니 곤란하던 참이라며, 연말까지 일하는 나를 격하게 반겼다. 마침 참여자들을 새로 선발하는 시기라서 신청서를 엑셀로 입력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신청한 사람 중 점수에 따라 참여자를 선발해야 한단다. 재산은 얼마나 있는지, 가족은 몇 명인지, 세대주 인지 아닌지 등등 뭔가 복잡하고 다양한 기준을 따라야 하는 모양이다. 


  곁에서 지켜본 진호는 정말 일에 치이고 있었다. 그것도 일반 승용차도 아니라 한 10톤짜리 트럭에. 3~4개월마다 천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신청하고, 수백 명을 뽑고, 매달 월급을 계산해서 나가고. 더구나 이름만 다른 비슷한 사업들이 여러 개 있어 괜히 손만 더 간다고 투덜댔다.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공무원의 삶은, 적어도 진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일에 슬슬 익숙해질 무렵, 지팡이를 짚고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한 분이 사무실을 찾았다. 

  “여기, 공공근로 담당자가 누구야!?”

  “네~ 전대요 어르신~ 어떻게 오셨어요?”

  진호가 일어나 응대를 하려는데, 순식간에 진호의 뺨이 울린다. 

  “어린놈의 시키가. 이따위로 해!? 어!?” 

  사람들이 달려들어 어르신을 붙들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어르신의 앞을 막고선 진호의 팔을 잡아 내 뒤로 숨겼다. 꽉 쥔 진호의 주먹이 꿈틀거린다. 어르신이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팀장이 나서 어르신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유, 어르신~ 이쪽으로 와보세요.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세요.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의뭉스러운 팀장의 눈짓에 진호를 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뭐야, 뭔데? 아는 사람이야?” 나는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아뇨. 뻔하죠. 자기 안 뽑았다고 그런 사람들 많아요. 이야. 그렇다고 뺨 맞은 건 처음인데? 하하. 진짜 같이 싸울 수도 없고...” 

  붉게 달아오른 뺨이 얼얼한지 진호는 뺨을 연신 비비며 헛웃음을 흘린다.

  “나랏밥 먹는 게 거지 같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럴 때에요. 밖에선 폭행으로 신고하고 합의금이라도 받지.”

  “어휴. 어르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냥 네가 참아.” 

  “그러니까요. 어쩌겠어요. 형님, 오늘 기분도 꿀꿀한데 이따 소주나 한잔하시죠?”


  그렇게 화를 삭이는 도중 팀장이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공공근로 사업에 선발되지 않은 것 때문에 그랬단다. 다른 사람들은 집도 있고 연금도 많이 받는데도 뽑아준다던데 왜 나는 안 뽑아주느냐고. 하여간 그놈의 카더라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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